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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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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받지 못한 구제역


경북·경기·강원 축산농가 강타한 구제역…
과거에서 교훈 못 찾은 부실한 초기 대응과 미숙한 후속 조처가 재앙 키워
등록 2010-12-28 20:33 수정 2020-05-03 04:26

구제역의 기세가 대단하다. 지난 11월29일 경북 안동에서 양성 판정이 난 이래로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경북·경기·강원 등 3개 시도의 19개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지난 12월 23일 기준). 횡성한우마저 구제역 광풍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살처분된 가축만 27만8530마리다. 사상 최대다. 현재까지 피해액만 3천억원이다. 앞으로 축산 농가가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갈 때까지 들어갈 비용은 그것의 배가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 강원 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한 지난 12월22일 오후 강원 평창군 들머리에서 차량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 강원 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한 지난 12월22일 오후 강원 평창군 들머리에서 차량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구제역 확정 지역 폐기물이 버젓이 오가

지난 12월23일, 한 달이 지났음에도 경북 안동의 농가들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심아무개(51)씨도 마찬가지였다. 심씨의 한우 농가는 이번에 구제역이 최초로 발생한 지역과 접한 면에 위치한다. 거리로는 5km 정도다. 심씨는 “억울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심씨는 11월30일 자신의 농장 뒤편으로 난 도로로 구제역 확정 지역의 축사 폐기물을 실은 차량이 자유롭게 오가는 것을 봤다. 구제역 확정 발표 다음날이었다. 그는 약초를 재배하느라 바빠서 11월29일 구제역 확정 발표를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소식을 들었다. 직접 군청에 항의 전화를 걸었다.

“제가 하루 늦게 알게 된 것부터 문제죠. 그런데 30일에 구제역이 발생했던 와룡면에서 가축 퇴비를 싣고 와서 근처 밭에 뿌리더라고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15t 트럭 5대가 퇴비를 쌓아둔 밭이 바로 자신의 축사 인근이었다. “죽겠더라고요. 정말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알면서 당했어요. 나는 당할 줄 알면서 당했어.”

항의 전화에도 군청 등 방역 당국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수시로 축사를 소독했다. 그 다음날이 돼서야 구제역 발생 지역으로 들어가는 차량이 통제되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소들은 건강한 듯했다. 그러나 결국 나흘 뒤인 지난 12월4일 한우 17마리 중에 한 마리의 코에 물집이 잡혔다. 그날 바로 자신의 밭에 17마리 모두를 묻었다. 24년간 아들딸 대학을 보내고 집안을 건사해온 자식 같은 존재들이었다. 소똥으로 순환농법을 해온 심씨는 소만 잃은 것이 아니라 내년 밭농사도 어렵게 됐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서도 11월23~29일에 통제가 부실했던 점을 인정했다. 음성으로 오판받은 농가가 구제역으로 재판정을 받기 전까지 일상적인 가축 출하와 사료 반출을 위한 이동을 계속한 사실도 드러났다. 원래대로라면 의심 농가는 농장 물품이나 인력의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됐어야 한다. 이뿐만 아니다. 11월29일 확정 판정 전까지 10여 마리가 안동에서 경기 광주 등 전국으로 빠져나갔고, 경기 파주의 가축 분뇨처리 시설업체 관계자들도 두 차례나 안동을 드나든 사실이 밝혀졌다.

올해 초와 동일한 실수도 있었다. 올해 초 구제역 사태 때 방역 당국은 항체 검사만으로 감염 여부를 판정했는데, 이는 초기 대응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항체 검사는 동물이 구제역에 걸린 다음 면역력이 생겼는지를 검사해 구제역 감염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어서, 구제역이 걸린 뒤 면역력이 생길 때까지 최소 2주 동안은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다. 구제역에 걸린 소가 병이 나은 다음이나 치유 과정에서 면역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도 올해 초 구제역이 의심될 때는 항체 검사가 아닌 ‘항원 검사’를 통해 감염 여부를 판정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지만, 이번에도 안동에서 항체 검사만으로 최초 신고 농장을 음성으로 판단하는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올 초 잘못으로 지적된 ‘항체 검사’ 또 반복

살처분 반경이 너무 좁았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 양성 판정이 나온 15개 지역은 원래의 살처분 영역인 반경 0.5km를 넘어선 0.5km~1km 안에 있었다. 역학적으로 차량을 통한 전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바람으로도 전염이 가능한 구제역 바이러스의 특성을 감안해 초기에 살처분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의 허술한 규제는 법령 미비 탓도 있다. 정부는 올해 초 구제역을 겪은 다음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해 농장 종사자가 구제역 발생 지역을 다녀오면 격리하는 조항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국회에서 법률이 통과되지 않았다. ‘격리 대상자들이 응하지 않으면 1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은 지나친 처벌 조항이라는 국회의 지적에 따라 벌금 규정을 추가하는 보완작업이 진행되던 중 국회가 갈등을 빚는 바람에 법령이 표류한 것이다.

농식품부는 지난 12월22일 구제역 의심 지역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백신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백신 정책은 잔인한 방법인 예방적 살처분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동물보호 차원에서는 최선책으로 꼽힌다. 또한 살처분으로 인한 수질·토양 오염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환경문제 발생도 최소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처분 보상금이 2천억원 정도이고 추가로 그만큼의 비용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이지만, 백신 투여 비용은 1300억~1600억원 정도여서 경제적 실익도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백신 정책의 부작용을 대비해 투여에 신중해야 할 필요도 있다. 백신 접종 뒤 구제역 감염 여부 확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구제역 양성 반응이 나온 경우 자연감염에 의한 것인지 백신에 의한 것인지 판정하는 것은 현재로서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 접종을 받은 가축에서 구제역이 발생해도 증상이 가벼워 발생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결국 접종으로 구제역 바이러스의 전파 위험이 증가될 수 있는 것이다.

백신 접종도 최선의 해법 못 돼

백신이 구제역 바이러스에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도 문제다. 알려진 구제역 바이러스의 종류(혈청 기준)는 7가지다. 혈청 형태가 동일하더라도 변이 가능성이 있어 백신을 통한 예방이 100%라고 확신할 수 없다. 지난 12월21일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은 경북 안동 구제역 바이러스에 대해 “경북 구제역 바이러스들이 초기에는 일치했지만 나중에 나온 것들은 변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백신 정책을 실시해도 문제는 남는다. 백신접종 가축이 모두 도축된 뒤 1년이 지나야 예전의 구제역 비발생 청정국 지위를 되찾을 수 있다. 1997년 대만은 돼지 구제역이 발생해 전국 1068만 마리 가운데 385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그리고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백신 3천만 개를 접종했다. 하지만 구제역은 대만 전역으로 확산됐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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