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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잃은 한 노동자의 유골

자신의 방에 안치된 삼성전자 고 김주현씨의 유골함…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저버린 삼성
등록 2011-04-29 15:22 수정 2020-05-03 04:26

삼성전자 고 김주현(26)씨가 먼 길을 돌아 자신의 방에 잠시 머물고 있다. 지난 1월11일 충남 아산 삼성전자 탕정사업장 기숙사 13층에서 몸을 던진 지 97일 만이다(845호 이슈추적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자살’ 참조). 차디찬 병원 영안실에 있던 김씨의 주검은 지난 4월17일 천안추모공원으로 옮겨져 한 줌의 재가 됐다. 유골함의 김씨는 갈 길을 정하지 못해 인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유치원 졸업 사진과 영정, 그 옆에 그의 유골함이 놓였다. 아버지 김명복(56)씨는 목이 메었다. “주현이를 떠나보내기 너무 힘들어 당분간만 데리고 있겠습니다.” 말을 끝맺지 못했다. 결국 유족은 김씨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당분간 함께 지낼 예정이다.

기자 있으면 사과하기 부담스럽다?

“엄마랑 같이 살면 안 될까?” “아빠, 너무 힘들어.”
김씨가 숨을 놓기 전에 남긴 말들은 유족에게 한이 됐다. “삼성이니까 괜찮을 것”이라며 김씨 등을 떠민 일은 두고두고 후회를 남겼다. 그래서 유족은 더 삼성전자 앞에 당당하려고 애썼다. 김씨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날 장례식장에 찾아와 위로금을 흥정하는 삼성 쪽 직원들을 내쳤다. 사과부터 하는 게 망자에 대한 예의라고 꾸짖었다. 어머니 송치화(57)씨는 “그게 주현이를 편히 보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족은 조금 더 나갔다. 김씨가 죽음에 이른 것은 과중한 근무시간과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얻었기 때문이라며 회사에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97일 동안 묵묵부답이던 삼성전자 앞에서 유족은 물러서지 않았다. 누나와 어머니는 서울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1인시위를 이어갔다. 아버지는 그 기간에 가족들과 떨어져 천안의 장례식장에서 김씨 곁을 지켰다.(856호 표지이야기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 노동자’ 참조)

인천의 고 김주현씨 방에 놓인 그의 영정과 일기. 그 옆으로 97일 만에 장례를 치른 그의 유골이 놓였다.

인천의 고 김주현씨 방에 놓인 그의 영정과 일기. 그 옆으로 97일 만에 장례를 치른 그의 유골이 놓였다.

결국 지난 4월15일 삼성전자 쪽에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장례 일정이 잡혔다. 비공개 합의서가 작성됐다. 아버지 김씨는 “사과 한마디 받아내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합의서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같은 날 유족은 삼성 쪽과 합의한 대로 지난 1월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삼성전자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해달라며 낸 진정을 취하했다. 그런데 삼성 쪽은 지난 4월17일 장례식장에서 하기로 한 조문과 사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삼성 쪽에서는 “기자들이 있으면 유가족을 향한 개인적인 사과가 아니라 삼성의 공식적인 사과가 돼 부담스럽다”는 말을 유족에게 전했다.

지난 4월21일 아버지 김씨는 주현씨가 세상을 뜨기 전 가족들의 밥벌이 수단이던 노란색 12인승 승합차 수리를 맡겼다. 어머니 송씨는 당분간 집에서 건강을 추스른 다음 쉬었던 식당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누나 김씨는 지난 4월20일부터 피아노 학원 강사로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삼성본관 앞 시위를 위해 두 모녀를 실어나르던 이모부는 다시 택시 영업을 시작했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에서는 “삼성의 재발 방지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끝까지 감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서울 삼성전자 본관 앞 시위를 함께했던 삼성 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은 “김씨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에게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관련해 서울 서초경찰서의 출석요구서가 발부됐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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