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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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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를 체벌하는 교과부?

학교장 권한 강화 통해 간접체벌 허용하는 교과부의 ‘학교문화 선진화방안’…

학생인권조례 무력화 시도에 반발 고조
등록 2011-02-09 16:03 수정 2020-05-03 04:26

“교과부가 간접체벌을 허용한다는데, 도대체 간접체벌과 직접체벌이 뭐가 다른가요? 비난을 피하려는 일종의 ‘꼼수’ 아닌가요? 간접체벌이란 말 대신, 앞으로 솔직히 까놓고 기합이나 얼차려라는 말을 쓰세요.”(경기 의정부고 1학년 김석민)

인권조례 본격화 시점에 ‘딴지’

지난 1월20일 ‘학생인권·학교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교과부 시행령 개악 저지 대책모임’이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교육과학기술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1월20일 ‘학생인권·학교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교과부 시행령 개악 저지 대책모임’이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교육과학기술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1월25일 오전 서울 대학로 흥사단 본부 강당에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중3부터 고2까지, 전북 무주에서 서울까지 참석자들의 학년도 지역도 다양했다. ‘청소년 긴급 성토대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전교조, 인권운동사랑방 등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 학생단체와 함께 만든 ‘학생인권·학교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교과부 시행령 개악 저지 대책모임’(이하 대책모임)이 주최한 학생들의 토론장이었다.

이들이 모인 것은 지난 1월17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학교문화 선진화방안’(이하 선진화방안) 때문이다. 이 방안은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간접체벌을 허용하고 학교장이 재량으로 정한 학칙으로 학생의 권리 행사 범위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그동안 일부 교육청을 중심으로 꾸준히 추진돼 막 결실을 맺으려는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할 수 있는 내용이다.

체벌 금지, 두발 및 복장 자율화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학생인권조례는 막 첫발을 뗀 상태다. 경기도교육청이 2010년 도의회의 의결을 받아 오는 3월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며, 서울시교육청 또한 2010년 11월 ‘학생인권 및 생활지도 혁신자문위원회’를 만들고 세부 내용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조례와는 별도로 이미 지난해 2학기부터 전면적인 체벌 금지 조처를 내렸다. 광주시교육청과 전남도교육청도 교육감의 공약 사항인 학생인권조례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강원도교육청 또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화방안이 나온 데 대해 서울·경기·강원·광주 등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우선 학생인권조례가 실질적 효력을 발휘하려면 일선 학교의 협조가 절실한데, 학교장이 재량으로 학교 규칙을 만들어 학생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게 된다면 조례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 비물리적 처벌도 금지

지난 1월20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교육과학기술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 규탄 기자회견’에서 대책모임은 “현재의 위계적인 권력구조 속에 관할 교육청의 인가 없이 학교의 장에게 학생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사실상 교장의 절대 권력을 강화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생인권조례를 준비해온 시민단체 쪽에서는 인권조례나 체벌 금지 조치를 시행하는 서울·경기 지역조차 벌써부터 교장의 재량으로 간접체벌 등이 공공연하게 시행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다.

특히 선진화방안에 담긴 간접체벌 규정은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학생인권조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지금까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30조 7항에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훈계 등의 방법”이라고만 규정돼 있었다. 선진화방안은 이를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직접적인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개정해 간접체벌을 명문화하기로 했다. 선진화방안은 간접체벌에 대해 “교실 뒤 서 있기, 운동장 걷기 등과 같은 교육적 목적의 훈육”이라고 구체적인 예시까지 들고 있다. 윤지영 변호사(공익변호사그룹 공감)는 “기존 시행령 아래에서 직접체벌도 있어왔다는 점에 비춰 간접체벌만을 허용하는 이번 개정안이 법리상 진일보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체벌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며 “특히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간접적인 체벌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대책모임은 또한 성명을 통해 “간접이냐 직접이냐를 떠나 체벌은 교육학계나 심리학계에서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교육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 말하는 신체적 처벌 금지에도 비물리적 처벌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간접체벌뿐만 아니라 상벌점제도와 출석정지제도 도입도 논란거리이다. 대책모임 관계자는 “상벌점제도는 결국 체벌과 벌점을 주는 이중의 불합리한 처벌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회 10일, 연 30일 범위에서 실시되는 출석정지제도에 대해서는 “현재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도 ‘10일 이내 출석정지’ 제도가 있다”며 “동료 학생을 괴롭히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나 학교에 밉보인 학생에게 일종의 ‘괘씸죄’를 물을 수 있는 조항으로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반발 속에서도 교과부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최대한 신속하게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시행령은 이미 지난 1월 입법 예고됐으며 오는 3월부터 공포·시행된다. 또 교과부는 2월에 학교생활규칙 매뉴얼을 개발해 보급하고 3월에는 학교생활규칙을 일제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랑의 매’보다는 차라리 덜 뻔뻔”

