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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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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광풍’이 낳은 촌스런 서울

서울디자인올림픽, 해치·간판개선사업 등 ‘디자인 서울’ 정책들… 돈잔치에 일방적 행정으로 몰역사·몰개성화 초래
등록 2011-08-10 15:25 수정 2020-05-03 04:26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건설 현장. 이 건축물을 지으려고 동대문운동장을 헐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디자인 사업 가운데 상대적으로 비판 여론이 적은 편에 속한다. 한겨레21 윤운식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건설 현장. 이 건축물을 지으려고 동대문운동장을 헐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디자인 사업 가운데 상대적으로 비판 여론이 적은 편에 속한다. 한겨레21 윤운식

서울은 촌스럽다. 급속한 도시화를 거치며 서울시는 표정 없는 도시가 됐다. 역사는 난개발 속에 묻혔고, 도시의 개성은 모습을 찾기 힘들게 됐다. 고궁은 국적 없는 빌딩 사이에서 주눅이 들었다. 도시의 실핏줄인 골목길은 재개발 광풍에 휩쓸려 사라졌다.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막개발’이 남긴 상처를 보듬고, 개성을 입히자는 취지다. 게다가 디자인은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어울리는 지식산업으로 적격이었다. 좋다. 그런데 그의 희망은 이뤄졌을까. 집중 폭우에 서울 곳곳에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이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른바 ‘보이기식’ 행정의 상징으로 도드라지고 있다. 그 비판이 맞는 걸까, 아니면 오 시장으로서는 억울한 우격다짐일까. 오래된 수도 서울은 아직도 오 시장의 선진적인 정책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돌팔이 성형외과 의사에게 서울의 ‘생얼’을 맡긴 것일까. 답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가 펼친 디자인 정책 가운데 몇 가지 핵심을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세계디자인수도·서울디자인올림픽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ICSID)에서 서울을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 서울시는 관련 사업을 벌임. 예산: 284억원+α

서울이 ‘세계 디자인 수도’가 됐다. 어리둥절할 만한 내용이지만, 사실이었다. 그것도 명망 있는 국제디자인단체의 결정이었다. 2007년 12월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ICSID)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총회에서 서울시를 첫 번째 세계 디자인 수도로 지정했다. 참가자들이 만장일치로 내린 결정이었다. 믿기가 쉽지는 않았다. 서울시의 도시경관이나 설계가 세계적으로 뛰어난 수준이라고 딱히 말하기가 어려웠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서울시의 과거 기록을 찾았다. 시청도 당시에는 따로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다. 시청마저도 세계 디자인 수도 지정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 대변인실은 매우 정치적인 조직이다. 이런 성과를 지나칠 이유가 없었다. ICSID 쪽의 자료를 살펴봤다. 서울시의 디자인 거리 사업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김홍일 편집장은 “서울시가 지금껏 해놓은 것보다 앞으로 하려는 사업들의 비전을 높이 사서 ICSID가 결정했을 것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은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시청에 디자인본부를 신설하고, 신임 본부장 자리를 부시장급으로 격상했다. 디자인을 포괄하던 문화국장이 오히려 디자인본부장보다 낮은 직급이 됐다. 권영걸 전 서울대 미대 학장이 초대 본부장으로 부임했다.

