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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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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지옥, 이곳에 습지가 있었나이다

가톨릭 수도자들의 ‘생명의 강 순례’ 동행기…
낙동강 남지습지·해평습지 등 4대강 공사에 형체도 안 남아
등록 2010-04-29 13:32 수정 2020-05-03 04:26
한국 가톨릭 베네딕도 수도자 150여 명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3박4일에 걸쳐 낙동강 일대를 순례했다. 걷거나 차로 이동하며 살펴본 낙동강은 이미 깊은 상처로 신음했고, 수도자들도 아파했다.

한국 가톨릭 베네딕도 수도자 150여 명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3박4일에 걸쳐 낙동강 일대를 순례했다. 걷거나 차로 이동하며 살펴본 낙동강은 이미 깊은 상처로 신음했고, 수도자들도 아파했다.

수녀가 울고 있었다. 비가 하얀 베일을 툭툭 적시던 지난 4월19일 해거름, 남지습지(경남 창녕군)였다. 부산이 고향이며 지산재활원에서 소임 중이라는 수녀는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이 낙동강 전역에서도 ‘천혜’로 수식되는 자연 습지였단 사실.

하지만 이젠 누구도 남지의 본새를 알아볼 수 없다. ‘4대강 살리기’ 사업 아래 이곳에서만 한 달 넘게 진행된 준설 작업으로 일대는 완벽한 황무지로 둔갑해 있었다. 유속을 조절하고 강의 정화 작용을 도맡던 곳이다. 강 아래론 ‘생태 1등급지’가 있다. 굴착기 두 대는 개의치 않고 5초에 한 차례씩 새 삽을 댔다.

수녀는 뒤에 기자에게 말했다. “너무 (자신이) 무관심했어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거기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송가를 그렇게 슬프게 부른 적이 없었어요.”

4대강이 수도자까지 불러세웠다. 죽음의 소리가 겨우 전해진 것일까. 이날 남지 준설 현장에서 기도문을 함께 되뇐 수녀와 수사만 150여 명이다. 한국 가톨릭 베네딕도회 수도자다. 전례를 찾기가 어렵다. 대부분 세속과의 접경을 최소화하며 기도와 수행을 삶의 중심에 놓는 이들이다. ‘봉쇄 수도원’(외출 없이 기도·독서·노동으로 이어지는 안거와 피정만 함)의 수녀들도 포함돼 있다.


‘봉쇄 수도원’ 수녀들까지 나서
낙동강 주요 습지·보 예정지와 순례 일정

낙동강 주요 습지·보 예정지와 순례 일정

수도자들은 이런 말을 했다. “국토 전역에 회복 불가능한 생태계 파괴가 예상되는 4대강 사업을 걱정하는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상처 입고 아파하는 강을 위로하며 참회하는 마음을 봉헌하고자 합니다.”

낙동강 앞에 선 까닭이다. 이른바 ‘평화와 치유를 비는 생명의 강 순례’ 첫날이었다. 오전 10시 강과 바다가 만나는 을숙도 철새 도래지(부산)에서 시작됐다. 기자도 그 순례길에 조용히 올랐다. 기대 못한 고행이 강 따라 흐르고 있었다. 황톳길, 황토바람 때문이 아니다. 낙동강 700리(부산~상주) 먼 길 탓도 아니다. 수녀와 수사들은 짓이겨진 낙동강을 가까이서 보기 버거워했다. 낮고 깊게 신음했다.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 본격화한 지 겨우 5개월 만의 ‘기적’이다.

을숙도에서 하단과 함안보, 남지 그리고 달성보와 해평습지를 거슬러 오른 이틀간은 특히 그랬다. 수도자들이 3박4일 순례 가운데 강의 ‘상처’부터 보려는 여정이다.

4월 말 현재 낙동강 사업 전체 공정의 18% 안팎이 진척 중이다. 준설과 보 준공이 양축이다. 겉만 봐도 강은 이미 버려질 대로 버려졌다.

