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씨는 지난 6월11일 찾아온 이들에게 “제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비틀거릴 때마다 천수보살의 손으로 제 등을 받쳐주신 여러분, 꼭 이기겠습니다. 157일이 아니라 1570일을 견뎌서라도 반드시 이기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한겨레21 김경호
이 글을 읽지 않아도 좋다. 글을 읽고 동영상을 볼 시간이 없다면 먼저 영상을 보시길 권한다. 포털 사이트나 유튜브에 들어가 ‘김진숙’을 입력해보시길. 지난 6월11일, 1천여 명이 희망의 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찾아간 날,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씨가 35m 상공에서 애끓는 목소리로 했던 두 번의 투쟁사 동영상이 나온다. 발언이나 연설이란 상투적 단어에 의미를 다 담을 수 없는 그 말에 잠시 귀기울여보시길. 왜 52살의 여성이 자신이 해고자 명단에 오른 것도 아닌데, 겨울·봄·여름 160일을 넘게 저기서 저러고 있는지 아는 데 10분, 아니 5분이면 충분하다. 혹시 영상에 나오지 않는 얘기도 궁금한 당신을 위해 그녀의 연설에 그날의 풍경을 더해 전한다.
돌아오고 나서야 알았다. 왜 6월11일인지를. 폭우가 내린 8년 전 이날엔 한 사내가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명예퇴직에 반대하는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김주익 위원장이었다. ‘불법 해고·손배가압류 철회’를 외치던 김 위원장은 고공농성 129일째 되던 날, 크레인 난간에 목을 매 생을 마감했다. 서울에서 6시간을 버스로 달려 도착한 85호 크레인 앞의 플래카드는 한진중공업의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하늘에는 김주익 열사가 땅에서는 곽재규 열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배달호 열사 정신계승사업위원회’. 그렇다면 땅의 곽재규는 누구인가. 김 위원장의 죽음을 온전히 자신의 탓이라 여겼던 순박한 ‘늙은 노동자’ 곽재규 조합원은 아끼는 후배가 숨진 지 보름 만에 4호 독에서 몸을 던졌다. 85호 크레인 뒤쪽 4호 독 앞, 곽재규의 마지막 자리에서 김주익의 마지막 자리에서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벌써 20년이 흘렀다. 1991년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은 안양병원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이 자살로 몰아간 그 죽음의 진실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가리지 못했다. 그리고 2011년 6월12일, 고 박창수 위원장을 키운 아버지 황지익 선생이 크레인 아래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황 선생은 “진숙이가 우리 창수랑 (입사) 동기잖어”라고 말문을 열었다. 백발의 노인은 “아까 진숙이와 통화했는데, 절대 딴마음 먹지 말라고 했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일흔다섯의 노인이 1월에도, 5월에도 이곳에 왔었단다. 김진숙씨가 내려오면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고생했다. 너 같은 사람 없다. 네가 대한민국 노동자 모두 살렸다.”
희망의 버스에 탄 진용주씨는 김진숙씨를 “가슴이 아니라 머리를 울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2003년 10월 김주익 열사 장례식과 11월 노동자대회에서 김진숙씨가 했던 추도사를 들어보면 그 의미가, 전율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희망의 버스는 김진숙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하늘의 김진숙만 쳐다보는 이들에게 하늘의 김진숙이 말했다.
크레인 아래를 눈물바다로 만든 85호 여인의 연설이 끝나고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얘기를 나누었다. “모두들 85호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 비고해자이면서도 현장을 지키는 그의 첫마디였다. 스무 살에 한진에 들어와 18년을 일했다는 그는 회사가 컨테이너로 공장 출입을 봉쇄한 것을 두고 “(노동자가) 옥쇄를 한 것이 아니라 옥쇄를 당했다”면서도 “잘 끝나겠죠”라고 낙관했다. 그의 말을 듣자, 정말로 정리해고가 철회될까, 멀리서 비관했던 ‘모르는 자’의 불안이 ‘내부자의 따뜻한 확신’에 녹았다.
그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몸뻬 바지를 입은 ‘날라리 외부세력’이 부르는 ‘뽕짝 메들리’가 들렸다. “내가 내가 못 잊을 사람아 진숙아~ 진숙아 내가 정말 사랑한 진숙아~ 내 어깨 위에 날개가 없어 널 찾아 못 간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지상의 승객은 하늘의 진숙씨와 함께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를 목놓아 불렀다. 아침이 밝았고, 오후가 되었다. ‘승객들’을 보내는 ‘크레인’의 인사가 있었다.
김진숙씨는 크레인에 오르기 직전에 남긴 글에서 소원이 있다고 했다. “주익씨가 못해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할 겁니다.” 한진중공업을 떠나면서 희망의 버스 승객들은 “지상으로 내려오는 한 계단 한 계단을 한 사람씩 책임지자”고 서로에게 약속했다. 그리하여 “158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계단 내려가는 연습을 해온 대로 제 발로 저 계단을 내려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너무나 애달프고 너무나 그리워서 차마 보고 싶단 말도 쉽게 못했던 사람들을 얼싸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며 끝내 목이 메는 52살 여성 노동자를 지상으로 내려보내는 오작교가 되자고 다짐했다.
어느 희망의 버스 승객이 썼다. 희망을 주러 갔다가 얻고 갑니다.” 다음날 ‘진숙씨’의 트위터에는 “버스는 갔지만 내려놓고 간 희망이 자라고 있습니다”라는 응답이 올라왔다. 미안하지만, 희망의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의 고사리손들이 울며 떠나는 이들의 손에 건넨 양말을 신고 다시 애타게 진숙씨를 찾아서, 아니 성호씨·지훈씨·갑열씨·성철씨·상철씨·형백씨를 찾아서 버스에 오를 것이다.
부산=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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