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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고엽제 규정은 무엇을 말하나

미군의 고엽제 대량 폐기 10년 뒤인 1987년 주한미군 고엽제 관련 규정 만들어…
뒤늦은 규정은 캠프 캐럴 등에서 지속적 고엽제 관리 시사
등록 2011-06-01 14:20 수정 2020-05-03 04:26
지난 5월27일 오후 경북 칠곡군 왜관읍 미군기지 캠프 캐럴 주변에서 한·미 양국이 지하수 시료를 채취하는 등 고엽제 매립과 관련한 첫 공동조사를 벌였다.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비협조로 일관했던 주한미군이 이번에는 ‘동맹국’에 대한 예의와 성의 있는 노력, 진솔한 사과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한겨레 류우종

지난 5월27일 오후 경북 칠곡군 왜관읍 미군기지 캠프 캐럴 주변에서 한·미 양국이 지하수 시료를 채취하는 등 고엽제 매립과 관련한 첫 공동조사를 벌였다.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비협조로 일관했던 주한미군이 이번에는 ‘동맹국’에 대한 예의와 성의 있는 노력, 진솔한 사과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한겨레 류우종

1987년 5월7일에 만들어진 주한미군(USFK) 규정(USFK Regulation 700-17. 1984년에 만들어진 규정을 대체)은 ‘한국에서의 제초제 사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외적으로 사용 가능’이라는 단서를 달고는 있지만 이 규정은 포괄적으로 한국에서의 제초제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Herbicides will not be used in the Republic of Korea). 그러면서 공중살포 제한, 비무장지대(DMZ) 및 그 주변에서의 사용 제한, 제초제 중에서도 특히 맹독성 물질인 다이옥신을 함유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와 ‘2-4-5 T’계 제초제 사용 제한 등의 특별 제약을 걸어뒀다. “제초제를 폐기(disposal of)할 때는 반드시 주한미군 사령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미국 정부를 상대로 발생할 수 있는 소송 등에 대비하기 위해 관련 기록은 자세하게 남겨두라”는 지시도 포함돼 있다. 앞서 나온 미국 국방부 지시에 근거를 둔 규정이었다. 완곡하게 ‘제초제’라고 표현했지만 에이전트 오렌지 등 발암물질로 판명된 고엽제를 염두에 둔 규정이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에 미군이 이미 사용을 금지하고, 1977년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폐기된 에이전트 오렌지가 16년이나 지난 1987년 주한미군 규정에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정적 부분만 절묘하게 빠진 미군 보고서

주한미군이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캠프 캐럴 기지 안에 50t이 넘는 고엽제를 불법 매립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한-미 양국이 공동조사에 나섰다. 이 기지에서 중장비 기사로 군복무를 했던 스티브 하우스 등 퇴역 주한미군 3명의 증언이 굳게 닫혔던 미군기지 철문을 열게 했다. 1978년 어느 날, 이들은 밝은 노란색이나 오렌지색을 띤 55갤런(208ℓ. 1갤런=3.785ℓ)짜리 드럼통을 상관의 지시에 따라 영내에 파묻었다고 한다. 드럼통에는 ‘에이전트 오렌지’ ‘1967년 베트남공화국’ 등의 글자가 쓰여 있었다고 했다. 1978년은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미 정부를 상대로 고엽제 피해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한 때다.

캠프 캐럴은 주한미군 중에서는 ‘작은’ 부대다. 3.2㎢ 규모다. 증언대로라면 이 기지 안에서 중장비를 동원해 몇 달에 걸쳐 드럼통 250여 개를 파묻었다. 그런데 이를 증명할 당시 기록이 하나도 없다. 불법 매립이라 떳떳하게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미8군이 1978년에서 14년을 건너뛴 1992년 보고서를 들고 나왔다. 미 육군 공병단이 작성한 이 연구보고서에는 “(1978년에) 캠프 캐럴에 화학물질(chemicals), 살충제, 제초제, 솔벤트 용액이 담긴 많은 양의 드럼통을 매몰했다. 1978~80년 이 물질들과 주변 40~60t가량의 흙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처리됐다”고 기재돼 있다. 보고서에는 고엽제라는 말은 나오지 않으며, 다시 파낸 드럼통과 오염된 흙이 옮겨졌다는 장소, 처리 방법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알고 싶은 대목만 절묘하게 쏙 빠졌다.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기록이 없이는 이런 보고서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의도적으로 폐기되지 않았다면 관련 기록이 반드시 있다는 얘기다.

주한미군에서 육군을 지휘하는 미8군은 해마다 연표를 작성한다. 미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된 1968년 연표 1월21일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무장한 31명의 공산주의 공작원 일당이 한국 경찰에 가로막혔다. …한국전 이후로 무장 공작원이 수도로 침투한 첫 사례다.” 이후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게 된 길을 따라 청와대로 진격하려 한 ‘1·21 사건’에 대한 설명이다. 그해 2월10일치 연표에는 “300명의 승려가 공산 게릴라에 의해 죽은 군인과 경찰, 민간인 34명을 위한 추도식을 열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미8군 연표에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 사이에서 벌어진 총격전과 사망자·부상자 수 등 작전 관련 내용,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이 적용된 미군 범죄, 전투기 추락 등 각종 군 관련 사고, 대통령과 정치인의 주요 발언과 행적 등이 꼼꼼하게 정리돼 있다. 심지어 ‘이런 것까지 기록하나’ 싶은 음력설에 대한 설명, 광복절, 추석, 한글날 관련 행사까지 기록돼 있다. 남의 나라 ‘실록’을 대신 작성한 셈이다.