남지 습지는 문경에서 본포까지 절반가량이 사라졌다. 본가가 함안, 외가가 남지라는 한 수녀는 “어릴 적 여기서 배도 타고, 모래벌판엔 땅콩밭이 넓게 있었다”며 “막상 와서 보니 다 기억난다”고 말했다. 실로 오랜만의 방문인데, 풍경이 기억을 부정하고 있었다. “할 게 기도밖에 없다,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했다”는 수녀의 말조차 덧없이 들렸다.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해평 습지(경북 구미)는 70%가량이 파괴됐다. 흑두루미, 재두루미 따위 철새가 일본으로 가기 전 들르는 곳이다. 이준경 낙동강네트워크 사무처장은 “완전히 망가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순례단이 3일차에 찾았던 구담 습지도 절반이 이미 파괴됐다.

부산 지역 한 일간지는 때마침 “낙동강 사업으로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습지는 총 38곳 2218만㎡로, 이 중 26%에 이르는 570만㎡가 소실될 처지”라며 “주요 습지엔 거의 예외 없이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멸종위기종 삵이 서식하고 중·상류에는 흰수마자·여울마자 같은 국내 고유 어종이 조사돼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국내 내륙 습지의 80~90%를 차지하는 하천 습지의 미적 가치는 ‘계산’되지도 않았다.

낙동강 습지가 사라지는 직접적 이유는 준설 탓이다. 강 전역에 걸쳐 7m 남짓의 수심을 확보하려는 작업이다. 부산에서 경북 안동까지 평균 6m 깊이로 강바닥을 파내는 꼴이다. 순례 이튿날 수도자들을 상대로 ‘4대강의 논쟁점’을 강연한 박창근 관동대 교수(토목공학)는 “앞으로 150~200년 동안은 모래가 흘러야 지금 상태로 복원될 것”이라고 말한다.

상주보·낙단보 일대 이미 녹조 현상

설령 살아남더라도 습지는 높게 물을 가둔 보에 곳곳 잠길 것이다. 물론 정부는 ‘대체 습지’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환경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 김경철 습지보전국장은 “대체 습지가 성공한 사례가 국내에 한 차례도 없다”고 못박는다.

수녀들은 이런 ‘과학적 논쟁’까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무나 녹지대가 물가로 드리운 그늘이 사라지면 그 아래서 알을 낳던 물고기가 사라질 것임을 안다.

직관은 때로 과학을 앞선다. 한 노(老)수녀는 말했다. “대구 신천 쪽이 고향인데, 그땐 물이 맑아서 눈으로 조약돌을 집었죠. 난 시멘트독을 압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오래 살아서 알아요. 이건 강을 망가뜨리는 일이에요.” 실제 낙동강 상류에 위치할 상주보·낙단보 일대엔 이미 녹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하류의 수질과 생태계도 연쇄적으로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학계에선 ‘댐’으로 분류하지만, 정부는 한사코 ‘보’라고 이르는 시설의 준공 현장은 거대했다. 불가역적으로 보였다. 함안보 공사 현장을 보기 위해 수녀들은 비좁은 2차선의 갓길로 다녀야 했다. 준설 운반 차량이 무섭게 그리고 쉴 새 없이 도로를 내달렸다. 한국의 모든 덤프트럭이 낙동강에 집결한 듯 착시를 불렀다. 낙동강 일대엔 함안부터 상주까지 8개 보가 건설 중인데, 4대강에 설치되는 보 개수의 절반에 이르는 탓이다.

그런데도 ‘하자’가 지적되지 않는 곳이 없다. 김경철 국장은 “가물막이를 하지 않은 채 준설을 하거나 오탁 방지막과 침사지(모래와 흙 등을 가라앉혀 1차로 거르기 위한 못)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 갖춰도 제 기능을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둔치에 쌓아둔 준설토엔 덮개를 씌워야 하는데, 이 또한 지켜지는 곳이 없다. 하기야 규정을 따르려면 낙동강변 대부분을 덮는 일이 된다.