무겁게 갈등하는 어른의 세계와 달리 지난 1월24일 성토대회에 모인 학생들은 발랄하고 발칙했다.

“그래도 매질을 ‘사랑의 매’라고 할 때보다는 학교가 좀 나아진 것 같아요. 폭력을 간접이니 직접이니 말장난하면서 둘러대려고 하는 것을 보면 덜 뻔뻔해진 것 같기도 하고.”(전북 무주중 이아무개군)

“우리 학교에서는 벌써부터 간접체벌은 체력단련이나 정신수양 교육이라는 얘기가 나오던데, 그렇게 체력이 걱정이시라면 팔굽혀펴기나 오리걸음 운동장 돌기 대신 제대로 된 헬스장을 만들어주시든지, 정신수양시켜주시겠다면 벽 보고 서 있기 대신 요가학원에 보내주시든지….”(경기 지역 한 학생)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시행령·조례·학교규칙의 법적 지위
법 논리는 학생인권 편

교육과학기술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강행할 태세고, 학생인권조례 시행을 앞두고 있거나 제정을 준비 중인 경기·서울·광주 등 교육청들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규칙에 간접체벌을 명문화하라는 교과부의 권고를 반기고 있다. 이에 따라 교과부·교육청·학교 등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시행령·조례·학교규칙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핵심 쟁점인 간접체벌 규정을 중심으로 3월부터 교과부의 시행령이 시행된다고 가정해보자.
교과부가 시행령에 간접체벌을 명문화하고, 교실 뒤에 서 있기, 운동장 걷기 등을 예시로 들어 일선 학교에 통보한다. 이 상황에서 교육청은 지방의회를 통해 전면적인 체벌 금지를 규정한 학생인권조례를 정한다. 이때 한 학교장은 교과부 지침을 따라 간접체벌이 가능하도록 학교규칙을 만든다. 그러면 외형적으로는 시행령·조례·학교규칙이 충돌하게 된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등 학생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규정을 둘 경우 하위 규정인 지자체 조례에서 그 기본권을 더 제한하는 규정(예를 들면 직접체벌 허용)을 신설하면 상위 규정에 반하는 것이 되지만, 기본권을 더 보장하는 방향(전면 체벌 금지)의 규정은 법적으로 허용된다. 상위 규범보다 기본권을 더 제한하는 하위 규범은 무효가 되지만, 반대로 기본권을 더 넓히는 하위 규범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학교규칙이다. 학교규칙으로 간접체벌을 허용할 경우, 앞의 논리를 적용하면, 바로 상위 규범인 조례와의 관계에서 기본권을 더 제한하는 방향인 만큼 이런 학교규칙은 개정 대상이 된다. 학교장이 조례보다 더 상위 규범인 시행령에 따라 간접체벌을 규정했더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법적인 해석을 떠나 현실적으로는 학교장의 재량으로 학생인권조례와 어긋나는 학교규칙을 만드는 경우가 나올 수 있다. 이 경우 학교규칙의 유효성을 둘러싸고 현장에서 논란이 불가피해진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권조례와 배치되는 내용의 학교규칙이 나와서는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교과부의 무리한 선진화방안 추진으로 일선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의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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