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마닐라 공항의 오후는 무척이나 습하고 더웠다. 필리핀은 의료보험·전기·수도·통신 등 모든 공공사업이 민영화돼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병원에서 치료를 거절당하고, 수도 사정도 좋지 않아 일주일에 두 번씩 물이 제대로 공급되는 날을 확인해 탱크에 저장한 뒤 일주일을 버틴다. 현지인 말로는 정부와의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물이고 전기고 바로 끊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단다. 높이 솟은 산 구석구석까지 집들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고, 거리를 가득 메운 디젤차량은 연방 매연을 뿜어내고 있었다. 수차례의 슈퍼태풍이 지나간 시골마을은 이미 폐허나 다름없었다. 거리에는 구걸하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사설 경비·지프니 운전·매점 운영 등 종사지난해 9월 단속에 걸려 강제출국된 존의 검은 얼굴과 온화한 미소는 여전히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찾아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존은 어렵게 구한 사설 경비 아르바이트를 하루 접고 마닐라 공항으로 우리를 마중 나왔다. 존은 마석에 있을 때 필리핀 교회 공동체의 기타 반주자이기도 했으며, 성실하고 우직한 성격으로 공장 사장의 신뢰를 받던 노동자다. 다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그는 한국을 그리워했다. 이곳에서 하루 12시간 일하고 받는 월급이 고작 25만원가량이다. 존은 “이 돈으로는 다섯 가족의 생활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나마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모른다. 연장근로 수당도 없다. 하루 12시간을 일하든 24시간을 일하든 정해진 급료만 나온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희망이 없다는 것, 그에게 가장 힘든 것은 어쩌면 ‘절망’이 아닐까 싶었다.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우리에게 미안했던지 그는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려고 했다. “매일 단속 불안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어렵고 힘들어도 함께 격려하고 위로해줄 사랑하는 가족이 가까이 있으니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존은 반전을 시도했다. 말끝에 “단속의 불안감에 시달리겠지만, 다시 불법을 해서라도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존을 뒤로한 채 차를 타고 4시간가량을 달려 팜팡가시에 이르렀다. 이곳에 사는 사하 부부는 한국에서 함께 5년 정도 이주노동을 했다. 성공적이었다는 게 스스로의 평가다. “둘이 함께 있으니 타국 생활에서 오는 두려움과 외로움도 덜했고, 생활비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언제 단속당할지 모르고 언젠가는 가족이 함께 있는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나름대로 저축도 열심히 하고 사업도 구상했다. 두 사람이 마석가구공장에서 한 달에 200만원 정도 벌었다. 지난해 필리핀으로 돌아온 그들은 한국에서 번 돈으로 지프니를 샀다. 지프니는 한국으로 치면 개인 마을버스에 해당한다. 지프차를 개조해 뒤에 승객을 태울 수 있도록 한 형태인데, 필리핀에서는 꽤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여겨진다. 사하 부부는 지프니로 월 45만원 정도의 수입을 얻는다고 했다.
사하 부부의 옆에서는 라이가 고기를 굽고 있다. 지난해 강제출국당한 그는 현재 음식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의 벌이 역시 앞서 언급한 존과 다르지 않았다. 그 또한 한국에서 부인과 함께 10년 정도 이주노동 생활을 했지만 사하 부부만큼의 행운은 따라주지 않은 듯했다.
“어머니가 많이 아팠죠. 필리핀은 한국처럼 의료보험이 없어요. 병원비를 낼 능력이 되지 않으면 치료를 거부당하죠. 저는 번 돈을 대부분 병원비로 지출할 수밖에 없었어요. 힘들게 이주노동 생활을 했지만 돈은 모을 수 없었어요.”
“삼겹살에 김치 먹고 싶어요”
잠시 말을 잊지 못하던 라이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대하듯 우리 일행이 가져간 소주 한 잔을 들이켜면서 익살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회식 자리를 생각하는 듯 “삼겹살과 김치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하루에 300페소를 버는 라이에게 1kg에 250페소는 줘야 살 수 있 김치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한국에서 체화된 문화를 벗어나 현지 문화에 재적응하는 것 또한 귀환한 이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필리핀으로 돌아온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구하더라도 아르바이트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역시 일자리와 돈 문제다. 어머니 병원비로 돈을 모두 날린 라이는 현재 월급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도 벅차 보였다. 필리핀의 물가는 생각보다 비싸 4~5명 가족의 한 달 생활비로 평균 우리 돈 1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그 4분의 1 수준의 월급으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그의 어깨가 처져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한국에서 10여 년 가까이 이주노동을 한 미르 부부는 마닐라에서 차를 타고 5시간가량 떨어진 방가시난시 도심에서도 1시간 정도 더 들어가는 시골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집 앞에 벽돌을 쌓아서 만든 2평 남짓한 구멍가게를 운영해 한 달에 3만7천원 정도를 번다. 이들은 농사도 함께 짓고 있는데, 1년에 18만원 정도를 번단다. 더운 나라라 이모작·삼모작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필리핀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뉘어 있어 우기가 적당히 맞아주지 않으면 그나마 두 번 농사짓기도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더군다나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때문에 농사는 대부분 자급자족하는 수준이다. 한국에서 벌어온 돈은 거의 다 까먹었다. 일이 없으니 버는 돈은 없고 돈 들어갈 일밖에는 없다.