연표에도 고엽제 뿌린 날만 빠져

하지만 공개된 1968년 연표에는 7월23~31일치가 뭉텅 빠져 있다. 8월19~28일치 내용도 없다. 10월3일 직후부터 10일까지의 내용도 제외됐다. 미 국방부가 정보공개 대상에서 그 부분을 제외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빠진 날짜들은 미 국방부가 한국에서 고엽제를 살포했다고 유일하게 인정한 날과 겹친다.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퇴역미군들의 보훈업무를 담당하는 미 보훈청은 미 국방부로부터 ‘베트남 이외 지역에서의 고엽제 테스트 및 저장 관련 자료’를 받았다. 이 자료에 등장하는 71개 지역 가운데 한국은 세 번 등장한다. 1968년 7월23~24일, 8월(날짜 불특정), 10월3일에 ‘식물 통제를 위한 고엽제 효과를 테스트하기 위해’ 한국의 비무장지대 주변에 고엽제가 뿌려졌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제초제 사용’을 담은 1987년 5월7일자 주한미군 규정. 이미 16년 전부터 미군이 사용을 금지한 에이전트 오렌지 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에서의 제초제 사용’을 담은 1987년 5월7일자 주한미군 규정. 이미 16년 전부터 미군이 사용을 금지한 에이전트 오렌지 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비공개된 연표 내용이 반드시 고엽제와 관련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에 뿌려졌다는 고엽제 관련 자료는 너무나 빈약하다.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다. 항공기에서 고엽제를 뿌려대는 사진, 나무로 빽빽하던 정글을 축구장 잔디처럼 만들어놓은 사진까지 넘쳐나는 베트남전 고엽제 자료와는 너무 다르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안다. 군대에서 하는 일은 단순하게 정리하면 작업 사진 찍고, 작업 보고서 작성하는 일, 두 가지다. 누가 꼭꼭 숨겨뒀으면 모를까, 미군이 한국에 뿌린 고엽제 자료가 이렇게 없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미 국방부와 한국 국방부는 1999년에는 “68년 4월15일~5월30일, 69년 5월19일~7월31일 두 차례에 걸쳐 에이전트 오렌지와 에이전트 블루, 모뉴론을 살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 국방부가 보훈청에 제공한 내용과도 다르다. 1·21 사건의 영향으로 비무장지대 제초 작업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을 것이고, 기록에는 없는 고엽제 살포가 여러 차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캠프 캐럴의 고엽제는 어디서 왔을까. 베트남전에서 쓰던 고엽제를 1968~69년께 비무장지대 일대에 뿌리려고 들여왔을 가능성이 크다. 캠프 캐럴은 주한미군의 군수기지로 화학물질 저장소도 있다. 고엽제의 치명적 독성이 알려지면서, 미군은 1971년부터 고엽제 사용을 ‘공식’ 중단했다. 1971년 11월21일치에는 ‘베트남을 떠나는 고엽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생산해놓고 쓰지 못한 고엽제는 230만 갤런에 달했다. 1972년 남베트남에서 미군 화학물질 저장·처리소가 있는 태평양 한가운데 존스턴섬으로 고엽제 드럼통 2만6300여 개(137만 갤런)가 옮겨졌다. 이 고엽제는 1977년 4월부터 9월까지 123일에 걸쳐 소각선을 이용해 해상에서 초고온으로 소각·폐기됐다.

1971년 고엽제는 베트남을 떠났지만, 한국의 고엽제는 남았다. 1977년 9월 1천℃의 초고온에서 고엽제가 타버리고 나서 얼마 뒤, 한국의 고엽제는 드럼통째로 땅속에 파묻혔을 가능성이 크다. 한 퇴역 주한미군은 “1978년 고엽제를 모두 폐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증언했다.

한국 정부는 고엽제 실태 몰랐나

고엽제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물질’이라는 다이옥신이 들어 있다. 기록은 없는데, 캠프 캐럴 말고도 경기 부천의 캠프 머서(1993년 한국군에 반환), 의정부 캠프 스탠리, 동두천 캠프 케이시 등 미 육군 2사단 사령부 예하 미군기지에서 근무했던 퇴역미군들이 “1960~70년대에 고엽제를 사용했다”는 증언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캠프 캐럴에 묻혀 있던 ‘화학물질’을 다른 지역에서 처리했다는 것이 미8군의 발표다. 고엽제 처리는 존스턴섬에 있는 미 화학물질 처리부대에 의한 초고온 소각이 기본이다. 그런데 30여 년 전 처리한 드럼통 개수까지 정확히 남아 있는 존스턴섬에서, 주한미군의 고엽제가 처리됐다는 기록은 없다. 캠프 캐럴 등의 고엽제는 우리 땅 어딘가에 다시 파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미군의 안전’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고엽제가 살포된 것은 베트남과 한국뿐이다. 그런데도 한국에 저장·살포된 고엽제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엽제 관련 주요 자료는 보훈 혜택을 받으려고 소송을 벌이던 퇴역미군들에 의해 주로 확보됐다. 1968~69년 한국의 비무장지대에 고엽제가 살포됐다는 내용을 담은 ‘최종보고 식물통제계획 1968’이라는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미군이 기록 은폐 의혹을 사고 있지만, 한국 정부도 기록을 덮기는 마찬가지다. 1999년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최종보고 식물통제계획 1968’ 보고서 내용은 이미 1980년 4월25일 이 워싱턴발로 ‘미 한국 휴전선서 고엽제 사용’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했지만, 반미 감정을 우려한 당시 신군부에 의해 기사가 전면 삭제됐다.

결국 관건은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불법 매립한 사실을 미군과 우리 정부가 언제부터 알았느냐다. 1987년 주한미군의 고엽제 사용 제한 규정은 미군이 캠프 캐럴 등 미군기지에서 이뤄진 불법적인 고엽제 관리를 진작부터 알았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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