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음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도종환, ‘어떤 마을’
시인의 말대로 사람들이 순해서인지 시골 마을 밤하늘은 유난히 별이 많이 떴다. ‘컹컹’ 개 짖는 소리 요란하던 시골 밤하늘은 아직도 별이 총총할까. ‘붕붕’ 차 소리 요란한 도시의 밤하늘은 별이 보이지 않는다. 대낮처럼 환하다. 달도 고층빌딩에 가려 운이 좋아야 본다. 우주 밖 저 멀리서 외롭게 떠돌며 자신을 불태우는 별은 도시에선 ‘투명별’이다. 어릴 때처럼 “안녕” 인사를 건네기 어렵다.
텐트도 제공하는 천문대
하늘을 봐도 별을 못 보는 도시인과 별 볼 일이 없다며 하늘도 안 보는 도시인 중 누가 더 불쌍할까.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빈센트 반 고흐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고 말했다. 꿈을 꾸고 싶은 도시인들은 이제 유목민처럼 별을 찾아 시골로, 천문대로 떠난다. 방학과 휴가철을 맞은 여름밤, 별 헤는 사람들로 천문대가 들썩인다.
경기 양평군 옥천면에 위치한 중미산천문대. 서울 근교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천문대다. 해발 445m, 산 중턱에 위치한 천문대는 밤 9시면 소란하다. 2시간짜리 별 관람 티켓을 끊어 별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 1박2일 또는 2박3일로 별자리 과학캠프를 온 아이들, 가족 단위 캠핑족이 함께 어울려 밤하늘 추억을 나눈다. 김학 중미산천문대장은 “여름과 겨울은 하루 방문객이 100명이 넘을 정도로 별 보기가 인기”라고 했다.
별은 늦은 밤 관측할 수 있어 하룻밤 머물면 좀더 여유 있게 볼 수 있다. 중미산천문대는 국내 천문대로는 유일하게 텐트를 치고 잠을 자며 밤하늘을 볼 수 있는 가족캠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텐트, 슬리핑백 같은 잠자리 도구는 물론 식사까지 제공해 손짐 없이 가볍게 찾을 수 있다. 지붕 없는 캠핑장에 누워 밤하늘 별을 질리도록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지난 8월17일, 초등학교 4학년 이준이네 가족과 중학교 2학년·3학년인 다혜·원형이네 가족이 중미산천문대의 하룻밤 동무가 돼줬다. 소리만으로도 시원한 계곡 옆 캠핑장의 텐트를 팀별로 하나씩 배정받고 모두 ‘데크’에 모였다. 저녁 7시, 이미 계곡 물놀이로 낮 시간의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린 뒤다.
별자리 관측을 위한 첫 번째 시간은 종이로 ‘별자리 조견판’ 만들기다. 별자리 조견판은 밤하늘의 별자리를 표기한 것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관측 보조 기구다. 조견판을 이용하면 지금 이 시간에 어떤 별자리가 보이는지, 은하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천문대원인 정진일 선생님이 초등학생 이준이의 눈높이에 맞춰 별 보는 법을 설명해준다. “밤하늘에서 별을 보려면 제일 먼저 북극성을 찾아야 해요. 북극성은 움직이지 않는 붙박이 별이면서 북쪽에 위치해 있어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돼요.”
밤하늘의 모든 별은 천구의 북극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일주운동을 한다. 모든 별 찾기는 북쪽을 알려주는 이정표인 북극성 위치 확인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북극성은 밝게 빛나리라는 선입견과 달리 2등성이어서 찾기 어렵다. 북극성을 찾으려면 가장 밝은 1등성 길잡이 별자리인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과 W자 모양의 카시오페이아부터 찾아야 한다.
“모든 별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번씩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져요.”
조견판의 회전판을 돌리며 보니 다른 날짜에도 같은 별자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8월17일인 오늘 밤 12시에 보는 별은 7월17일 새벽 2시에 그대로 떴고, 9월17일 밤 10시에도 뜰 것이다.
대신 위도가 다르면 보이는 별의 종류가 다르다. 하늘에는 총 88개의 별자리가 있으나, 우리나라 위도에서는 공작, 그물, 남십자가 등 21개 별자리를 전혀 볼 수 없다. 적도 사람들은 지평선에서 별을 보기 때문에 모든 별자리를 볼 수 있다. 적도에 걸쳐진 나라 칠레에서 별 관측이 유리한 이유다. 북극에 있는 사람은 머리 꼭대기에서 하늘의 절반밖에 보지 못한다. 대신 오로라를 볼 수 있으니 북극에서의 별 관측도 나쁘지 않다.
계절별로 길라잡이 별자리부터 찾으면 관측이 쉽다. 여름은 여름의 대삼각형인 백조자리, 거문고자리, 독수리자리부터 시작해야 한다. 거문고자리에는 직녀별 베가가, 독수리자리엔 견우별 알타이르가 있다. 이 두 별 사이로 견우·직녀를 갈라놓은 별 무리인 은하수가 흐른다. 오늘 밤 운이 좋다면 여름 밤하늘에만 보인다는 이 은하수를 볼 수 있게 될 터다.
