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보부는 22일 오전 모국 유학생을 가장, 학원에 침투한 북괴 간첩 일당 21명을 검거,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 20일 서울지검에 구속 송치하고 관련 용의자를 계속 수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위장유학 간첩인 김오자(24·여·부산대3) 등 2명도 북괴를 왕래, 노동당에 입당한 후 학원에서 암약해왔다는 것이다.”( 1975년 11월22일) ‘학원 침투 간첩단 적발’이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에서 김오자씨의 ‘범죄피의사실’은 이렇다. “조련계 간부 장모에 포섭돼 72년 3월 부산대에 침투, 같은 학교생 김정미를 포섭한 뒤 75년 1월21일 일본을 거쳐 입북, 노동당에 입당한 후 ‘부산대 내에 통혁당 지도부를 구성하고 지하당을 구축하라’는 등 지령을 받고 부산대생 노승일, 박준건, 김준홍 등을 포섭, ‘부산대통혁당지도부’를 구성, ‘학원민주화’ ‘영광스런 조선노동당 창건 30돌을 열렬히 축하한다’는 등의 불온전단 350여 장을 제작, 학교 구내에 살포하고 학생 간부들에게도 우송.”
조작사건에 연루된 재일동포 160명
일본 인권단체와 재일동포 사회에서 ‘11·22 사건’으로 불리는 모국 유학생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인 김오자씨는 현재 일본 교토에 살고 있다. ‘재일한국인 양심수의 재심 무죄와 원상회복을 위한 모임’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정사(56)씨가 지난 11월2일 한국에 왔다. 김오자씨의 재심 신청을 도우려고 1975년 당시 김오자씨와 함께 붙잡혔던 ‘공범’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재일동포인 김 이사장 자신도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다. 모국으로 유학 온 김 이사장은 1977년 전방 견학을 하며 탐지한 군사기밀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재일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소속 공작원에게 전달하고 유신헌법을 비방했다는 혐의(국가보안법·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수사 과정에서 당연히 물고문·전기고문이 따랐다. 고문을 당했다고 호소했지만 바짓가랑이 한 번 들어보라는 소리 없이 1·2심 법원과 대법원은 그에게 징역 10년을 확정했다. 판결문에는 한민통이 어째서 반국가단체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김 이사장과 아무 관련이 없던 한민통은 이 판결로 인해 반국가단체가 됐고, 한민통 초대 의장으로 내정돼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후 1980년 내란음모 사건의 ‘수괴’로 몰리게 된다. 김 이사장은 지난 9월23일 자신의 재심 사건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아냈다. 34년 만이었다.
1970~80년대 모국으로 유학을 왔다가 조작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은 재일동포 유학생들은 김 이사장이 파악하기로 16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현재 연락이 닿는 이들은 37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160명 가운데 현재 재심을 신청한 이는 20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5명은 재심이 개시돼 1심 등에서 무죄를 받거나 무죄가 확정됐다. 또 다른 5명은 재심이 진행 중이다. 김오자씨의 경우 당시 사형이 선고됐다. “김오자씨는 지금 일본 교토에서 살고 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어렵게 살고 있는데, 재심을 신청하자고 해도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오자씨가 재심 신청을 주저하는 이유는 충격적이다. “‘공범들’을 다시 만나도 괜찮으냐는 거지요. 김오자씨는 아직도 1970년대식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분의 머리 속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때 당시로 멈춰버린 거죠.” 김오자씨 옆방에 붙잡혀 있던 재일동포 유학생 김동휘씨는 ‘인간의 비명 소리가 아닌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김오자씨의 트라우마가 너무 세다”고 했다.
동포 피해자들 배려 않는 정부
11·22 사건 당시 한국에는 재일동포 유학생 200~300명이 머물고 있었다. 이 가운데 10%에 달하는 유학생들이 조작사건 한 건으로 단번에 간첩으로 몰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이던 김영진씨는 “붙잡힌 사람이 그 정도고, 조사는 유학생 모두가 받았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조사관은 현재 재일동포 피해자들의 재심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조국에 기대를 가지고 왔다가 인생이 망가진 채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이 많다. 일본으로 가자마자 죽거나 정신병원에 간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극도의 고문과 협박이 그들을 이런 지경으로 몰아간 것이다.
일본 오사카에는 ‘재일한국인 양심수 동호회’가 있다. 20~30명이 모이는데 과거 ‘사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 짐작하고 위로할 뿐이지 과거를 구체적으로 떠올리지는 않는다. 괴롭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이분들이라도 서로 힘을 모으면 더 많은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길이 열릴 텐데 그게 쉽지 않다”고 했다. 한국 사회의 관심도 없고, 일본에서 먹고사는 일만 해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재일동포들이 한국에서 열리는 재심 재판에 한 번이라도 참석하려면 일주일 가까이 경제 활동을 접어야 한다. 김 이사장은 “앞으로는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가 직접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에 대한 국가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빼앗긴 청춘을 돌려줄 수는 없으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의 재심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고, 손해배상을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생각이다. 김 이사장은 이런 이들을 위한 ‘치유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재일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나머지 삶만큼은 그래도 괜찮은 인생이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는 고문·국가폭력 피해자 치유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한국의 인권의학연구소 같은 곳이 재일동포들에게도 필요하다고 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김오자씨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지난 3월 교토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이런 부분까지 마무리해줘야 “진정으로 속죄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진 전 조사관은 “한국 정부는 민주화가 된 뒤에도 재일동포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배려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MB 정부 들어 늘어난 검찰의 상고
김 이사장의 재심 사건도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무죄가 나왔지만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김 이사장은 “상고를 예상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대힌민국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고문·조작 사건의 재심에 대한 검찰의 상고가 부쩍 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국가폭력 사건을 검찰이 뒤집어보겠다고 상고를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결국 박정희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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