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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가족 협박 사건, 추가 수사”


아파트 주민들이 정신장애인 가족 전출 요구하며 집단시위 벌인 사건 담당 검사 “수사 더 진행” 밝혀
등록 2010-03-23 17:52 수정 2020-05-03 04:26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같은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정신장애인 가족의 전출을 강요하며 불거진 갈등(800호 기획 ‘정신장애인은 이웃의 자격이 없다?’ 기사 참조)이 새 국면을 맞았다.

정신장애인은 이웃의 자격이 없다?

정신장애인은 이웃의 자격이 없다?

강압에 의해 이사를 가겠다는 각서까지 썼던 정신장애인 가족은 명예훼손과 폭력 혐의로 아파트 주민대표들을 고소했는데, 지난 1월 경찰은 보름가량의 수사 끝에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바 있다. 검찰 지휘에 따른 결과다. 이렇게 사실상 무혐의로 종결되려던 사건이 인권단체 등의 요청 끝에 보강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가족을 무료 변론 중인 소라미 변호사(공익변호사그룹 공감)는 지난 3월17일 “담당 검사를 만나 ‘4월에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추가로 불러 수사를 더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들었다”고 전했다.

국회의원 등 1500명 탄원서 제출

같은 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 등이 중심이 되어 추가 수사를 요청하는 1500여 명의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정선(한나라당)·박은수(민주당)·곽정숙(민주노동당) 의원 등 국회의원 5명과 인권단체, 법조인 등이 동참했다.

하지만 정신장애인 가족이 전하는 충격은 여전하다. 정신장애 2급 엄상호(29·가명·경기 화성)씨는 지난해 5월 같은 아파트 단지의 40대 주민을 폭행했다. 이후 엄씨 가족이 거주하는 아파트 1층 밖에서 주민 100여 명이 전출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욕설 등을 퍼부으며 각서도 받아냈다. 단지 내 방송과 게시판을 통해 공개적으로 ‘대책’이 모색됐다. 엄씨 가족도 보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은 “주민대표들이 상호를 정신병자로 못박고 허위 사실까지 유포하며 주민들을 선동했다”고 말했다.

엄씨 가족의 고소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당시 “주민대표들도 (선동을 한 게 아니라) 각자 단지 내 방송을 듣고 시위 등에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주민대표들의 행동이 ‘공공의 이익’에 기반한다고 판단했다.

장추련 등은 탄원서 제출과 함께 사건을 맡은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이를 통해 공포와 불안을 조성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로 인해 엄씨 가족이 입은 피해가 결코 적지 않다”며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유로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정신장애인에 대해 다른 시민들과 같은 수준으로 권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엄씨 가족은 보강 수사를 요청하며 주민대표들을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추가 고소했다. 소라미 변호사는 “시위, 방송, 각서 종용 등 모든 행위가 지속성, 고의성, 보복성 등을 갖춰 법이 금지하는 악의적 차별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장애인과 장애인 관련자는 물론 장애인 보조기구에 대한 괴롭힘도 금지한다. 장애를 이유로 한 집단 따돌림, 모욕감, 비하 등을 포함한다. 신체적·정신적·정서적·언어적 가해 행위도 아우른다.

“시위, 방송, 각서 종용은 악의적 차별”

그럼에도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는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유명무실하다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번 사건의 수사 결과가 더 주목받는 까닭이다.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이던 엄상호씨는 부작용이 심해져 일단 집에 머물고 있다. 지난 3월15일부터다. 엄씨 누나는 “화성정신보건센터에서 방문해 사례관리를 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주민들과 마찰이 있진 않지만 벌써부터 수군대는 눈치”라고 말했다. 사실인지 피해의식인지는 알 수 없다. 엄씨 가족들이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만이 명확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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