대신 이달 초까지도 없던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려 있었다. 함안보 준공 현장만 해도 “지역 주민을 우롱하고 낙동강 살리기 사업을 반대하는 단체는(의) 창녕 방문을 원하지 않는다”(화왕산포럼), “반대론자는 낙동강 오염을 방치하란 말인가”(길곡면 주민) 따위 플래카드가 먼저 방문객을 맞았다.

고성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온 이요나 수사는 “2006년 수도원 근처에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면서 마찰이 있었는데 그때와 똑같다”고 말했다. 주민끼리의 갈등만 부각되는 형국이란 얘기다. 수행에만 정진하던 수사가 처음 수도원 바깥으로 나오게 된 계기였다.

거리로 구도자를 부르는 사회는 위험하다. 갈등의 한편에 수도자를 세우는 시각은 잔인하다. 이들은 물확보·홍수방지론과 같은 ‘과학’을 넘어서 있다. ‘정치’도 넘어선다. 오직 생명 감수성만이 기도와 침묵의 동기가 된다.

이요나 수사는 “강이 파괴되는 걸 보며 인간의 파괴를 본다”며 “잘 사는 건 행복하고 인간답게 사는 것인데, 오히려 (생명을) 위축하고 파괴한다면 이제 우리가 가려는 방향이 옳은지 불편한 질문을 각자에게 던지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율스님이 찍은 낙동강 사업 전후의 모습(미공개 사진)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율스님이 찍은 낙동강 사업 전후의 모습(미공개 사진)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율 스님이 수녀들 안내

최근 종교계가 급히 규합되며 4대강 사업에 제동을 거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지난 3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4대강 살리기 사업 반대 성명’을 냈다. 5천여 명의 스님과 재가불자가 지난 4월17일 ‘4대강 생명살림 수륙대재’를 열었다. 4대강 사업이 ‘생명 파괴’의 임계치에 닿았다는 말과 같다. 특히 달성보 건설현장에서도 천주교 성직자들의 생명평화 미사가 열렸다. 지난 4월10일, 보수의 본고장 대구였다. 김종철 발행인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의미가 아주 크다. 과학·절차적 합리성만을 다퉜던 세속의 국면을 넘어선다. 사업의 목적이, 절차가 옳았다면 지금 강을 절단하고 파헤치는 것은 타당해지는가 따지는 셈이다.

종파의 구분조차 흐려진다. 베네딕도 수도자들의 순례를 안내한 이부터 지율 스님이다. 천성산(경남 양산)을 지키려고 단식 투쟁을 하며 사경까지 내딛던 비구니다.

이번 순례는 지난해 11월 초 논의가 되었다. 올 3~4월 답사가 이뤄졌다.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에노스 수녀(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처음 답사를 다녀온 뒤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1년 전부터 낙동강을 다녔던 지율 스님은 “(낙동강에) 불이 났다, 애가 닳는다”고 말했다. 10여 명이 1박2일로 돌아보려 했다. 참가를 원하는 이들이 몰렸다. 대부분의 수녀는 1년에 보름씩만 주어지는 휴가를 이용해 참석했다. 도자기 캠프장으로 활용되는 폐교에서 늦은 밤 찬물 세안을 하고, 교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기도 했다. 둘쨋날만 빼고 매번 강바람은 칼끝처럼 수녀들의 발목을 베었다. 몇몇 수녀는 맑은 날도 우비를 걸쳤다.

순례 나흘째 안동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을 잇는 산자락과 습지 4km 구간에서 수녀들은 모처럼 웃음꽃을 피웠다. 상대적으로 잘 보존된 강 자락을 둘러보겠다고 짠 여정이었다. 수사들은 하회마을 나루터에서 물수제비를 만들었다. 먼저 배로 떠나는 수녀들에게 남은 이들이 물을 튀겼다. 자꾸들 웃음이 나는 모양이다.

