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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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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교사 143만명에 대한 정치적 홀로코스트

대법원, 시국선언으로 기소된 전교조 간부들에게 유죄판결 논란…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표현의 자유 제한으로 읽는 시대착오
등록 2012-05-05 21:32 수정 2020-05-03 04:26
2009년 6월1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간부들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대법원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특정 정치세력 비판'이라며 유죄를 선고했다. 류우종 <한겨레>기자

2009년 6월1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간부들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대법원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특정 정치세력 비판'이라며 유죄를 선고했다. 류우종 <한겨레>기자

공무원은 ‘공무 외의 집단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법이 그렇다. 공무원 중에는 교사도 있다. 교사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 역시, 법이 그렇다. 노동조합은 집단행위를 전제로 한다. 법이 어째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다. 법이 서로 충돌할 때는 고치든지, 그게 아니면 최소한의 상식선에서 해석·적용해야 한다.

검찰, 국가공무원법 제66조 1항 적용 기소

2009년 6월18일 오전 11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집행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교사 시국선언- 6월 민주항쟁의 소중한 가치가 더 이상 짓밟혀서는 안 됩니다’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쇄신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전교조 소속 교사 1만7189명이 시국선언에 서명했다. 잡도리가 시작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시국선언이 ‘공무 외 집단행위’라며 전교조 집행부 88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시·도 교육청에도 중징계를 요청했다. 전교조는 1차 시국선언 한 달 뒤인 그해 7월19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1차 시국선언 관련자 고발·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민주주의 수호교사 선언’(2차 시국선언)을 한다. 이 선언에는 교사 2만8711명이 참여했다. 이 역시 고발·징계 절차가 뒤따랐다. 중징계 결과는 가혹했다. 교사 15명이 해임되고 45명이 정직, 3명에게는 감봉 처분이 떨어졌다. 검찰도 전교조 간부들을 국가공무원법 제66조 1항(‘공무원은 노동운동이나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을 적용해 기소했다.

전교조 처벌이 ‘탄압’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공무원·교사의 ‘집단행위’ ‘정치행위’까지는 선뜻 내켜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1차 시국선언문 내용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다. 한번 보자. “6·10 민주항쟁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6월 항쟁의 역사와 가치를 가르쳐야 할 우리 교사들은 국민들의 숱한 고통과 희생 속에 키워온 민주주의의 싹이 무참히 짓밟히는 현 상황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심한 당혹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공권력의 남용으로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집회·표현·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인권’이 심각하게 유린되고 있습니다. …공안권력을 정치적 목적으로 동원하는 구시대적 형태가 부활되고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명박 정권의 독선적 정국 운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국민의 버림을 받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에 우리는 오늘 이 선언을 발표하며, 현 정부의 국정을 전면 쇄신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또한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도 학교 운영의 민주화가 회복되기를 촉구합니다.”

교과부, 법 위반 아니라 판단했다 표변

이걸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1차 시국선언 당시, 대학교수·종교계·법조계·시민사회단체 등의 시국선언도 줄을 잇고 있었다. 국가공무원 신분인 서울대 교수들도 시국선언을 했다. 대학 교원은 정당 가입이나 선거운동도 할 수 있으니 예외란다. 처벌은 전교조에만 떨어졌다. 이 정도 수준의 내용을 정치행위라고 한다면 입 닫고 살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교과부도 이 사실을 알았다. 1차 시국선언이 있기 전 교과부는 “서명운동은 헌법이 보장한 의사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 있어 국가공무원법과 교원노조법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해 직무를 태만히 하는 집단행위로 볼 수 없다. 서명에 걸리는 시간도 몇 분에 불과해 직무 전념성을 훼손한다고 보기 힘들다”는 내부 검토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래놓고도 시국선언을 두고 “정치행위이자 집단행위”라며 고발·징계에 나섰다.

