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초기 대응과 후속 조처가 구제역 확산 사태를 재앙 수준으로 키운 것은 분명하지만, 구제역(FMD·Foot-and-Mouth Disease)은 이미 그 자체로도 논란거리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구제역에 대해 ‘소, 돼지, 양, 염소, 사슴 및 야생반추류 등과 같이 발굽이 둘로 갈라진 우제류 동물에서 나타나는 질병으로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입, 혀, 발굽 또는 젖꼭지 등에 물집이 생기며, 식욕이 저하되어 심하게 앓거나 죽게 되는 급성 전염병’으로 정의한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이 A급으로 분류한 15종의 질병 중에서도 첫째가는 악성 전염병이라는 것이다.
국가 간 축산물 교역 늘며 A급 질병 돼
하지만 구제역이 A급 질병으로 취급되면서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20세기만 해도 유럽에서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구제역으로 죽는 가축 비율이 1%도 되지 않았고, 사람의 건강도 크게 위협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 유럽에서는 농장에서 구제역이 의심되면 경고 표시로 농장 입구에 소머리를 달아 가축 상인이나 방문객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고, 칠리고추로 물집을 치료하는 정도로 구제역에 대처했다. 피해라면 구제역 바이러스는 발과 입에 물집이 생겨 제대로 먹지 못하게 만들고, 새끼를 밴 경우 유산시키거나 젖을 마르게 해, 고기와 우유 생산량이 평균 15% 이상 줄어들게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생산량 감소는 구제역을 A급 질병으로 격상시키는 이유가 됐다. 국가 간 교역에서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면서 각 나라가 축산업계의 이윤 감소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제역이 교역으로 인해 전파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작용됐다. 영국에서는 1871년 신고의무 대상이 됐고, 이후로 구제역에 걸린 소들은 살처분됐다.
문제는 전파력이었다. 전문가들은 구제역 바이러스를 지구상에서 전염성이 가장 강한 포유동물 바이러스로 꼽는다. 단 하나의 바이러스 입자가 순식간에 한 농장 안의 동물들을 감염시키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다. 바람, 새, 차량, 거름, 파리, 물, 흙 등 바이러스는 이동 가능한 매체에 올라타 숙주에 옮아갈 시기만을 노린다. 바람을 타면 육지에서 50km, 바다에서 250km를 날아간다. 전파력에 못지않은 생존력도 문제다. 구제역에 걸린 가축이 도축돼 유통된다면 냉동 골수에서도 최소 몇 개월 동안 생존한다. 겨울철 동물의 변 속에서도 최대 6개월까지 살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람의 옷에 묻은 채로도 일주일은 충분히 생존한다고 말할 정도다. 구제역 발병 지역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농장주들이 주의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구제역 확산 조짐에 따라 ‘구제역이 사람에게 옮아갈 수 있지 않느냐’, 즉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냐는 문제도 논란의 대상이다. 일단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 구제역은 사람에게 옮기는 질병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한수의사회도 “구제역이 사람은 물론 말과 같이 발굽이 갈라지지 않는 동물에게도 감염되지 않는다”며 “국제수역사무국이나 미국 농무성도 같은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전 예방 원칙에 따라 제대로 알려야”
하지만 인체 감염 가능성에 대한 증거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2004년에 발표한 정부의 구제역긴급행동지침 ‘구제역 감수성 동물 및 전파위험도’ 항목을 보면, 사람도 전파 위험도는 낮으나 ‘기계적 매개체’에 의해 실험실이나 농장 등에서 인공적으로 감염될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미국 수의사협회도 “구제역 바이러스의 인간 감염은 아주 드물지만, 감염으로 손·발·다리·입에 수포가 나타날 수 있다”는 공식 입장을 2007년 2월 발표했다.
유럽에서 40건 정도의 인체 감염 사례가 보고됐지만, 1966년 영국이 마지막 사례였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사무국장은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환자 등이나 입안이나 입술에 궤양이 있는 면역력이 약한 사람의 경우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며 “정부는 사전 예방의 원칙에 입각해 사소한 위험이라도 사실대로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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