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절망은 휴가가고 희망은 머무르길

항암 치료 중인 아버지와 함께 떠난 가족의 첫 여름휴가… 폭우에 묻혀버린 반나절 만의 바캉스
등록 2011-09-08 05:24 수정 2020-05-02 19:26
마재경(왼쪽 두 번째)씨가 1등 당선 소식을 들은 뒤, 어머니·아버지·여자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쉽게도 비 때문에 망쳐버린 여름휴가 관련 사진은 ‘억울해서’ 찍은 비 내리는 배경의 자동차 창문밖에 없으나 보낸 사진의 용량이 너무 작아 함께 싣지는 못했다.

마재경(왼쪽 두 번째)씨가 1등 당선 소식을 들은 뒤, 어머니·아버지·여자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쉽게도 비 때문에 망쳐버린 여름휴가 관련 사진은 ‘억울해서’ 찍은 비 내리는 배경의 자동차 창문밖에 없으나 보낸 사진의 용량이 너무 작아 함께 싣지는 못했다.

가족. 가족이라고 해봤자 아버지, 어머니, 나 이렇게 달랑 셋이 전부인지라 단란하다 못해 단출하기 그지없지만, 내 나이 서른하고도 두 해를 넘긴 지금까지도 세 식구가 떠난 여행이 한 번도 없었다. 평생을 건설노동자로 현장에서 ‘먼지밥’을 먹어가며 일한 아버지, 또 당신의 평생을 가사도우미로 내 집이 아닌 남의 집 살림을 윤내는 데 다 보내버린 어머니를 보며, 어리석게도 이제는 노인이 되어버린 두 분을 모시고 어디 한번 가야지 하는 생각도 못할 만큼 난 철이 없었고, 마음도 짧기만 했다.

가족의 역사에 기록할 첫 여행

재작년 가을, 급기야 아버지는 대장암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몸 여기저기로 퍼져나간 암세포는 잘라낸 암세포보다 더 많이 남아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 3기라는 판정을 받아 지루하고 잔인한 항암투병이 시작되었다. 1년여에 걸친 여덟 차례의 항암치료를 끝내고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때, 안도하는 한편 간병에 지친 난 내 맘과 몸을 쉬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때라도 늦지 않았을 텐데.

지난 5월 악성림프종 재발 소식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길을 잃고 당사자인 아버지보다 더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그 뒤로 또 세 차례의 2차 항암투병기가 시작되었다. 한 달 간격을 두고 행해지는 2차 항암치료의 네 번째 항암제 투여를 앞두고 마지막이 아니길 빌었다. 한편 마지막이면 어쩌나 하는 맘에 가까운 계곡에라도 가려고 여기저기 마땅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항암제를 투여받고 그로 인해 통증이 시작되면 꼼짝도 못하고 항암제와 싸워야 하고, 그 항암제를 이겨내겠다고 발악하는 암세포와 싸워야 하는 아버지이기에 날짜를 조정할 틈도 없이 항암제 투여 전으로 급히 날을 잡았다.

항암치료 중인지라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진데다 해방둥이(1945년생) 노인네인지라 멀리도, 사람 많은 곳도 갈 수 없었다.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는 돌아와야만 하는 짧은 일정이었다. 근교의 자연휴양림을 알아보니 취사도 되고 인적도 드물기에 적당하다 싶어 그곳으로 정하고 전날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자식 장가가서 손자·손녀 품에 안고 그 조그마한 입에 사탕 하나 물려보는 게 소원의 다인 소박한 노인네의, 그야말로 소박한 소원 하나 들어드리지 못하는 못난 아들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결혼을 약속한 친구가 이번 여행에 함께했다는 것이다. 셋이 넷이 되었다. 사근사근한 어여쁜 예비 며느리를 보며 웃음짓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식의 도리를 못한 죄책감도 만의 하나 정도는 덜어지는 듯했다.

간혹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행주도 걸레도 어느 것도 손에 쥐지 않아도 되는 어머니 또한 차창 밖을 보며 한없이 마음을 내려놓는 듯했다. 한데 그때부터 투둑투둑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맑은 하늘 보기가 손에 꼽을 만한 올여름이었지만, 그래도 하늘이 참아주길 기도하며 목적지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비가 주체할 수 없을 만치 쏟아지고 있었다.

억울했다. 세상엔 처음인 것이 적지 않겠지만 내 가족이라는 세상 안에서는 나름대로 역사적인 날이었다. 차에 세 사람을 남겨둔 채 밖에다 기어코 텐트를 치고 자리를 펴보았으나 허사였다.

암세포가 대신 멀리 떠나주길

야속한 하늘을 상대로 혼자 양껏 화풀이를 하고, 혹여나 못난 아들의 욕심에, 궂은 날씨에 아버지가 감기라도 걸릴세라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차 안의 나는 서글펐으나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여자친구도 넷이 함께한 첫 여행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워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조촐한 식사와 고스톱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 네 사람은 계곡보다 상쾌하진 않지만 계곡보다 시원한 병실에서 마주했다. 아버지의 열두 번째 항암치료 때문이었다. 짧았고, 어찌 보면 허망한 반나절의 에피소드로 끝나버린 여름휴가지만 함께했으므로 충분했던 셋, 아니 네 사람의 따뜻한 여름이었다. 우리가 다하지 못한 여름휴가, 암세포가 대신 멀리, 아주 멀리 갔으면 좋겠다. 마재경


■ 마재경씨의 1등 당선 소감

“우리네 부모님들에 대한 응원”
웃음을 자아내는 유쾌한 여름휴가 여행담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한데도 마음을 보태주신 것은 평생의 수고를 늙고 병듦과 맞바꾼 우리네 부모님들에 대한 응원과 감사의 뜻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봅니다. 더불어 여러 모양의 아픔과 마주하고 계신 환우 및 가족들의 내일에, 강건함을 같은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당선자와 나눈 짧은 인터뷰

“다음에는 주말 여행을 기약하며”
대전에 사는 마재경씨는 “아버지가 편찮으시니까 멀리 가기 겁나서 인근 충북 옥천의 장령산 자연휴양림에 갔다가…”라며 여름휴가의 기억을 전했다. “암환자에게는 합병증이 위험하다는데 괜히 제 욕심에 아프신 아버지께 무슨 탈이라도 날까봐….” 마음먹고 잡은 첫 가족여행에서 폈던 텐트를 폭우 때문에 접은 마씨의 마음은 그랬다. 전씨는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다시 받은 뒤 주말에라도 멋진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