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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일깨운 역사의 진실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역사영상심포지엄에 가다… 영화 통해 제국주의 자국 역사 들여다본 일본인들 “부끄럽다”
등록 2011-06-23 16:16 수정 2020-05-03 04:26
» 지난 6월1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심포지엄 '영화가 말하는 동화정책과 창씨개명'에서 발표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한겨레21 오승훈

» 지난 6월1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심포지엄 '영화가 말하는 동화정책과 창씨개명'에서 발표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한겨레21 오승훈

지난 6월10일 오후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 경내의 전쟁박물관 유슈칸. 경남 사천 출신 한 젊은이의 영령이 친절한 한글 설명과 함께 모셔져 있다. 미쓰야마 부미히로노 미코토(光山博文命)로 불린 이 사내의 본명은 탁경현(卓庚鉉). 1945년 5월11일 자살특공대인 제51진무대로 출격해 오키나와 부근에서 전사했다. 일왕을 위해 전사한 이들을 신으로 모시는 야스쿠니에는 이처럼 전쟁에서 숨진 조선인 2만여 명의 영령이 합사돼 있다. 그 안에는 가미카제 특공대뿐만 아니라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숨진 조선인들도 포함돼 있다. 야스쿠니신사의 조선인 합사 문제는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이다. 일왕을 위해 총알받이로 죽어간 젊은이들을 군국주의의 이름으로 찬양하는 유슈칸의 전시물에서 일본의 과거는 고스란히 오늘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한-일 관계가 예측 가능한 시기에 변화할 것을 가늠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일본 대중 속에서 희망 모색

지난 6월11일 동북아역사재단과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의 공동 주최로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역사영상심포지엄’은 일본의 시민들과 더불어 새로운 한-일 관계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희망의 단초를 엿보게 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이번 학술회의의 주제는 ‘영화가 말하는 동화정책과 창씨개명’. 행사는 임권택 감독의 1978년작 와 이마이 다다시 감독의 1943년작 를 관람한 뒤, 양국의 역사학자와 평론가들의 발표와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영화를 보고 심포지엄을 여는 이런 형식의 학술회의는 국내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이 처음으로 시도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는 1940년 창씨개명 정책에 따른 조선인의 대응과 좌절을 임권택 특유의 ‘한의 정서’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경기도청 총력1과 소속의 일본인 청년 다니(하명중)는 창씨개명 실적이 저조하다는 과장의 질책에 따라, 수원 지역에서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있던 부농 설진영의 집을 찾아 그를 설득한다. 종손인 설진영(주선태)이 700년 넘게 이어져온 가문을 위해 창씨개명만은 할 수 없다고 맞서자, 다니는 뿌리에 대한 그의 남다른 신념과 설씨의 딸 옥분(한혜숙)의 미모에 마음이 흔들린다. 회유와 협박에도 설진영은 끝내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일제 관리들은 헌병대를 통해 옥분의 약혼자를 불순분자로 엮어 감금한다. 어린 손자들까지 학교에서 따돌림과 차별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설진영은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의 이름을 창씨개명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항일 인사인 실화 속 설진영과 달리, 영화에서 그는 친일 지주로 그려진다. 일본군에 군량미 2만 석을 기부하고 총독부의 시책에 적극적으로 순응한 설씨조차 창씨개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자살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은 일제 동화정책의 폭력성을 도드라지게 했다.

» 이마이 다다시 감독의 <망루의 결사대>(1943)(사진 위)와 임권택 감독의 <족보>(1978)의 한 장면.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 이마이 다다시 감독의 <망루의 결사대>(1943)(사진 위)와 임권택 감독의 <족보>(1978)의 한 장면.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제작된 는 1935년 신의주와 만주의 접경지역인 압록강변을 배경으로 이른바 ‘비적’으로부터 주민들을 지키는 국경수비대의 활약과 희생을 그린 어용 영화다. 아사노 순사가 국경수비대에 새로 부임하는 날 주재소 안뜰에서 조촐한 환영회가 열린다. 주재소장을 비롯한 일본인과 조선인 순사들은 스스럼없이 한 가족처럼 어울린다. 어느 날 순찰을 돌던 김 순사가 정체불명의 청년을 연행하다 총에 맞아 죽고, 비적의 일원인 왕호가 중국요릿집을 운영하는 아버지 왕룡을 찾아온다. 아버지는 비적의 대규모 습격이 있을 예정이니 피신하라는 아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결국 비적의 총에 절명한다. 국경수비대는 주민들과 함께 비적의 습격에 대응하지만 고전을 면치 못한다. 조선인 부녀자들과 일본인 아낙들까지 무기를 들고 싸우는 가운데 지원병력의 도착으로 비적들은 가까스로 토벌된다. 영화 속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은 서로를 보듬으며 지낸다. 이에 비해 항일 무장투쟁 세력을 의미하는 비적은 흉악무도하고 무자비하게 묘사된다. 평화를 도륙하는 자들인 셈이다. 는 내선일체가 된 조선인과 일본인이 합심하여 비적을 물리치자고 선동하는 영화다.

