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
이름도 복잡한 제도를 둘러싸고 나라가 뒤숭숭하다. 정부가 오는 7월1일부터 백내장 등 7개 질환군에 대해 이 제도를 시행하기로 하자, 대한의사협회가 실력 행사에 나선 탓이다.
먼저 논란이 생겨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보건의료 지출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1인당 보건의료비 지출 증가율은 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의 2배 이상으로 솟구쳤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평균 4~5%인 것과도 비교된다. 이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있다. 정부의 골칫거리다.
과잉 진료 부추기는 행위별 수가제
이렇게 지출이 늘어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병원들의 과잉의료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환자를 자주 병원에 오게 할수록, 검사를 많이 할수록, 수술을 많이 할수록 돈을 더 많이 번다. 이른바 ‘행위별 수가제’ 때문이다. 행위별 수가제란 의사가 진단과 검사, 치료 항목을 추가할 때마다 국가가 보상해주는 제도를 가리킨다. 우리나라 보건의료비가 널을 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에서 정부는 포괄수가제를 내놓았다. 포괄수가제는 국가가 질환별로 아예 가격을 정해놓고, 병을 고치는 의사에게 정액을 주는 제도다. 새 제도에 따르면, 의사가 굳이 과잉의료를 할 동기가 사라지게 된다. 정부로서는 과잉의료에 따르는 부작용을 막고,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덜 수 있는 ‘묘수’인 셈이다.
물론 대한의사협회는 달갑지 않다. 속내는 간단하다. 의사들의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포괄수가제가 도입되면 과잉의료의 여지가 많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속내를 속 시원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다른 이유를 늘어놓다 보니, 의사협회의 논리는 상대적으로 궁색하다. 보수언론을 포함해 거의 모든 언론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받고 있는 이유다.
의사들의 처지도 이해할 만한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부족한 의료 재정을 보충하려고 저수가 정책을 유지해왔다. 쉽게 말해 ‘병원값’이 쌌다는 말이다. 의사협회는 병원에서 챙기는 건강보험 수가가 원가의 74%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장사’를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익을 내려고 환자들에게 이런저런 검사를 시키고 특진료를 더 받게 된다. 기자에게 전자우편을 보낸 한 의사의 말이다. “짜장면 원가가 1천원인데 나라에서는 700원에 팔라고 강제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단무지나 탕수육이라도 비싸게 팔아야 하는 처지다.” 나라의 저수가 정책이 과잉의료를 부채질했다는 주장이다. 포괄수가제를 도입한다는 정부의 결정에 보이는 일부 의사들의 알레르기 반응에는 이런 정서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의사들이 포괄수가제를 반대할 만한 도덕적 명분이 분명한 것도 아니다.
의료 상업화의 거대한 ‘놀이터’
의료시장에 관한 정부의 정책 흐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영리법인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내놓은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국민 의료비 지출 비중(2010년 기준)은 GDP 대비 7.0%로 OECD 평균(9.7%)보다 낮다”며 의료시장의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한편에서는 포괄수가제 도입을 통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국가의 보건의료 지출을 억제하겠다는 복안이다. 언뜻 모순되는 두 정책을 조합하면 이렇다. ‘의료 분야에서 시장은 늘리겠지만 정부의 부담은 덜어내겠다.’ 시장에서 국가를 뺀 여백의 공간에서 의료 상업화의 거대한 ‘놀이터’가 만들어진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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