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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재건술은 치료인가 성형인가

등록 2012-07-17 18:00 수정 2020-05-03 04:26
지난 7월6일 서울 광화문에서, 유방암 발병률을 높이는 유해화학물질을 추방하자는 ‘그린리본’ 캠페인이 열렸다. 유방암 환자 수는 급증하고 있지만 생존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낮다. 유방암 환자들이 받는 유방재건술도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로 분류돼 10%의 부가세가 붙는다. 한겨레 박종식

지난 7월6일 서울 광화문에서, 유방암 발병률을 높이는 유해화학물질을 추방하자는 ‘그린리본’ 캠페인이 열렸다. 유방암 환자 수는 급증하고 있지만 생존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낮다. 유방암 환자들이 받는 유방재건술도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로 분류돼 10%의 부가세가 붙는다. 한겨레 박종식

암 발병으로 잃어버린 유방을 다시 만드는 수술은 치료인가 성형인가. 판단에 앞서 정부 방침부터 살펴보자. 지난해 7월부터 기획재정부는 쌍꺼풀·코성형·주름살제거·지방흡인술·유방확대 및 축소 등 건강보험 비급여 대상인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에 대해 10%의 부가가치세(간접세의 한 종류로 최종 소비자가 부담)를 부과하고 있다. 유방재건술 역시 부가세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현행법에선 미용 목적의 유방확대·축소술과 유방절제술 이후의 유방재건술을 별개의 의료행위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방암 환자수가 가파르게 늘어 불가피하게 유방을 절제해야 하는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2009년 유방암 신규 발생 환자는 1만3460명으로 1999년(5744명)보다 2.3배 증가했다. 지난해에만 유방절제술을 받은 환자가 1만3854명에 이른다(건강보험공단 통계).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의 40대 이하 젊은 여성이다.

여성의 모든 기능 상실했다는 고통

오진애(35·가명)씨도 지난해 12월 오른쪽 유방 전체를 잘라냈다. 오씨가 유방암 1기 판정을 받은 때는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2007년 여름이었다. 유방을 부분 절제한 뒤 항암·방사선 치료를 했다. 열심히 암과 싸워 엄마가 되겠다는 소망도 포기하지 않았다. 약을 끊고 여러 차례 임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좌절감이 컸다. 응어리진 그의 가슴에서 암세포가 다시 자랐다. 한쪽 유방을 완전히 떼어내야 한다는 의사 말을 들었다. ‘목숨을 구한다면 이까짓 가슴이 뭐가 중요할까’ 싶었다. 그런데 항암치료를 마친 오씨에겐 앞서 느낀 좌절감에 또 다른 상실감이 덧붙여졌다.

“샤워할 때마다 보게 되는 수술 흔적, 예전과는 다른 옷 매무새 때문에 여자로서의 자존감이 흔들린다. 외출을 해도 사람들 시선이 다 나에게만 쏟아지는 것 같다. 찜질방도 편안히 다닐 수 없다.” 투병의 고통을 지켜본 남편은 여전히 자상했지만, 오씨는 남편이 혹시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떼어내기 힘들었다. 우울함의 강도는 날로 심해졌다. 도무지 안되겠다 싶어 인터넷에서 자살 예방 상담센터를 수소문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 살 것 같았다. 같은 아픔을 겪은 다른 환자들을 만났다. 그들과 마음을 트고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위안을 얻어가고 있다.

유방암 환자들은 수술에 따른 신체적 고통 뿐 아니라, 재발과 죽음의 두려움, 사회 생활 위축 등 복합적인 어려움과 맞닥뜨리게 된다. 더구나 유방은 여성들에게 단순한 신체 부위가 아니다. ‘여성성의 상징’이란 사회적 의미가 따라붙는다. 최근엔 풍만한 가슴을 찬양하는 미디어 등의 영향으로 유방은 성적 매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그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가슴을 잃어버린 여성들이 상처와 박탈감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항암치료에는 생리 중단이나 성기능 장애 같은 부작용도 뒤따른다. 이 과정에서 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은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오씨는 건강 상태가 허락한다면, 어떻게든 가슴을 되찾고 싶다. 지금으로선 유방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재건술말고 달리 방법이 없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정상인, 완전한 여성이 되고 싶다. 암 수술을 받은 또래 여성 대부분도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문제는 1500만원 정도가 드는 수술 비용이다. 임시방편으로 외출할 때마다 인공유방을 착용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찮다. 오씨가 사용하는 인공유방의 가격은 50만원 안팎이다. 착용에 필요한 브래지어는 개당 7만원이 넘는다. 돈도 돈이지만, 몸에 맞는 제품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유방 보조물은 대부분 수입품인 탓이다.

