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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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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아이들의 색다른 자전거 여행

‘교육기본권’ 알리려 자전거 전국 일주 나선 탈학교 청소년들…
“제도권 교육 밖의 아이들도 국가 재정 지원 받을 권리 있다”
등록 2012-05-16 15:27 수정 2020-05-03 04:26
지난 5월10일 서울 성산동 성미산학교 근처 골목에서 ‘청소년 자전거 유랑단’이 교육기본권을 알리는 전국 자전거 여행에 나섰다. 이들은 28일 동안의 여행에서 어떤 현실을 목격하게 될까. 탁기형 선임기자

지난 5월10일 서울 성산동 성미산학교 근처 골목에서 ‘청소년 자전거 유랑단’이 교육기본권을 알리는 전국 자전거 여행에 나섰다. 이들은 28일 동안의 여행에서 어떤 현실을 목격하게 될까. 탁기형 선임기자

“잘 다녀오세요!” “와아아, 파이팅!”

지난 5월10일 오후, 서울 성산동에 있는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 앞 골목이 박수와 함성 소리로 가득 찼다. 골목을 메운 성미산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노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9명의 청소년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였다. 노란 옷의 주인공들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머리에 쓴 보호구를 매만지거나 앞뒤로 짐을 한가득 실은 자전거를 끌며 배웅 나온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성미산학교 학생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문구를 적은 분홍·노란색 리본은 자전거 곳곳에서 흩날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 페달을 밟은 이들은 어디로, 왜 떠나는 걸까.

교육기본권 다른 청소년에게 알리려

노란 옷 입은 자전거 행렬의 이름은 ‘청소년 자전거 유랑단’(이하 유랑단)이다. 9명 모두 제도권 학교를 벗어난 탈학교 청소년이다. 서울 봉천동 ‘꿈꾸는 아이들의 학교’, 서울 녹번동 ‘은평씨앗학교’, 경기 의왕 ‘더불어 가는 배움터 길’, 경남 ‘산청간디학교’, 그리고 어떤 학교도 다니지 않는 탈학교 청소년까지. 유랑단의 출신 지역과 학업 공간은 제각각이다. 이들은 각자 대안교육연대가 준비한 28일 동안의 자전거 여행에 참가 신청을 낸 청소년이다.

성인 인솔자 2명과 함께 이날 여행을 시작한 유랑단은 경기 수원, 충남 공주, 부산, 경북 경주 등 전국 20여 개 도시를 들러 6월6일 서울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들의 여행은 단순히 자전거를 타고 전국 순례를 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전국 각지를 돌며 탈학교 청소년들을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교육기본권’의 개념을 설명하고, 각 지역 대안학교와 학업 공동체에 들러 다른 탈학교 청소년과 교육기본권에 관한 토론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11일에는 첫 일정으로 경기 수원의 경기도교육청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을 만나 교육기본권의 필요성을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다. 유랑단을 이끌고 함께 여행을 떠난 이치열 대안교육연대 사무국장은 “교육기본권의 당사자인 청소년이 학교를 떠나 교육기본권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느끼고 이를 다른 청소년에게 알리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랑단이 여행을 하며 알리겠다는 ‘교육기본권’은 아직까지는 낯설 게 들린다. 교육기본권은 대안교육연대가 올해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모든 인간의 인간적인 성장·발달을 위해 필요한 교육에 관한 헌법상의 포괄적인 기본적 인권”을 말한다. 대안교육연대는 “교육기본권의 개념은 헌법 10조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실현’ 및 헌법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바탕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좁게는 제도권 교육 밖으로 나온 청소년이 자신이 선택한 배움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이며, 넓게는 제도권 교육을 받는 학생을 포함한 모든 청소년이 배움의 다양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가 교육기본권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스스로 원하는 학업 선택하도록

실제로 유랑단의 청소년들도 이 생소한 개념을 이해하고자 여행 출발 전에 스터디 모임을 했다. 이 과정에서 유랑단에 참여한 탈학교 청소년들은 막연하게 느껴온 탈학교 청소년을 향한 주변의 불편한 시선을 떠올리며 교육기본권의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낮에 친구들과 거리에 나오면 ‘얘네들은 뭐하는 아이들인가’ 하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어른들이 꼭 있어요.”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김산(17)씨의 경험은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른들과 대화할 때 꼭 받는 릴레이 질문이 있어요. ‘어디 학교 다니니? 거기(대안학교) 어떠니? 거기에는 장애학생도 다니니?’라고요.” 조웅희(16·더불어 가는 배움터 길)씨의 말처럼 홈스쿨링, 대안학교 등 다양한 탈학교 청소년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제도권 교육을 벗어난 청소년을 향하는 사회의 시선은 이들을 그저 ‘학업 중단 청소년’이라는 낙오자로 구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기본권 운동은 이런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자는 움직임이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초·중·고교의 탈학교 청소년 수는 7만6천 명으로,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회적 환경 때문에 학교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만이 대안교육·홈스쿨링 등 자발적인 교육을 찾아간다. 이처럼 적지 않은 청소년은 학교를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학습권으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것이다. 대안교육연대는 자신이 원하는 배움의 방식을 선택하고자 대안학교에 갔지만 정식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바로잡고, 대안교육을 받지 못하는 탈학교 청소년에 대해서도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하려면 교육기본권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제도 밖 학생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스스로 원하는 방식의 학업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안교육연대는 이번 유랑단 활동을 시작으로 올 한 해 동안 다양한 교육기본권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가장 먼저 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 등을 통해 국가가 독점한 교육의 기회를 다양화할 수 있는 법률 개정을 요구하려 한다. 청소년 교육을 학교에서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부분을 바꿔 교육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또 일부 지역에서만 진행하는 제도 교육 밖 청소년 교육지원에 관한 조례를 확대해 대안학교 등의 시설에 무상급식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 요구하려 한다. 그 밖에 탈학교 청소년들에게는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 1인당 표준 공교육비 600만~700만원에 해당하는 교육수당을 지급하고, 지역별로 청소년 교육지원센터를 설치해 탈학교 청소년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개선책을 요구하려 한다.

탈학교 청소년 지원 위한 헌법소원 진행

이들의 행동은 유랑단이 서울로 돌아오는 6월6일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 일주를 마치고 온 유랑단은 서울에서 열리는 대안교육한마당에서 ‘제도 밖 청소년 권리선언’을 발표한다. 이어 탈학교 청소년이 주체가 돼 헌법에 명시한 교육의 권리를 탈학교 청소년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헌법소원을 진행하려 한다. 유랑단에 참여한 윤희택(17·꿈꾸는 아이들의 학교)씨는 “여행을 마친 뒤 변한 내 모습이 가장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이들이 한 달 동안 머리와 가슴에 담아올 현실이 교육기본권 운동의 열기로 얼마나 옮아붙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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