서울시의 행보는 이듬해부터 빨라졌다. 시청이 ‘세계 디자인 수도’ 지정을 기념하려고 만들어낸 아이디어가 기상천외했다. ‘디자인올림픽’을 열자는 안이었다. 서울시 사정에 밝은 한 디자인 전문가는 “처음 행사 명칭을 들었을 때, 세계적인 디자이너·건축가들이 서울에 와서 이어달리기라도 하는 행사인 줄 알았다”고 비꼬았다. 디자인과 올림픽을 합한 서울시의 조어법은 논란을 낳았다. 전문가들이 모인 자문회의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승부를 가르는 올림픽과 디자인은 개념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젊은 예술가들은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에 반대하는 누리집(www.ilikeseoul.org)과 ‘디자인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라는 트위터 계정을 만들기도 했다. 서울시는 행사를 강행했다. ‘올림픽’이라는 이름에 맞게 행사장은 서울 잠실 주경기장으로 결정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시 행사 누리집에서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젊은 신진 디자이너들이 서울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행사장을 찾아온 외국인 디자이너는 많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도 찾기 힘들었다. 국민도 디자인올림픽이 뭘 하는 행사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흥행’이 저조하자, 서울시는 시청과 산하기관의 공무원들에게 행사를 관람하도록 해 관제 동원 시비를 낳았다. 빈약한 전시 내용은 볼거리로 채웠다. 빅뱅과 2PM 등 인기가수들이 꾸민 축하공연이 벌어졌고, 화려한 불꽃놀이가 잠실 하늘을 수놓았다. 2009년 개막식 행사장 밖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사람 잡는 개발이 디자인이냐”며 그해 초에 있었던 용산 참사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무리하게 가져다 쓴 ‘올림픽’ 명칭 때문에 서울시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국제올림픽평의회(IOC)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통해 “‘올림픽’이란 단어가 스포츠와 무관하게 쓰이고 있다”며, 행사 이름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서울시는 2년 동안 버텼다. 참다 못한 대한체육회가 “IOC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자,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서울디자인한마당’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지난해까지 서울시가 이 행사에 쓴 예산은 약 230억원이다. 해마다 70억원 넘는 비용이 들었다. 서울시는 이 행사를 내년에도 이어갈 계획이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내년에 ‘서울디자인한마당 2012’를 열기 위해 올해 1억5천만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서울시는 또 세계 디자인 수도와 관련해 ‘디자인서밋’ 등의 행사를 여는 데 지난해 59억원의 예산을 썼다. 중앙부처의 디자인 정책 관계자는 “디자인올림픽 등 디자인 수도 관련 행사들은 모두 시민 대부분의 관심을 받지 못한 수십억원짜리 대규모 잔치였다. 그나마 보여주기식 행정의 기준으로도 실패한 행사였다”고 말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사업 내용: 서울 중구 을지로 7가 부지 6만5232㎡에 지하 3층, 지하 4층 디자인 종합지원시설. 예산: 4127억원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서울은? 오세훈 시장의 오랜 고민 중 하나다. 서울시를 상징할 만한 건축물이 없다는 점이다. 외신에서는 종종 우리나라의 얼굴로 광화문이나 남대문의 이미지를 가져다 쓴다. 서울시는 그보다 더 그럴듯한 것을 원했다. 대안으로 나온 것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였다. 이명박 전 시장이 청계천 사업을 타고 대권 후보로 부상했다면, 오 시장이 바라보는 정치적인 도약대는 DDP였다. 서울시는 2006년부터 동대문 일대에 대형 디자인 시설을 짓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설계안 공모를 시작했다. 당선자는 이라크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였다. 그의 작품은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만큼 실제로 구현하기 어렵기로도 악명 높았다. 이렇게 확정된 DDP 설계안은 사실 시작부터 논란거리를 품고 있었다. DDP를 건설하려면 83년 역사의 동대문운동장이 자리를 양보해줘야 했다. 김구를 비롯한 상하이 임시정부 요인들을 맞는 환영행사가 1945년 12월19일 열린 곳이 다름 아닌 동대문운동장이었다. 해방 정국에서 신탁·반탁 운동을 벌이는 군중을 굽어본 것도 운동장이었다. 좀더 가까이는 1976년 ‘박스컵’ 축구대회에서 차범근 선수가 말레이시아전에서 종료 직전 7분 동안 내리 세 골을 넣어 4-4 동점을 만든 곳도,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MBC 청룡 이종도 선수가 역전 만루 홈런을 터뜨린 곳도 동대문운동장이었다. 운동장 철거를 두고 격론이 오갔다. 열쇠를 쥔 서울시의 결론은 물론 DDP 건설이었다. 동대문운동장의 거대한 외형은 2008년 3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과거의 건물이 모두 살아남아야 할 까닭은 없었다. 문화재가 아닌 건물은 수명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숙명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장진택 디자인 칼럼니스트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건축의 실험성에서 서울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될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중앙부처의 관료는 “동대문 지역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무시하고, 의견 수렴 과정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행정의 결과”라고 매섭게 비판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내년 7월에 준공될 예정이다.

