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정리해고로 촉발돼 9개월 넘게 이어진 한진중공업 사태가 중대한 분수령을 맞았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박상철 전국금속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 10월11일 취재진을 피해 서울의 한 비공개 장소에서 처음으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정리해고자 94명을 1년 안에 재고용하는 것을 뼈대로 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권고안을 두고 의견을 주고받은 뒤 교섭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고안 확정일 vs 해고 시점
노조와의 대화를 일절 거부하던 조 회장이 국회 권고안을 수용하고 교섭에 나선 것에 대해선 한진중공업 안팎의 평가가 엇갈린다. 조 회장이 대화의 전면에 나선 것만으로도 중대한 태도 변화라고 평가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조세포탈과 일자리 빼돌리기 등 조 회장의 5대 의혹을 제기하며 사법 당국의 수사를 촉구해온 노조가 오히려 태도를 누그러뜨렸다는 진단도 나온다.
교섭의 쟁점은 표면상 두 가지다. 해고자들의 업무복귀 형식(복직이냐, 재고용이냐)과 복귀 시점(권고안 합의일로부터 1년 안이냐, 해고시점부터 1년 안이냐)이다. 첫 번째 쟁점에 대해선 현장 노동자들이 “국회 권고안의 ‘재고용’은 해고 시점까지의 근속연수가 인정되지 않는 ‘재입사’여서 퇴직금 산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며 수용하기 힘들다는 태도다. 반면 회사는 해고자를 복직시키더라도 ‘정리해고 철회’의 모양새로 비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재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탓이다. 이 때문에 노사 양쪽이 교섭을 통해 실리와 명분을 나눠갖는 방향으로 절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표현은 복직이 아닌 재고용이지만, 해고 전 근속기간을 인정해주는 사실상의 ‘해고 철회’로 합의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10월11일 금속노조와 조 회장의 첫 대면에서 근속연수 인정에 대해선 적극 검토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복귀 시점에 대해선 노조 쪽이 권고안에 나온 ‘권고안 확정일(10월7일)로부터 1년 안’이 아닌 ‘해고 시점(2월14일)으로부터 1년 안’을 요구하고 있지만, 복귀 약속이 확실히 지켜진다면 권고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노조 쪽이 권고안을 받아들일 경우 이후 교섭에선 해고 기간의 생계비 지급 방식 등을 놓고 노사간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280여 일째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등을 상대로 회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와 형사 고소·고발 취하 문제도 쟁점 중 하나지만, 노사 양쪽은 이 문제를 아직까지 본격적인 교섭 의제로 올리지 않은 상태다. 다만 김 위원을 어떻게든 빨리 크레인에서 내려오게 해야 하는 회사 쪽으로선 손해배상 청구나 형사 고소·고발 가운데 한 가지는 취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지 않겠느냐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노조 선거 결과가 끼칠 영향은
교섭이 진행 중인 가운데 10월14일 치러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선거 결과도 변수다. 이날 선거에서 선명 노선을 주도해온 정리해고투쟁위원회 쪽 후보가 54%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일각에선 이번 결과가 노조 내부의 ‘강경파’를 자극해 원만한 타결을 어렵게 만들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지만, 오히려 선거 결과를 주시하며 협상 속도와 전략을 조율해온 회사 쪽의 ‘대결 의지’를 약화시킴으로써 조기 타결로 이끌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교섭을 조속히 타결지어 김진숙 지도위원을 어떻게든 빨리 내려오게 해야 하는 한진 지회 처지에서도 회사 쪽의 일방적 양보만을 요구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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