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에 내리니 ‘전쟁 선포’ 머리띠를 두른 아저씨들이 맞았다. “희망을 가장한 절망버스를 막기 위해 여기에 모인 여러분”이라는 마이크 소리가 부산역 광장을 장악했다. 보수단체가 점거한 부산역 광장을 지나 차도에 이르니 이번엔 경찰이 경고 방송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불법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5번의 경고 방송 후에 해산 작전에 들어가겠습니다.” 10월8일 저녁 7시, 부산역에서 맞은 제5차 희망버스 ‘가을 소풍’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자라야
부산역 건너편 인도에 모여 있던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영도와 가까운 남포동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앞에 가는 어떤 이들은 머리에 종이로 만든 꽃을 달았다. 아빠와 함께 지나가는 꼬마는 연등을 들었다. 가을 소풍의 ‘코드’는 ‘소금꽃과 스머프’. 적잖은 이들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함께 85호 크레인에 있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연대를 상징하는 푸른색 옷을 입었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가 없는 ‘이상한 나라의 스머프’들이 되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날도 행진은 남포동에서 가로막혔다. 85호 크레인과 다리 하나 사이에 둔 동네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남포동 부산극장 옆길에 자리를 잡았다. ‘완전무장’ 경찰들이 갑자기 시위대를 밀어붙이고 수십 명의 사람들을 연행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여기에 앉아서 축제를 벌였다. 시위대 가운데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박자은 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의 머리카락이 쇼트커트로 보일 만큼 ‘길었다’. 지난 5월1일,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며 삭발을 했던 여성의 머리가 그만큼 자랄 동안 5번의 희망버스가 출발했다. 그러나 여전히 김진숙은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황토색 옷을 입은 이들이 나와 민요를 불렀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이 “강정 바당~ 우리 바당~” 선창하자 사람들이 따라했다. 얼마 전에 한진중공업 ‘스머프들’이 강정에 갔고, 이번엔 강정 사람들이 부산에 왔다. 이들은 “강정의 평화는 한진에서 시작됐다”며 “구럼비 바위가 깨져도 언젠가 승리할 것이란 희망을 잃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동과 평화의 연대는 그렇게 바다를 건넜다. 이어서 일본 오사카에서 온 해고노동자들이 나섰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의 자본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한국과 일본의 노동자는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Is This Love~ Is This Love That I’m Feeling~” 앞을 보는 참가자들 뒤에서 은은한 트럼펫 소리 반주에 맞춰 밥 말리의 (Is This Love)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산 스카밴드의 공연이 시작되자 참가자들이 돌아앉았다. 흔치 않은 레게 리듬에 사람들 어깨가 들썩이기에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노래가 끝날 무렵, 문득 돌아보니 불빛 속에서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밴드의 보컬은 “남녀만 사랑이 아니죠. 이렇게 모인 우리가 사랑이죠?”라고 외쳤다. 이들이 “MB Is Shit”이라는 후렴이 반복되는 노래를 부르자 일어나 리듬을 타는 이가 많았다.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세계의 고통을 검은 리듬에 담았던 밥 말리의 레게가 지금 여기의 희망과 어울려 춤추는 순간이었다. 레게 리듬이 흐르는 앞에는 검은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아나키즘 깃발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뒤에는 ‘대학입시 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 가방끈들의 모임’ 사람들이 ‘우리가 문제라고 뻥치지 마. 문제는 경쟁만을 강요하는 이 사회’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플라스틱 조각으로 만든 축제
밤이 깊어, 축제는 행진으로 이어졌다. 85호 크레인이 있는 영도로 가려 했지만, 경찰은 영도대교 건너편에서 행진을 막았다. 자정 즈음에 경찰이 쏜 물길이 퍼졌다. 물대포를 맞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도 있었지만, 어찌 보면 밤하늘에 물놀이를 하는 듯한 몽환적인 밤이었다. 바다에서 밀려온 밤안개가 깔린 검은 도로에 로보캅 같은 전경들이 마치 공상과학(SF) 영화의 병사들처럼 보였다. 그 전경들 뒤에는 살수차가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전경차가 늘어선 뒤에 육중하게 버티고 있는 백화점은 기묘한 풍경에 방점을 찍었다. 경찰이 몰려왔다 물러서는 이상한 리듬을 반복하는 사이에, 아랑곳없이 축제를 벌이는 이들이 있었다.
플라스틱 나팔을 부는 소녀와 북을 치는 소년이 있었다. 양은 냄비와 뚜껑 사이에 끈만 달면 훌륭한 타악기가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도 있었다. 사실 소년·소녀라고 부르기엔 조금 나이가 많지만 대부분 20대인 이들이 둥글게 모여 나팔을 불고 냄비를 치며 경찰 건너에서 난장을 벌였다. 이들이 “평화행진 보장하라~ 김진숙이 보고 싶다~” 하며 앞으로 나가자, 동화 속 피리 부는 소년을 따르듯 이들을 쫓아가는 이가 적잖았다. 이렇게 기뻐 날뛰는 청년들 옆에 연등을 든 어른들이 웃고 있었다. 이들과 함께하는 깃발엔 한자로 ‘시적 정의’(詩的 正義)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회 깃발이었다. 저 멀리 살수차가 비추는 몽환적인 ‘라이트’,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완성시켜주듯 느닷없이 울리던 경고 사이렌, 이상한 것들이 조화를 이룬 가을밤이었다. 이들은 밤새 남포동 골목을 “랄~라라 랄랄라~” 스머프 노래를 부르며 휘젓고 다녔다.
다음날 다시 이별의 부산역. 5번의 희망버스 동안 어느새 얼굴이 낯익은 스머프들과 처음 얘기를 나눴다. “아직 미혼인데예” 하는 젊은 해고자는 국회 권고안 얘기를 꺼내자 “까깝하다 아입니까”라고 답했다. 복직이 아니라 재고용인데다 1년에 2천만원 지원을 할 돈이면 당장 복직시켜도 된다는 얘기였다. 그는 “쌍용 보이소. 1년 뒤에 어떻게 됐습니꺼”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언론이 협상 타결을 기정사실화해버렸고, 가족들은 막 전화 오고”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역 광장을 지나던 중년의 사내는 “이거 머할라 합니까? 해결됐다 아입니까?”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희망버스는 떠났지만 부산을 떠나지 못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몰라, 85호 크레인 앞에 갔다. 김선우 시인이 폴짝폴짝 뛰고 팔로 하트를 그리며 크레인 위의 김진숙 지도위원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옆에는 낮 12시 크레인 위로 점심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한국 문화운동의 ‘전설’인 채희완 선생과 여균동 감독이 빙긋이 웃고 있었다. 크레인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여 감독이 말했다. “김 지도는 내려오면 이제 모든 고통받는 현장을 돌아야지.” 김 시인이 덧붙였다. “당장 강정으로 갈 것 같던데요.” 이날 희망버스 승객에게 건네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마지막 인사는 “여러분이 있어서 우리 네 사람 살아서 땅을 밟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 봅니다”였다.
부산=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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