해치사업


흔히 ‘해태’로 더 잘 알려진 해치를 서울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로 정하고 조형물·기념품·상징물을 생산하는 사업. 예산:34억2천만원(2010년 한 해 예산 기준)

서울시는 2008년 해치를 서울시의 상징 동물로 발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시 기자 설명회에서 “서울시는 이렇다 할 상징물이 없었다”며 해치를 수도의 상징으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시는 당시 설문조사와 공청회를 통해 시민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그다음부터 해치택시와 해치만화, 해치인형 등이 줄줄이 등장했다. 물론 서울시가 돈을 댔다. 2009년 12월에는 서울 중구 덕수궁길에 자리잡은 시청사 앞에도 대형 해치 조형물이 세워졌다. 지난해에는 한남대교 북단에 있던 호랑이상이 해치상으로 교체했다. 예산 1억4천만원이 들었다. ‘시민의 의견’을 따른 결과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시민들이 해치를 서울의 상징으로 꼽았다? 과거 기록을 살펴봤다. 2008년 설문조사의 질문은 서울의 상징으로 무엇이 연상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한강, 남산, N서울타워 등 27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랐다. 시민들의 선택은 경복궁이었다. 해치는 설문 문항에도 없었다. 결과를 받아든 서울시는 난처했다. 건물인 경복궁을 도시의 상징으로 삼기가 난감했다. 대신 궁궐에 있는 온갖 동식물들이 ‘물망’에 올랐다. 호랑이와 봉황, 소나무 등이 후보였다. 결국 궁궐 앞을 지키던 ‘해태’가 차출됐다. 이름은 낯선 ‘해치’로 바뀌었다. 당시 서울시는 관련 공청회를 열었다고 밝혔지만, 참석 인원은 100명에 못 미쳤다. 해태는 ‘정의와 청렴’을 상징해서 조선시대에 사헌부에서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해태상은 한때 대검청사 입구에 놓여 검찰의 상징 구실을 하기도 했다. 물론 조선시대 한성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동물이었다.

별안간 수도의 얼굴로 등장한 해치는 싱가포르의 ‘머라이언’이 모델이 됐다. 머라이언은 사자 머리에 물고기의 몸통을 한 상상 속 동물이었다. 싱가포르를 찾는 관광객은 한 번쯤 머라이언공원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싱가포르라는 이름이 ‘사자의 도읍’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머라이언은 도시의 기원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조선시대 사헌부에서 21세기 서울시청으로 ‘동원된’ 해치와는 여러모로 비교하기 힘들다.

오세훈 시장이 지난 2008년 8월4일 디자인 정책을 강의하려고 서울대를 찾았다. 그를 가장 먼저 맞은 것은 디자인 정책에 반대하는 손팻말이었다. 한겨레 김정효

오세훈 시장이 지난 2008년 8월4일 디자인 정책을 강의하려고 서울대를 찾았다. 그를 가장 먼저 맞은 것은 디자인 정책에 반대하는 손팻말이었다. 한겨레 김정효

서울시는 해치를 이용해서 대체 어떤 사업을 벌였을까. 가장 많은 예산은 해치 애니메이션 제작에 할당됐다. 30분물 26편을 제작하는 데 29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이 만화영화는 SBS를 통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초까지 일요일 아침 7시에 방영됐다. 평균 시청률은 0.7%였다. 이선철 감자골스튜디오 대표는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해치가 서울의 상징이 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민 처지에서도 공감하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낸 자료에서 “서울시는 해치 알리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조형물 설치 같은 구조물 제작과 관련된 페스티벌 등 가시성 사업 및 이벤트 사업에 너무 치중했다”고 평가했다.

