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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가 짬뽕집 차린 이유, MB는 모른다

등록 2010-03-24 13:44 수정 2020-05-03 04:26

2009년 10월께 전북 완주군의 어느 한적한 빈터.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 안에서 연방 김이 솟아오른다. 40대 후반의 사내 혼자 땀을 삐질거리며 삶은 돼지고기의 잡냄새를 없애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서울 사는 사내는 수요일마다 내려와 사흘 내리 비법 찾기에 골몰한 참이다. 보쌈집을 차리는 게 목표다. “찾았다.” 된장과 양파, 대파, 황기를 사용해 마침내 비법을 완성했다. 몇 주일 뒤 이번에는 사내가 같은 곳에서 뼈다귀감자탕 조리법을 연마하고 있다. 보쌈집을 차리려면 적어도 서른 평 이상의 매장이 필요하고 이래저래 4억원 안팎의 돈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 그는 업종을 바꾸기로 했다. 고생 끝에 이번에는 황태와 다시마, 민물새우를 우린 육수로 돼지등뼈를 삶는 방법을 고안해냈지만 이 역시 비슷한 이유로 접었다. 은행 예금에다 빚을 낸다 해도 마련할 수 있는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윤종훈 사장.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윤종훈 사장.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이 사내의 본래 직업은 회계사.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창업컨설팅을 받으러 오는 이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음식점만은 차리지 말라고 말렸다. “음식점이란 게 가장 극심한 레드오션이거든요. 창업한 음식점 가운데 80%가 여섯 달 안에 문을 닫아요. 1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손에 꼽을 정도죠.”

그러던 그는 어느 날 문득 ‘레드오션’에 몸을 던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3월17일 끝내 서울 신촌에 ㅅ중국음식점을 차린 것이다. 개업 둘쨋날 음식점에서 만난 윤종훈(49) 사장은 “가진 기술도 없고 영업도 할 줄 모르니 생각나는 게 음식점이더라”라며 “내가 (그렇게 말리던) 바보의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고소득층으로 분류되는 회계사가 ‘짬뽕집 사장’으로 변신한 데는 정치·사회적 맥락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애초 돈 버는 일보다 사회 개혁에 관심이 더 많았다. 참여연대와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하는가 하면 삼성그룹의 증여세 포탈을 비판하는 1인시위도 벌였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도 그의 공격 목표였다. 최근까지 한 법무법인 소속 회계사로 활동하는 동시에 시민경제사회연구소 기획위원을 하며 용역을 받아 생계를 꾸렸는데, 양쪽 일감이 갈수록 급감했다. 이 정권 출범 전에 견줘 수입이 3분의 1로 곤두박질했다. 공영방송 사장은 물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임기가 보장된 정부 산하기관의 기관장 목이 우수수 떨어지는 판에, 개혁적 성향의 단체에 기업들이 일을 맡길 리 없다. 현재 진행 중인 ‘박원순 대 국가’ 소송과도 같은 맥락이다.

개인적으로는, 세계 1등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사교육을 피해가기도 어려웠다. 둘째아이가 고2인데 이래저래 한 달에 100여만원의 돈이 든다. “제도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우리 아이에게 굶으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게 그의 항변이다.

결국 그는 “소신을 생계와 맞바꾸는 이도 많이 봤고, 나도 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어” 일단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교과서를 읊다 실물경제에 처음 뛰어들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다. 직원이 3명인데, 아직 면을 전담해 삶고 조리할 ‘면장’을 구하지 못했다. 이날도 한 명 면접을 보기로 했는데, 전화기를 끄고 연락이 두절됐단다. 윤 사장은 “생활이 안정되면 단체든 어디든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며 언제든 시민운동의 전선에 다시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취재 중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이 원고를 보냈다고 연락해왔다. 그러더니 “윤 회계사를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조만간 매상 올리러 간다고 전해주세요” 한다. 회계사가 왜 짬뽕집 사장이 됐는지 더 궁금한 이들은 한번 가봄직하다. 메뉴는 10가지뿐인데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말을 잘하면 실물을 아는 회계사의 창업 코치를 받을 수도 있겠다. 여기부터는 순전히 독자의 개인기에 달렸지만…. 문의 02-363-6731.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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