전국 법원에서 여러 건의 시국선언 재판이 동시에 진행됐는데 법원마다 유·무죄가 갈렸다. 지난 4월19일 하급심 판결들을 하나로 정리하는 대법원 선고가 나왔다. 대법관 전원(대법원장 포함 13명)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시국선언을 주도한 혐의(국가공무원법 위반 등)로 기소된 전교조 간부 3명의 상고심에서 벌금 70만~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일반적으로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사건을 심리하지만 대법관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거나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전원합의체로 사건이 넘어간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김능환·안대희·양창수·신영철·민일영·박병대·김용덕 대법관이 다수의견(유죄)을 냈다. “선거에 대한 영향 내지는 반 현 정권 전선 구축이라는 뚜렷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시국선언의 형식을 빌려 편향적인 입장에서 공권력 행사 및 주요 정책을 일방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공격” “정치적 중립의 한계를 벗어나 국정 운영을 주도하는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집단적으로 주장”했다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정치적 집단행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시국선언문이) 군사정권 시절을 떠올리는 공권력 남용이라는 표현 등을 사용하여 촛불집회· 관련 수사가 무리한 수사이고, 용산 철거 현장 화재 사고도 경찰의 무모한 진압 탓이며, 국토개발사업과 대북정책을 잘못된 정책이라는 취지로 비난하면서… 국정 운영의 전면 쇄신을 촉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가락질하던 공안 정국, 4대강 사업 등을 비판한 것에서 ‘반 이명박 정권’이라는 의도가 뚜렷하다고 본 것이다. 특정 정치세력(여당·청와대)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특정 정치세력(야당·시민단체)의 주장을 옹호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식이라면 야당 등이 4대강 사업 등에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아야 공무원·교사들의 시국선언도 정치행위가 아니게 된다는 황당한 논리가 성립된다.
다수의견도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과 기존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국선언 정도도 수용하지 못하는 대법관들이 말하는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대법 소수의견, “공익 반하는 행위 아냐”
무죄를 쓴 소수의견 대법관은 5명이다. 박일환·전수안·이인복·이상훈·박보영 대법관은 “국가공무원법 제66조 1항 위반 행위가 되려면 ‘공익에 반하는 행위’여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 출발한다. 다수의견도 마찬가지 판례에 기반했지만 방향은 정반대로 간 셈이다. 소수의견은 “(전교조 시국선언은) 유사한 시국선언들이 나오는 과정에서 특정 사안에 관한 정부 정책이나 국정 운영 등에 대한 비판·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 개선을 요구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요구한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요구는 헌법이 누구에게나 보장한 기본권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대법관들은 이런 행위가 우선 ‘공익에 반하는지’ 여부를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들여다보았다. “(이런 표현의 자유 행사는) 시국선언 주체인 전교조 교사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없고, 국민 전체의 이익 추구에 장애가 되는 것도 아니며, 시국선언이 나오던 사회 상황이나 국민 의식 수준에 비춰볼 때 공무 수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훼손하거나 민주적 공무원 제도의 본질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 1·2차 시국선언은 어느 모로 보아도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검찰이 적용한 법조항이다. 검찰은 ‘정치운동’ ‘정치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제65조가 아닌 ‘집단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제66조를 위반했다며 기소했다. 소수의견은 “1·2차 시국선언은 특정 정치집단이나 정파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정부의 특정 정책이나 개별 공권력 행사에 대한 것으로, 설령 그것이 일부 정치집단이나 세력과 의견이 같아 보여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쉽사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사가 시국선언을 ‘정치운동’ ‘정치적 행위’로 기소하지 않은 것도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다수의견처럼 시국선언이 정치적 행위였다면 집단행위를 처벌하는 다른 조항을 끌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소수의견은 대의 민주주의가 올바로 작동하기 위한 대전제를 향해 직진한다. “1·2차 시국선언은 당시 정부의 주요 정책과 국정 운영에 대해 비판적 여론이 형성된 상황에서 교원들 자신의 비판적 의견을 표현한 것으로, 그것이 추구하는 목적은 정부로 하여금 국민의 여론을 존중하여 정책에 반영하도록 요구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마땅히 공론의 장으로 받아들여야 할 주장이며 행위이다. 그럼에도 단지 표현 주체가 공무원인 교원 집단이라는 이유로, 공적 논의에 관한 것인 바에는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표현의 자유에 관한 헌법상 보호 범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부당하기 그지없다.”

