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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영 전환한다는데 쫓겨난 미화원들

‘고용승계’ 장담하던 양평군, 공개채용 빙자한 속아내기식 ‘선별’ 채용… 직영화의 핵심 이유인 고용불안 해소는커녕 부추겨
등록 2012-07-06 09:19 수정 2020-05-02 19:26
 경기도 양평군에서 지난 13년간 환경미화 업무를 위탁해온 용역업체 양평환경의 노조원 8명은 군청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한 달 넘게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양평환경이 지난 5월 사업권을 포기하자 군청이 환경미화 업무를 직영으로 전환하며 노조원들을 선별 채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겨레21> 박현정 기자

경기도 양평군에서 지난 13년간 환경미화 업무를 위탁해온 용역업체 양평환경의 노조원 8명은 군청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한 달 넘게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양평환경이 지난 5월 사업권을 포기하자 군청이 환경미화 업무를 직영으로 전환하며 노조원들을 선별 채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겨레21> 박현정 기자

지난 6월26일 오전 11시, 경기도 양평군청 본관 출입구에 설치된 셔터가 철커덩 내려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장 권영국 변호사 등 법률가들이 면담 거부 공문을 보내온 양평군수에게 다시 면담을 요청하겠다며 군청사로 향하자 벌어진 일이다. 양평경찰서 소속 경찰도 이들의 발걸음을 가로막았다. 권 변호사를 만나러 나온 양평군청 공무원은 불법 점거를 예방해야 해서 셔터를 올릴 수 없다고 했다.

‘경민정’ 정자 아래의 깊은 한숨

앞서 민변 노동위,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 등 4개 단체는 양평군청 앞에서 30여 일간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주)양평환경 소속 환경미화원들의 고용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평환경은 지난 13년간 양평읍과 양서면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과 가로 청소 업무를 맡아온 민간 위탁 업체다. 지난 5월4일 이 업체는 대표자의 건강을 이유로 사업권을 포기했다. 지난 2월 소속 환경미화원 가운데 양평읍에서 일하는 16명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양평환경 분회를 결성해 미지급 임금 청구 소송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군청은 양평환경에 위탁한 업무를 직영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난 10여 년간 비용 절감을 이유로 공공서비스의 민간위탁을 남발해왔다. 그러나 최근 고용불안, 서비스 질 저하 등 사회적 비판이 제기되자 직영 전환을 추진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직영화가 바람직한 정책임에도, 양평환경 노조원들에겐 희망이 되지 못했다. 양평군은 이들의 고용승계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다 지난 5월 양평읍 환경미화원 무기계약근로자 18명에 대한 공개채용 절차를 마무리했다. 노조원 8명이 ‘선별’ 채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개채용 응시를 거부하고 5월18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공개채용을 빙자한 속아내기라는 것이다. 실제 공개채용에 응했다 탈락한 조합원이 발생했다.

군청 정문 바로 오른편엔 ‘백성을 공경한다’는 뜻을 지닌 경민정(敬民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최소 4개월에서 최장 9년간 양평환경에서 일한 노조원 8명의 농성장이다. 40~50대인 이들의 구릿빛 얼굴엔 깊은 주름이 패여 있다. “환경미화원들은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에요.” 자조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정자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던 변달수(51)씨의 삶도 그랬다. 그는 지난 7년간 양평환경에서 환경미화원 일을 했다. 양평에서 태어난 변씨는 경북 안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빈털터리가 된 채 대구로 건너갔다. 건설 현장과 자동차 부품 공장 등에서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건 지난 2004년. 몸 쓰는 일을 하던 그에게 제때 월급을 받을 수 있는 환경미화원은 소중한 일자리였다. 지난해 말까지 변씨를 포함해 15명이 양평읍 생활폐기물을 치웠다. 민간위탁이 되기 전엔 23명이 하던 일이었다. 새벽 3시에 나가 다음날 정오에 끝나는 일은 고됐다. 여름철 휴가를 제외하고 제대로 쉴 수 있는 날은 설·추석 연휴뿐이었다. 일요일은 서로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쉬었다. 연차 휴가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청소 차량을 몰고 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작업장엔 수도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냄새나고 더러운 작업복을 입고 집에 와야 했다. 회사 쪽에 이런 불만 사항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계약직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받는 월급은 한 달에 220만원 안팎. 불만이 쌓이자 노조가 만들어졌다. 변씨도 난생처음 노조에 가입했다. “공장에 다닐 때, 노조가 있었는데 싫더라고요. 차라리 딴 데 가서 일하지 굳이 싸우나 싶었는데….”