별은 습도와 먼지가 적어 대기가 안정된 겨울밤이 특히 관측하기에 좋다. 올여름처럼 폭염과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스콜성 날씨에는 별을 볼 수 있을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천문대를 방문하는 이들이 헛걸음할까 두려워 전화 문의를 해도 천문대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은 “모르겠다”가 전부다. 해가 쨍쨍하고 맑은 날이라도 밤사이 대기 상태 변화를 장담할 수 없다. 오늘 밤 은하수를 볼 수 있을까. 김학 천문대장은 “365일 중 제대로 밤하늘 별을 보는 날은 15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올여름은 대기 상태가 수시로 변해 별 관측을 4~5일밖에 못할 만큼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50년 만에 수성·금성·토성·목성·달이 손바닥으로 가릴 만큼 근거리에 위치한 보기 드문 천문 현상이 있던 지난 8월13일도 이를 관측한 천문대는 없었다. 설아침 한국천문연구원은 “전국적으로 비가 와 저녁 7시께 서울에서만 수성을 제외한 행성과 달이 모인 걸 짧게 관측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西山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이병기, ‘별’
별을 제대로 보려면 해처럼 밝은 달도 져야 한다. 달이 지고 별이 하나둘 뜨기를 기다리며 밤 9시 천문대 강당에서 천문시뮬레이션 강좌가 시작됐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라고 외웠던 행성들, 태양보다 80억 배 이상 크다는 인류가 측정한 가장 큰 행성인 ‘VY 캐니스 메이저리스’ 등을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이 얼마나 작은지 새삼 느끼니 저절로 겸손해진다. 강의를 맡은 우송 선생님은 “별은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망원경으로 들여다봐도 점으로만 보일 뿐 아름답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고 했다. “망원경은 멀리 있는 별을 달처럼 가깝게 보려는 게 아니라 자세히 보려는 게 목적이에요. 별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다면 맨눈으로 즐겨보세요.”
옥상 관측대에 오르니 그새 별이 깨알처럼 밤하늘을 수놓았다. 4대의 망원경에 아이와 어른들이 엉켜 별을 관측했다. 천문연구원들이 밤하늘에 레이저로 그림을 그리듯 별을 이으면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십자 모양으로 날개를 편 백조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북두칠성 옆에는 보일 듯 말 듯한 시력측정용 별이 있다는 이야기부터 백조로 변한 제우스가 직녀를 꼬이러 가다 견우에게 맞아 백조 머리가 붉은 별과 파란 별 두 개로 나눠졌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이어지는 새, 별을 본 아이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우와 짱이다.” “다 점이잖아. 시시해.”
1박2일 영재 캠프에 참여한 서울 오금초등학교 6학년 선민이는 “도시에서는 광해(빛 공해) 때문에 별이 안 보였는데 여기선 교과서에서 배운 여름의 대삼각형 별자리도 볼 수 있어 좋다”며 신기해했다. 팔 벌린 ET 모양으로 생긴 ET 성운을 보여줘도 ET를 모르는 아이는 “안 보인다”는 말만 되풀이해 아빠의 기운을 뺐다.
어른이 더 달뜬 별밤별 보기 삼매경에 빠진 건 아이보다 어른이다. 이준이 어머니 임은아씨는 “12살 때 고향 전남 완도에서 본 밤하늘 별무리가 잊혀지지 않았는데, 38살이 된 지금 여기 와서 다시 보게 됐다”며 “서울에서는 못 보는 이런 장관이 빚어낸 황홀함을 이준이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목이 아파 별 보기가 힘들다던 원형이 어머니 채선희씨도 연방 감탄사를 쏟아놓았다. “우주가 크다 크다 했지만 얼마나 클까 실감이 안 됐는데, 수업을 듣고 밤하늘 별을 보니 광활하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 알겠어요.”
여름 은하수를 본 행운의 밤, 사람들은 그렇게 달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별 하나마다 아름다운 의미를 새겼던 윤동주 시인처럼 별을 보는 사람들은 시인이 된 듯했다. 누구는 미국 여행 때 들른 한 계곡에서 차를 세우고 그 위에 누워서 봤던 낯선 나라 밤하늘 별을, 누구는 시골 마을 툇마루에서 소원을 빌며 봤던 별똥별 이야기를 꺼냈다.
당일 별 관람 티켓으로 별을 보러 온 은행원 이찬수씨는 이번이 중미산천문대 두 번째 방문이다. 지난여름 방문했다 별을 못 봤던 아쉬움에 올해 다시 천문대를 찾았다. 당시에는 연인이던 민신영씨가 올해는 아내가 되어 함께 왔다는 점만 달라졌다. 이씨는 예전에 아마추어천문관측 동호회 활동을 했다. 별이 총총 뜬 밤하늘 아래서 담배 연기를 훅 날리며 “옛 추억이 떠오르네” 하는 이씨에게 “옛 여자가 아니고?”라는 민씨의 지청구가 낭만적으로 들렸다.
소란스럽게 밤하늘을 즐기던 사람들이 밤 11시가 되자 서서히 사라졌다. 서울의 제 집으로, 천문대 숙소로 흩어져 깊은 잠에 빠졌다. 밤하늘 별은 천체 사진을 찍기 위해 관측대에 남은 취재진의 것이 됐다. 고요한 밤, 동쪽 하늘에 있던 별자리들이 서쪽 하늘로 옮겨간 게 보였다. 움직임이 보이는 밝은 별이 인공위성인가 다시 보는 사이 별똥별이 여러 개 떨어졌다. 별똥별에 소원을 빌 만큼 순진하지 않은 나이가 됐지만, 언젠가 아이와 함께 별똥별을 본다면 틀림없이 소원을 빌라고 말하겠지. 그러기 위해선 별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찾아주어야 한다.
잠들기 전, 캠핑장 옆 계곡물에 발을 들이밀고 맥주 한 캔을 따 마셨다. 맑아진 눈과 달리 갈증이 났던 목이 시원해졌다. 해처럼 밝은 달도, 곡선을 그린 별무리인 여름 은하수도 본 행운의 밤이다. 별, 밤새워 나와 건배하자! 도시에서도 널 다시 찾을게.
참고 문헌(김상구 지음, 한승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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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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