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교칙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면 책임감도 생긴다. 교칙 위반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대부분의 아이는 수업을 잘하고 유머가 있고 친절하면서도 아이들을 ‘꽉 잡을 수 있는 교사’를 원한다. 1980년대에는 별로 인기 없던 그 ‘꽉 잡을 수 있는 교사’를 2010년 아이들은 왜 원하게 된 것일까. 쉬는 시간만이 아니라 수업 시간에도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괴롭힘을 일삼는 학생들로 인해 피해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교 정학·퇴학 없애자 교사들 곤혹요즘 학생들은 교사가 무조건 관대한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공정할 것을 요구한다. 규칙을 어긴 아이, 그리고 그 규칙을 어겨서 받는 벌청소를 빼먹고 도망간 친구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실에서 선생님에게 욕설을 하거나 급우에게 폭력을 행사한 학생을 포함해 공동체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규범을 위반한 경우 제재가 가해지지 않으면 교실은 혼란 상태가 된다. 그래서 교사는 옳고 그름의 심판자이자 정의를 위한 벌의 집행자이기도 하다. 발생 가능한 모든 혼란을 잠재워야 하는 책임이 교사의 어깨 위에 있고, 과거와 달리 실오라기만 남은 교사의 권위로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또 한편으로 학생은 자신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에 대해 과도한 통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한다. 스타일을 중시하는 요즘 학생에게 검은색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다니라고 하는 것은 고통에 가깝다. 이렇게 학생들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하고, 또 혹시나 있을 수 있는 교사나 다른 학생의 자의적 폭력에서 자유롭기를 원한다. 학생인권조례는 전자의 자유를 위한 것이지만 후자의 자유에 대한 대책으로서는 일정한 한계를 지녔다.
온 사회가 하나의 병영 같았던 과거 1970∼80년대 권위주의적 사회에서 ‘교육적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교사들의 자의적 폭력에 대한 크고 작은 악몽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참 많다. 그것이 학창 시절 단 한 번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그 기억은 평생을 가는 상처가 된다. 오늘날도 과거만큼은 아니어도 과도한 체벌로 인한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다. 체벌 금지를 담은 인권조례가 해결하려는 학교 안 인권침해의 전통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학교 안 인권침해는 학생에 의해 일어나기도 한다. 거친 소수의 학생이 일으키는 다른 학생에 대한 폭행·갈취 등의 문제가 이전보다 많아졌고,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학생이 교사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인권침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학생들이 밥맛이 없다고 학교 식당 아주머니에게 욕설을 퍼붓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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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가 의무교육이 되면서 정학이나 퇴학 조처라는 것이 없어졌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지속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을 계속 안고 있어야 하는 교사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격리 효과가 있는 전학 조처도 학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강제할 수 없다. 다른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어도, 교사에게 욕설을 퍼부어도 교실에서 정의의 심판자이자 집행자이기도 한 교사는 별다른 제재 조처라는 걸 취할 수 없다. 이들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학생들은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학교에서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 교육을 위해 필요한 교사로서의 최소한의 권위마저 흔들리고 있다.
수업에 업무에 학생 상담까지 다 잘해라?의무교육과정에서 정학이나 퇴학 같은 조처를 없앤 것은 문제 있는 학생을 밖으로 내보내기보다 그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학교에서 교사가 책임지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에게는 대부분 부모의 어릴 적 양육 과정에 문제가 있는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돼 있다. 이런 아이들을 변화시키려면 전문성과 많은 시간을 요하는 지속적인 상담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교과교육 전문가인 교사에게 전문적인 상담치료를 병행하면서 다른 수업과 업무도 진행하도록 요구하는 학교의 현실 속에서, 이런 학생들은 결국 ‘교육 대상’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이나 인권을 위해 끊임없이 ‘통제해야 하는 대상’이 될 뿐이다. 제재 방법으로 그나마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체벌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다.
체벌을 통한 훈육이 아닌, 대화와 이해를 통한 상담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면 모든 교사에게 학생 상담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대화 위주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나치게 바쁜 현재의 교사 업무에 대한 재조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교사의 상담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큰 사안들도 일어난다. 학교 교사에게 이 모든 부담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심각한 폭력 등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을 처벌하는 교정적 정의를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이들을 위해 해당 전문가들이 상담치료를 병행하면서 교육할 수 있는 또 다른 교육기관을 마련해야 한다.
교사들이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단지 소수의 거친 학생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먹다 남은 음료수 캔이며 빵봉지가 그대로 복도에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복도를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쓰레기를 줍는 청소 아주머니가 없다면 학교 모습이 유지되기 힘들 정도다. 교실에 침을 뱉는 행위는 거의 무의식에 가깝다. 이런 행위을 하는 데 친구들을 의식하지 않는다. 수업을 방해하는 의도적인 행위를 하는 것도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으면 그뿐 다른 친구에게 미안하거나 부끄럽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이런 행위가 싫은 학생들은 교사가 강력한 권위로 질서를 잡아줄 것을 요구한다. 학생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외부의 권위에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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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생이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규범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내면화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규범의 내면화는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덕목을 되풀이해 암기하는 것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욕구대로만 모든 것이 움직여서도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 할 수 없지만, 아이들의 욕구와 참여를 무시하면서 만들어지는 학교 규칙은 학생이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함으로써 규범의 권위를 갖지 못한다. ‘체벌’이라는 수단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으려면 교정적 정의를 실현할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함께 학생 참여를 통해 집단 규범을 형성함으로써 교사와 책임을 분담하는 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학생·교사·학부모 모여 토론을현재 운영되는 몇몇 대안학교의 사례는 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대안학교는 학교 규칙을 비롯해 학교 행사 운영에서도 학생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진지하게 회의에 참여하고 소속감도 높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면 공동체에 애정을 갖기 어렵다. 공동체에 애정을 갖게 되면 그 공동체를 지키려는 마음이 생겨나고 함께 만든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 교실이 통제와 군중심리가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이렇게 토론과 합의의 공동체가 되려면 학급당 학생 수도 대폭 줄여나가야 한다.
모든 학교에서 자신에게 적용될 규칙에 대해 학생들의 공론을 모아보자. 그들의 인권을 존중한다면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학급마다 지금 현재 논의되는 찬반 입장까지 포함해 토론해보게 하고, 그런 뒤 형성된 의견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그 토론이 형식적인 학교 행사가 아니라 자신들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칠 진정한 토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학생들은 아주 진지해질 것이다. “너희에게 적용될 법을 만드는데 너희가 실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며 이제껏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던 권리와 책임을 줘보자. 교육청이 교칙의 방향과 절차를 담은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각 학교가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모여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학교 규범을 만든다면, 교사 혹은 행정 당국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규칙보다 집단 규범으로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장경주 서울 시흥중 교사·전국사회교사모임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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