26년 일한 분회장은 불합격

양평환경 노조원들은 위탁 업무 외에 추가 업무까지 떠맡아 노동강도가 더욱 세졌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지난 5월 말 양평환경 문길자 전 대표와 남편인 폐기물 처리 업체 양평환경건설 신만균 대표(현 양평환경 대표)가 폐기물관리법을 위반했다며 수원지검 여주지청에 고발했다. 노조는 고발장을 통해 “양평환경건설과 양평환경이 결탁해, 양평환경 환경미화원들로 하여금 양평읍·양서면 외 지역 병원·학교 등에서 배출된 사업장 폐기물을 수거하도록 해 무왕리 위생매립지에 불법 매립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30일 열린 양평군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있었으나, 군은 올해도 양평환경과 위탁계약을 맺었다. 당시 회의록에는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민간위탁 업체 환경미화원들이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법규 등을 검토해 대책을 세우라는 군 의원의 지적사항도 포함돼 있다.

양평군은 노조의 요구에 대해 군 훈령인 무기계약근로자 관리규정 제9조 1항(근로자 채용은 공개경쟁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신속한 충원이나 특별한 사정으로 공고 절차를 거치기 어려운 경우에는 공고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에 명시된 대로 공채를 실시했고, 기존 환경미화원들의 경우 근무 기간에 따라 최대 5점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 최대한 배려를 했다는 태도다. 그러나 농성장을 나와 공채에 응시한 8명 가운데 26년간 환경미화원으로 일한 홍설영(53)씨가 ‘윗몸일으키기’에서 0점을 받아 불합격했다. 홍씨는 전 양평환경 분회장이었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양평군의 행보에 대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기관의 책무를 외면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특히 민간위탁 업무 직영화의 핵심 사안 중 하나는 고용불안 해소임에도 이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경제학)는 “상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직고용하고 고용승계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보호 대책인데, 이를 도외시하고 공개채용이라는 인사관리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해 고용단절을 일으킨다면 직영화는 안 하니만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이남신 소장도 “무기계약직은 법적으로 정규직이지만 기존 정규직에 비해 차별을 받는 절반의 정규직”이라며 “신규 채용이거나 아예 다른 업무로 전환되는 경우라면 모를까 이미 같은 업무를 하던 사람들을 선별해서 채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공개채용 실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외주업체 소속 민원 안내 도우미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서울 성북구 사례와도 대비된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신규 채용 땐 당연히 공개채용을 하지만 통상적으로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 전환의 경우엔 기존에 하던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설명했다.

노조원 수갑 채워 과잉 대응 논란 빚기도

김선교 양평군수가 5월29일 면담을 끝으로 더 이상 노조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만 있다. 이 지역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환경미화원 지원단을 구성해 최근 양평군·노조·의회 등에 4자 토론회를 제안했으나 군은 불참 의사를 통보했다. 지난 6월15일에는 군청사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조원들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자 양평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한 노조원에게 수갑까지 채워 과잉 대응 논란을 빚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양평군을 지역구로 둔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최근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의원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한발 물러서 있다. 정 의원은 “애초 노조와 면담하려 했지만 노조원들이 분열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취소했다”며 “개입해 문제를 풀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지만, 되레 갈등만 부추기게 될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은 김 군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비서실장을 통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채용을 마무리했고, 민주노총이라는 단체가 결부된 상태라 (환경미화원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양평=글·사진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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