“한국에서는 집안일도 남편과 나누어 했는데…. 필리핀에서는 집안일을 남자가 하지 않아요. 모두 여자들의 몫이죠.” 부인 미르가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얼굴은 더욱 피곤해 보였다.
미르 부부의 두 아이 중 하나는 이제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다행히도 공립학교는 학비가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의 책값과 교복, 신발, 문구류 등 부대비용이 무척 비싸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생활에 이제 부담이 더 늘게 됐다.
떨어져 지내던 아이들과의 장벽이 고통으로
로빈은 한국에서 일하던 중 프레스에 손이 눌려 수술을 했다. 당시 자기가 아니면 공장은 누가 돌보느냐며 수술한 다음날 아픈 몸을 이끌고 공장에 가서 일할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다. 그러나 9년 동안 월급은 고작 5만원 올랐다. 출입국 단속반원에 잡혀갈 때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노동부에 진정을 했지만 5인 이하 작업장이라 해당 사항이 아니라며 외면했단다. 그는 현재 한국에서 벌어온 돈을 투자해 달락시에서 싸움닭을 키우고 있다. 투계 시즌을 앞두고 그는 닭을 돌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싸움 잘하는 튼튼한 닭을 생산해내는 일은 사활이 걸린 중요한 비즈니스다.
“대회에서 제가 키운 닭이 1등을 하면 수입이 생길 수 있죠. 그래서 지금 영양제도 먹이고 사람보다 더 대접을 하죠. 만약 성과가 나지 못한다면 투자금을 모두 날리는 거죠. 지금은 계속 돈이 들어가는 시기라 경제적으로 어려워요.”
필리핀에서 투계는 인기 오락 중 하나다. 도박의 성격이 강해, 사업이라기보다 위태로운 도박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에게 이주노동의 성공과 실패는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 그가 키운 닭들이 대회에서 선전하지 않는다면 그는 다시 고단한 이주노동의 길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
윌리는 지난 15년간 이주노동으로 번 돈으로 아내가 미싱 5대를 구입해 옷을 수선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럭저럭 생활비 정도를 충당하고 있다는 그는 지금 직업이 없는 상태다. 일이 없다는 것이 그에게는 견딜 수 없이 힘든 일이지만 그를 더 좌절하게 만든 것은 이주노동을 하는 동안 벌어진 자녀와의 거리다.
“아무 일 없이 놀다보니 무기력해지더라고요. 하지만 정작 가슴 아픈 것은 멀어진 아이들과의 관계예요. 지금도 아들은 저에게 ‘아저씨, 누구야?’라고 물어보며 저를 피합니다.”
한국에서 아내는 ‘합법’이었고 그는 ‘불법’이었다. 그러다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자 고민 끝에 불법인 윌리가 남기로 하고 합법인 아내가 필리핀으로 돌아와 아들을 낳았다. 윌리는 딸과 2살 때 헤어졌는데 지금 18살이다. 그리고 아들은 태어날 때조차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귀환한 이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주요한 문제 중 하나로 가족과의 관계를 꼽았다. 자녀와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무력감 등이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한국 생활을 통해 길들여진 소비·음식·생활 문화 때문에 고향에 돌아온 뒤로도 한국에 대한 ‘역향수병’을 앓고 있는 듯했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또 다른 문제는 강제출국 과정에서 받지 못한 밀린 임금과 퇴직금이다. 현지 조사 과정에서 우리 일행에게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받을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이들은 단속되면 바로 강제출국 조처된다. 그간 밀린 월급이나 퇴직금 문제는 신경 쓸 겨를도 없다. 빨리빨리 출국시키려다 보니 한국 정부도 이런 문제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사장과 연락해 선심 쓰듯 항공권 한 장만 달랑 쥐어줄 뿐이다.
필리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많은 귀환 외국인 근로자들은 일이 없어 한국에서 벌어온 돈을 모두 소진하고 있었다. 결국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다시 일을 찾아 어디로든 떠나는 것밖에 없어 보였다. 나름대로 성공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것이 지속 가능한지는 여전히 불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이들의 성공도 절반의 성공이요, 위태로운 성공일 뿐이다.
못 받은 퇴직금 받을 방법 묻는 이 여럿마석에 돌아온 뒤 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에게 고향에서 찍은 그들의 가족 사진과 인터뷰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몸이 아파 산소호흡기에 삶을 의지하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연방 눈물을 훔치는 한 여성 이주노동자의 코리안드림은 그 눈물만큼이나 힘겨워 보인다.
장동만 남양주시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 총무지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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