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해야겠다.
들으면 누군가는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다.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뭐냐 하면,
그들은 별일 없이 산다.
(장기하와 얼굴들 차용)
지난 7월21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칼국수집 ‘두리반’에 전기가 끊겼다. 재개발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인근의 예술가들과 시민활동가들이 200여 일의 점거투쟁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두꺼비집 전선을 끊고 달아난 이는 건설 시공사인 남전디앤씨 직원이었다. 이후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남전디앤씨 쪽에서 제출한 ‘전기공급 해지 요청’을 수용했다. 두리반 대책위원회는 전기를 다시 넣어줄 것을 요구했다. ‘전력공급 약관’ 1절(전기의 사용 신청 및 해지) 8조(전기사용 신청) 5항에 근거해서다. 약관에는 “건물 소유자가 전기사용계약의 해지를 신청할 경우에는 전기수급거래 당사자인 사용자의 동의 없이는 해지할 수 없습니다”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두리반 대책위원회의 요구에 한전은 ‘전기를 공급할 수 없다’라고 적힌 공문을 보냈다.
전기가 끊기자 맨 처음 냉장고의 음식들이 썩어갔다. 궁색하게 촛불로 밤에 불을 밝혔다. 모기는 몸을 무작위로 뜯었다. 8월 초 더운 날에는 밤에 깨서 두 번씩 물을 끼얹어도 잠이 들지 못했다. 옥상에서 서늘해지기를 기다리다가 날 새는 것을 봐야 했던 게 여러 날이다. 유채림(소설가·두리반 주인 안종녀씨의 남편)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더위에 당하고 모기에 당해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에게 모욕감을 주는 방법이더라고요. 전기가 없는 것은.”
9월1일 전기가 끊긴 지 42일이 지났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다. 들으면 누군가는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다. 뭐냐 하면, 두리반은 전기 없이도 잘 살고 있다.
전기를 끌어다 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전기 끊긴 많은 사람들이 ‘도전’(盜電)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두리반은 단전을 버티기로 했다. 이 ‘버티기’는 많은 사람이 ‘에너자이저’가 되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전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에서 ‘전기촛불’이 모여들었다. 최종적으로 1천여 개에 이르렀다. 사무실과 계단에 이 전기촛불을 밝히고 지냈다. 전기촛불에 배터리를 가는 것이 일이었다. 이틀이 지나자 전기를 만들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한전에 대응해 한전의 고유한 역할인 전기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이에는 이다.
대형 아이스박스 세 개를 채우는 손길자전거발전기로 전기를 만들어보았다. 열심히 발판을 굴리면 불이 켜진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태양열발전 패널을 구했다. 진보신당에서 먼저 2개가 도착했다. 8월1일 강원도 홍성의 한 에너지 연구센터에서 2개가 더 왔고, 진보신당에서 1개를 더 보태주었다. 패널이 2개일 때는 새벽 1시면 불이 가물거렸지만, 5개가 되자 여유로워졌다. 월요일 하늘지붕음악회, 화요일 푸른영상의 다큐멘터리 상영회, 금요일 칼국수 음악회, 토요일 자립음악회 등 문화행사를 열 때는 등유 발전기를 돌린다. 발전기가 돌아가는 동안 전기를 충전한다. 발전기는 출력이 세서 전기를 쓰면서 충전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공연이 이어지는 4시간 동안 충전하면 알뜰하게 이틀을 쓸 수 있다. 이렇게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고, 모기 훈증제도 연결한다. 물론 냉장고도 켤 수 없고, 노트북도 못 쓰고, 선풍기도 못 돌아간다.
비가 쏟아지다 말다 한 9월1일에는 그 전날 다큐멘터리 상영회 때 충전한 전기가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1층 사무실에는 전구 2개를 계속 켜고 있다. 그리고 계단 1개, 2층 침실 1개를 간간이 켠다. 밤 10시30분 충전기에는 ‘24.6’이라는 숫자가 반짝이고 있다. 유채림씨는 “22로 내려갈 때까지는 밝습니다”라고 말한다. 2층을 둘러보던 유씨는 컴퓨터 전원이 연결된 것을 보고는 코드를 뺐다. “커피포트는 안 됩니다. 전기밥솥도 안 됩니다. 드라이기도 안 됩니다. 노트북도 물론 안 되지요.”