미용 성형이 아닌 삶의 복원

유방암 환자들의 모임인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이하 연합회)가 최근 유방재건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해달라는 탄원서를 보건복지부에 낸 것도 이런 말 못할 어려움 때문이다. 복지부는 이들의 요구안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뢰한 상태다. 연합회는 유방암 환자들이 신체적 통증은 물론 대인기피증 같은 심각한 심리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한다. 실제 지난 2010년 한국유방암학회 주관으로 열린 ‘유방재건술의 보험 급여 인정의 당위성’이라는 포럼에선, 유방을 절제한 여성들이 겪는 제약과 고통을 고려할 때 보험급여 지급과 함께 장애 판정 여부에 대한 논의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정책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유방 재건은 여러 차례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대수술이다. 수술에는 환자 본인의 근육 조직이나 인공 삽입물이 사용되는데, 조직을 떼어낼 경우 근력 감소나 과다 출혈 같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유방재건 수술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2006년 유방암을 앓았던 여성 20명을 심층 인터뷰한 임인숙 고려대 교수의 논문(‘유방암, 손상된 몸과 여성성의 위기감’)을 보면, 40대 초반에 유방재건술을 받은 여성 4명 중 3명은 수술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지만, 50대 중반 연령대에선 심각한 흉터에 따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2006년 유방암 치료를 위해 양쪽 가슴을 절제한 뒤 군에서 강제 전역한 피우진씨(예비역 중령)는 애초부터 재건술은 고려조차 안 했다. 이런 그도 유방재건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방 재건을 원하는 환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유방 복원을 아름다워지기 위한 성형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삶을 복원하는 문제로 여기고 있다.”

유방재건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의료계에선 재정상의 문제로, 유방재건술에까지 혜택을 주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 있다. 암 치료를 받고 재발이나 전이 없이 5년이 지난 환자는 중증 환자의 건강보험 적용 특례 대상에서 제외하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방암 생존자들이 겪는 복합적인 고통의 근원을 유방 절제로만 한정해 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있다. 유방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적 편견에 기대기보다는 예방이나 저소득층 치료 지원, 수술한 신체를 긍정할 수 있도록 돕는 운동 등을 펼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방재건술 건강보험 적용에 부정적 태도를 취하는 이들도 유방재건술에 대한 부가세 과세는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 사회가 유방암 생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기는커녕 무시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선진국, 유방재건술 등 치료로 인정

선진국에선 유방재건술이나 인조유방 등 보조물을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치료로 본다. 보험 체계가 다른 미국에서는 1998년부터 ‘여성 건강과 암 권리 조항’(WHCRA)에 따라 유방재건술이나 유방 보조물도 보험 대상에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신체적 변화로 고통을 겪는 여성들을 상대로 극복 방법을 교육하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인조유방 구입비를 국가가 보조해준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는 “유방재건술은 미용성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여성 처지에서는 수술 뒤 정상 생활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재활이기 때문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보험 적용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유방재건술은 미용성형이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실 재건성형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있다. 커다란 얼굴 화상 흉터를 제거하는 수술의 경우 2009년부터 1회에 한해 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있다.

2009년 유방암절제술을 받은 여성 300명을 설문조사해 논문(‘유방암 절제술을 받은 여성의 복합적 신체 이미지와 사회적 지원’)을 발표한 김영란 숙명여대 교수(심리학)도 유방을 완전히 잘라낸 여성들에겐 보형물·가발·메이크업·성형수술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분절제술을 받은 여성에 비해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 하는 등 심신의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여성들의 복합적인 고통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여성이 유방촬영을 통해 유방암 검사를 받고 있다. 전체 유방암 환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40대 이하 젊은 여성이다.

한 여성이 유방촬영을 통해 유방암 검사를 받고 있다. 전체 유방암 환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40대 이하 젊은 여성이다.

비싼 유방재건술 받을 엄두 안 나

2년 전 왼쪽 가슴을 잘라낸 김선희(52·가명)씨는 수술 뒤 목욕탕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낼 재간이 없단다. 한쪽 가슴이 없어 몸이 기우는 느낌도 받는다고 했다. 김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요양생활을 하고 있는데, 간혹 외출할 때면 인조유방을 착용한다. 김씨는 유방재건술을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환우 모임에서 만난 여성의 유방재건술 경험을 듣고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의 가계소득은 매달 200만원. 암투병을 하느라 이미 1700만원을 썼다. 그는 비싼 유방재건술을 받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에게 유방재건술은 치료일까 성형일까.

참고 논문: ‘페미니스트 현상학을 이용한 한국 유방암 환자의 질병 체험’(박은영·이명선, 2009), ‘유방암 절제술을 받은 여성의 복합적 신체 이미지와 사회적 지원’(김영란, 2010), ‘유방암 생존자의 인조유방 사용 경험’(전은영·최순자·강희선, 2012)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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