간판개선사업·디자인거리사업


무질서한 간판을 개선하려고 51개 거리 9554업소 간판을 개선하는 사업·서울시내 50개 거리의 인도 정비. 예산: 144억4600만원(간판사업)+1246억원(거리사업)

서울은 보행자에게 불친절한 도시다. 서울의 인도에서는 전봇대와 한전 시설물, 볼라드(차량의 인도 진입을 막는 시설물), 차량 등의 장애물이 자주 거리의 주인 구실을 한다. 길가에 무질서하게 돌출한 간판들도 ‘시각공해’에 가깝다. 지나치게 선명한 색이나 큰 글자는 폭력에 가깝다. 서울시의 거리경관 개선사업도 이런 취지에서 시작됐다. 문제의식은 선진적이었는데, 문제 해결 방식은 구시대적이었다. 지역의 개성과 색깔을 살리는 방식의 개선사업이 아니라, 일방통행식 행정으로 전락했다. 도로가 일터인 노점상들과 곳곳에서 마찰을 빚었다. 디자인업계의 한 관계자는 “도로의 색은 관이 나서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울시가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도로의 개성을 없애버렸다”고 비판했다. 홍의택 경원대 교수(산업디자인학)는 “서울시가 도시경관에 집중하면서 관련 산업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것은 공으로 인정할 만한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시민과 전문가, 시청과 구청, 관련 산업이 모두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사업이 매우 거칠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11월에 낸 ‘서울시 주요 사업 분석·평가 보고서’에서 “지역적 특색이 강한 곳에서 오히려 관 주도의 일방적 간판개선사업으로 몰개성화의 문제가 드러난다. …관 주도의 일방적 행정, 간판 개선 숫자 늘리기 성과주의 행정을 탈피해 실속 있는 간판사업 플랜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외양만 가꾸는 거리정비사업에 치중하느라, 정작 안전에는 부실했다는 평가도 있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7월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울 디자인 거리 30곳 중 26곳이 물이 스며들지 않는 불투수 블록인 화강판석을 사용해서 재난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로고만 가져와 붙이면 나이키 되나”

지방행정은 꽃밭 가꾸기에 비유될 수 있다. 좋은 행정은 예쁘고 튼튼한 꽃이 자라나도록 토양을 일구고 양분과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는 일이다. 성과에 급급한 행정은 예쁘고 튼튼한 꽃이 자라나도록 기다릴 틈이 없다. 빨리 자라나는 꽃부터 심는다. 보기에 그럴듯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새싹을 짓밟고 그 자리에 조화를 심는다.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 가운데 얼마나 이런 ‘조화’에 가까운지 단정할 수는 없다. 사업마다 부분적인 성과도 있었고, 때로는 취지는 좋았지만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서울시가 디자인 문제에 접근하는 기본 철학이 있었는지는 의문을 남긴다. 서울시 사정에 밝은 한 디자인업계 관계자는 “디자인 분야에서는 서울시가 개입을 최소한 하고, 지원은 최대한 하는 것이 좋다. 민간에서 아이디어와 활력이 꽃피도록 서울시는 지원만 하면 된다. 서울시가 손을 많이 댄 곳일수록 예산은 낭비되고 경관은 나빠진다. 그런데 서울시는 굳이 곳곳에 손을 댔다. 성과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내부 관계자는 “나이키 같은 운동화를 만들려면 먼저 품질과 재질이 좋아야 한다. 로고만 가져와서 붙인다고 나이키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의 자평은 어떨까. 최근 서울시의 움직임을 보면 시청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시는 지난해 디자인총괄본부를 문화관광디자인본부로 통합했다. 올해 들어 서울시청의 디자인 관련 4개 과의 예산은 모조리 줄었다. 올해 예산안에 나온 4개 과의 예산을 합해보니, 지난해 1364억원에서 올해 710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서울시 내부 관계자는 “서울시의회가 예산을 줄인 것이 아니라, 서울시 집행부에서 자발적으로 예산을 대거 줄인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 디자인 분야로 지나친 쏠림이 있었다면, 뚜렷한 성과가 없자 지난해부터는 지원이 지나치게 줄어서 오히려 문제가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정책연구실은 지난 6월에 낸 ‘2010년 서울시 주요 사업 예산 분석’ 자료에서 서울시의 디자인 관련 예산 2302억원 중 전시성 사업 예산이 1547억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젊은 시장이 몰고 온 ‘디자인 광풍’의 결과였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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