휴머니즘으로 포장된 강자의 미소

창씨개명에 대한 연구로 학계의 주목을 받은 미즈노 나오키 교수(일본 교토대 인문학연구소)는 영화 에 관한 발표문에서 “창씨개명 정책은 단순히 조선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한 정책이 아니었다”며 “조선의 가족제도를 바꿔 조선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려는 정책”이었다고 설명했다. “가구·가정(家)을 기초로 보고 가족 구성원에게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갖도록 한 근대 일본의 가족정책을 식민지 조선에도 도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초기 신고제로 운영된 창씨개명 제도는 참여율이 저조하자 이내 강제성을 띠기 시작했다. 미즈노 교수는 “지역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신고가 ‘독려’되었으며, 지역끼리 신고율을 경쟁시킴으로써 한층 강한 압력이 가해졌다”며 “신문에는 각 지역의 신고율을 보도하는 기사가 여러 차례 게재되었다”고 지적했다. 미즈노 교수는 또 “이런 강압성으로 인해 친일파로 분류된 윤치호조차 자식이 반일분자로 간주되는 공포심으로 인해 창씨개명을 했다”며 “대다수 조선인은 이처럼 침묵했지만 일부 인사는 비판과 저항의 언동인 유언비어를 유포하며 맞서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언비어에 나타난 조선 민중을 주제로 를 분석한 남상구 박사(동북아역사재단)는 “일상에서의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불신감, 그리고 조선인의 자각이 유언비어를 낳았다”며 “일본의 전쟁은 일본의 전쟁일 뿐이라던 초기의 유언비어는 결국 일본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데까지 미쳤다”고 말했다. 파급력을 우려한 조선총독부는 유언비어를 철저하게 단속해 처벌했다.

사토 치히로 강사(일본 게이센여학원대학)는 발표문에서 “예전에 에서 설진영이 부른 도라지타령을 듣고 에서 조선인들이 부른 도라지타령이 떠올랐다”며 “친일 영화로 분류되는 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한 인간 본연의 모습과 심리적 움직임을 중시하는 휴머니즘 영화”라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이에 대해 김종원 영화평론가협회 상임고문은 발표문에서 “는 휴머니즘으로 포장된 강자의 미소”라며 “힘이 밑받침된 지배자의 논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김 고문은 “는 게릴라를 양민으로부터 금품을 착취하는 비적으로, 일본인 경비대는 목숨을 걸고 조선인을 지켜주는 숭고하고 용감한 존재로 그렸다”며 “일본인들은 지배자의 관점에서 약한 조선 사람을 보호하는 국경 경비대원들의 휴머니즘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인이 민요를 부르는 장면은 내선일체 구현을 위한 장치였다고 지적한 김 고문은 “는 엄밀히 말해 친일 영화가 아니라 어용 영화”라고 말했다. 일본인 감독이 일본을 위해 만든 영화를 친일 영화로 분류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에 대해 김 고문은 “설진영을 친일 지주로 설정한 점이 영화의 현실성을 높였다”며 “인본주의적 사유와 한국의 아름다움을 담는 테크닉으로 잃어버린 시대에 좌절한 인간상을 형상화했다”고 평했다.

변화를 일구기 위한 작은 노력

발표자들의 상호 토론이 끝나자 300명이 넘어 발 디딜 틈 없던 객석에서 질문과 의견이 쏟아졌다. 아버지가 의 배경인 압록강변 국경수비대에 실제 근무했다는 기타오카 기요코(75)는 “아버지 생각에 를 보러 왔다”며 “영화를 통해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연극배우 오하타 요사코(65)는 “영화를 보고 일본인으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며 “일본인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했다”고 말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진솔한 사과와 배상을 바탕으로 한 바람직한 한-일 관계는 정녕 요원한 일일까.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며, 아울러 일본 시민사회 변화에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심포지엄은 그 변화를 일구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도쿄(일본)=글·사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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