[%%IMAGE3%%]공무원 정당 가입 처벌 OECD 유일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김진 변호사는 “대법원 다수의견은 정치활동이 아니더라도 집단적으로 행해지면 처벌할 수 있다고 본 것인데, 개인적으로 하는 합법행위라도 집단적으로 행해지면 위법이라는 논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집단적일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에 대해 집단적 의사표현을 불온시하는 것은 지극히 부당하다”고 했다. 헌법학계 관계자는 “국가공무원법 제66조는 애초 취지가 노동운동을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게 조금씩 변형되더니 공무 외의 집단행위 금지로 바뀌었다. 교원노조법·공무원노조법이 만들어졌는데도 예전 국가공무원법이 그대로 적용됐다. 시대 변화와 불일치하는 측면이 있다”고 다수의견을 에둘러 비판했다. 노동조합을 허가해놓고 무리지어 집단으로 행동하지 말라는 이상한 주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했다. 공무원·교사의 정치행위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생래적 거부감은, ‘정치적 중립성 보장=정치적 기본권 제한’이라고 등치해버린 데서 자라났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해당 헌법 조항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인 1962년 5차 헌법 개정에 삽입됐다. 의도는 분명하다. 공무원을 정권의 충복으로 삼고, 적어도 야당으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기계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사실상 공무원은 집권여당에 충실한 행위자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2010~2011년 검찰은 옛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교사와 공무원 수백명을 기소했다. ‘당비 1만원’을 낸 사람까지 남김없이 기소했는데, 정치자금법이나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교사의 정당 가입이나 당비 납부를 금지하고 있다. 정당 가입 자체를 처벌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다.
1949년 7월25일 국회임시회의 속기록을 보면 국가공무원법 제정 과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증언들이 나온다. 국가공무원법 초안 제36조는 이랬다. ‘공무원은 정치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며,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정치운동에는 단순히 정당에 가입하는 것을 포함하지 아니한다.’ 얼개는 지금과 비슷한데 ‘단순 정당 가입’은 허용하자는 것이다. 법안 심사를 하는 의원들은 열띠게 싸웠다. “정당에는 가입해도 좋지만 정치운동을 해서는 못 쓴다. 비유하자면 술 잘 먹는 애주가에게 술병을 재어놓고 먹지는 말고 차고만 있거라와 마찬가지다. 정치운동을 말라 할 것 같으면 정당에 무엇 때문에 가입하고 무엇 때문에 가입을 시키겠나? 공산당과 투쟁하는 대한민국 신생 민주조선이 약진하는 이 마당에 일반 공무원이 정당에 휩쓸려서 국내에 파쟁을 조장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김경도 의원) “36조가 완전히 헌법정신에 배치되는, 결국 근로자의 모든 발언권을 봉쇄하고 국가라는 것이 민중을 일개의 종으로… 일절 대중의 발언권은 하나도 없이 그냥 복종하라는 결과로 되는 것이며… 외국의 실례를 보아도 이런 조문이 없는 것이 발견되었다. 만약에 우리 대한민국 국회가 근로자나 대중에게 단체(행동)권을 주면 곧 파괴를 한다 이렇게 규정한다면 근로자를 버리고 여러분들 자신만의 독특한 국가를 세울 수 있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공무원은 정치운동을 금한다는 자체에 모순이 내포되고 있다.”(전진한 의원) “공무원이라고 해서 정당에 가입하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헌법상 모순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정당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헌법에 따라 적극적 정치운동은 아니하면 그만이다.”(이원홍 의원) 이날 표결 끝에 ‘정당 가입 허용’ 조항은 삭제된다.

헌재서 정치적 기본권 제한 위헌 심리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는 지난해 2월 교원노조의 정치활동을 ‘일절’ 금지한 교원노조법 제3조가, 헌법이 보장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전교조 간부들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재판부는 “교원단체는 교육 전문가로 구성됐다. 올바른 교육정책 수립·집행을 위해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도 적극 허용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같은 달 전교조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은 교사와 공무원의 정당활동을 금지하는 정당법과 국가공무원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시국선언을 했던 전공노도 소속 공무원 14명이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공무원·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늘어나면 공무집행이 망가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57조(복종 의무)는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어기면 징계·처벌을 받는다. 정치적 기본권이 주어져도 공무원의 공무에는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이종수 교수는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에 대한 오해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과거 관권선거 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다는 것이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분으로 정치적 기본권이 싹둑 잘려나갔지만 이를 복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헌재의 판단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공무원·교사들에게 정치행위는 공무현장, 교육현장, 그리고 그 어느 곳에서도 질식된다. 공무원 98만 명, 교사 45만 명이 그렇게 살고 있다. 정치적 홀로코스트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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