이런 행동규칙을 정하는 데 도움을 준 이는 김종환씨다. 한 대학의 기상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그는 충남 홍성의 에너지 단체를 수소문해서 태양열 패널을 구해왔다. 끌고 간 소형차에는 패널이 다 들어가지 않아 열린 문을 노끈으로 싸매고는 운전해왔다.
순씨네(31·별명)씨는 오전과 저녁 아이스팩을 배달한다. 오전에 집에서 얼린 아이스팩을 가져와 아이스박스에 넣고, 녹은 아이스팩을 가방에 넣고 간다. 저녁에 일하는 카페에서 얼린 아이스팩을 들고 다시 두리반을 찾는다. “단전됐다는 소리를 듣고 모아놓은 아이스팩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배달을 시작했죠.” 그걸로는 부족해 진보신당 게시판에 도움글을 올렸는데, 아이스팩 한 박스가 배달돼왔다. 등산배낭에 아이스팩을 가득 넣어서 배달한다. 팔다리가 가느다란 순씨네씨는 이렇게 몸으로 때운다. 여름이 지나고 나니 허리에 무리가 갔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삐걱거린다. 아이스팩의 양은 줄였으나 얼리고 배달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는다.
50ℓ짜리 대형 아이스박스 세 통은 아이스팩을 많이도 먹는다. 하루에 필요한 분량이 못해도 40~50개. 그런데 “어떤 때는 들고 온 아이스팩이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기도”(순씨네씨) 하다. 어떤 이는 출근시간에 얼린 물을 가져오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아이스팩을 배달하기도 한다. 그래서 두리반을 지나가다 물 한 잔 얻어먹고 싶다 말하면 얼음물을 대접받는다. 냉장고 없는 두리반에서 말이다.
저녁에는 ‘죽돌이·죽순이’들이 두리반에 모여든다. 9월1일 수요일에는 문화 행사는 없이 반상회가 열렸다. 활동가 ‘조약골’(이하 모두 별명)과 의 시민기자 ‘카즈’,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유수사’, 청소년 활동가 ‘경찰서’, 밴드 ‘재개발랄’의 병주 등 고정 멤버에 대학생들과 ‘젤리’가 모였다. 젤리(나이 미상)는 마포구청 앞에 ‘두리반 단전 항의’ 1인시위를 나간다. 그는 새벽 6시부터 낮 12시까지 일하는 파견노동자다. 제 할 일 하다가 퇴근시간에 마포구청으로 1인시위를 하러 간다. 그 외에 뭔가 두리반을 위해 다른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 잠깐 생각하다가 “너무하세요, 흑흑” 우는 체하던 그는 말했다. “두리반에서 뭘 해야 되겠다 결심을 하는 것도 아니고 두리반에서 뭘 하라고 하지도 않아요. 저도 모르게 두리반에 오고 있어요. 콘서트도 하고 문학포럼(7월부터 한 달에 한 번 개최)도 하는데 그게 재밌으니까 오게 돼요. ‘철거민’ 하면 어두침침하잖아요. 근데 여기는 풋풋한 에너지가 넘쳐요.”
세상 가장 효율 좋은 10W짜리 전구그런 에너지들이다. 유채림씨는 두리반이 ‘자기 방식으로 싸우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는 어떻게 싸우냐고 작가회의 후배가 묻더라고요. 노동자의 방식이 있겠지, 했죠. 그다음에 작가는 어떻게 싸우냐고 그래요. 작가의 방식이 있겠지, 했죠. 저는 기고하고 글 쓰는 것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사람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다 자기 자리에서 싸우는 거죠.”
이들은 모두 한 명씩 왔다. 개인으로 왔다. 무슨 단체의 누구라며 조직된 사람은 없다. 김종환씨는 아는 에너지 단체를 수소문해서 태양열 패널을 얻는 것으로, 순씨네씨는 아이스팩을 얼려 배달하는 것으로, 젤리는 즐기는 것으로 두리반을 돕는다. 두리반의 10W짜리 전구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에너지이자 가장 효율 좋은 에너지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돕는 일, 당신에게 돈이 좀 있다면 후원도 도움이 되겠다. 두리반 후원계좌: 제일은행 300-20-472275(예금주 안종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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