병산습지는 사람들이 잘 지나는 곳이 아니다. 수차례 오갔다는 지율 스님도 길을 잃었다. 그래도 웃음이 또 나는 모양이다. 강바람도 결결이 거셌다. 한 수녀의 모자가 날아가 강물에 떠밀렸다. 수사가 뛰었다. 물을 첨벙댔다. 양말을 벗고 신발을 벗었다. 허벅지 깊이에서 모자를 건졌다. 수녀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그리고 다시 미사를 올렸다. 아직까진 멀쩡한 병산습지도 곧 절반을 잃게 될 것이다. 수녀들이 보고 탄성을 쏟았던 노루와 고라니의 발자국도 사라질 것이다. 병산서원과 함께 일대 절경으로 유명한 관광유적지인데도 그러하니 기도 말고는 진정 할 게 없다.

순례 첫날인 4월19일 들른 함안보 준공 현장. 쉴 새 없이 오가는 덤프트럭 사이에서 수녀들은 위태로워 보였다(왼쪽). 순례 사흘째, 한반도 강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내성천의 드넓은 모래톱을 순례단이 거닐고 있다. 이곳에 남긴 발자국도 영영 사라질 것이다.

순례 첫날인 4월19일 들른 함안보 준공 현장. 쉴 새 없이 오가는 덤프트럭 사이에서 수녀들은 위태로워 보였다(왼쪽). 순례 사흘째, 한반도 강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내성천의 드넓은 모래톱을 순례단이 거닐고 있다. 이곳에 남긴 발자국도 영영 사라질 것이다.

“결코 강을 잃어버리진 않을 겁니다”

순례단은 모든 예정지를 밟지 못했다. 구미보 준공 현장에선 4대강 사업본부의 지시에 따라 영상물을 기록한다는 이들이 “현장을 보려면 반드시 카메라에 찍혀야 한다”고 우겨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용도에 수도자들은 비치길 원치 않았다. 달성보 쪽에선 현대건설 관계자가 공사 개요를 브리핑하는데 한 수녀가 “가슴이 아픈데 너무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듣고 싶지 않다”며 3분 만에 중단시켰다.

강 순례의 사실상 종착지로 삼았던 내성천(경북 봉화·예천 사이 낙동강 상류)에 도착한 건 4월21일 해질 녘이었다. ‘한반도 강의 원형질’로 상찬받는다. 모래톱이 거대한 주단처럼 펼쳐져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물론 예외가 되진 않는다. 이곳도 곧 준설될 것이다. 대구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에서 온 수녀는 “이렇게 고맙고 절실한 마음으로 강을 바라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지금 남기는 발자국도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아프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곳을 보며 아픔을 느껴야 하는 시대는 정상적인가. 알 수 없으므로, 수녀들은 그곳에서도 그저 또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수도자들은 이튿날 낙동강의 발원지로 불리는 상주에서 각지에서 달려온 수도자·신도들과 함께 ‘지구의 날 미사’를 올리며 순례를 갈무리했다.

가장 고단했을 첫날 창녕 우포 근처 한 폐교에서 숙박하며 지율 스님과 나눴던 대화 한 토막을 암송한 이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길을 잃은 곳에서 희망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때는 정말 길을 잃어야 (새) 길을 찾기도 하거든요. 천성산 때보단 쉽다고 생각해요. 그땐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지만 지금은 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요. 1~2년 안에 복원은 안 되겠지만, 결코 (강을) 잃어버리진 않을 겁니다.”(지율 스님)

에노스 수녀가 화답했었다. “오래전 제가 종신서원(일생을 마칠 때까지 하느님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서원하는 일)을 하던 땐데, 부산 본원에 불이 났어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종신서원을 하기에 불이 나느냐 하셨는데, 소방서도 헬기도 못 끄는 거예요. 수녀들이 정말 애가 닳아서 물을 날랐어요. 그러니까 주민들도 도와주고… 결국 불길을 우리가 잡았어요.”

다들 웃었다. 절박한 웃음이었다. 밤이 그리 저물었다. 강도 아직은 흐르고 있었다.

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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