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해고 노동자 가족들이 ‘빈곤층’으로 급히 추락하고 있다. 회사가 비정규직에게 강제 휴업을 일방 통지한 지난해 11월 이후다. 정규직도 그해 말 강제 휴업에 들어갔다. 휴업은 해고, 해고는 파업, 파업은 구속으로 괴물처럼 둔갑해왔다. 가난이 밀려오는 속도는 삶을 절망하는 속도를 속수무책 앞질렀다.
친척 도움·은행 대출로 지내고 있지만
권희영(35·가명)씨는 지난 9월 직접 일자리를 구했다. 결혼생활 10년간 10살·4살 남매를 키우던 가정주부였다. 다른 선택이 불가능했다. 남편 이정수(36·가명)씨는 쌍용차 조립1팀 정규직 직원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일거리가 줄었다. 휴업 수당만 받았다. 올 6월8일 끝내 ‘정리해고자’가 됐다. 옥쇄파업에 동참했다. 10월 말 결국 구속 수감된다.
강제 휴업에 들어갔을 때 남편은 이전 본봉의 70%를 가져왔다. 그마저도 체불되곤 했다. 부부는 지난 4월 친정에서 처음 생활비 50만원을 도움받는다. 6월 기업은행에서 400만원을 빌린다. 그런데도 큰딸의 피아노 학원비가 밀렸다. 7월, 석 달치 학원비(33만원)를 낸다. 그리고 끊어버린다. 2년여 동안 가르치던 것이다. 딸은 “한두 달 있다가 다시 다니게 될 줄 알고 교재도 학원에 두고 왔다”. 이제는 ‘왜 학원에 안 나오냐’고 묻는 친구들한테 “형편이 어려워서 끊었다”고 말한다.
8월6일, 사선을 넘나들던 파업은 끝이 난다. 하지만 사선은 지워지지 않았다. 남편은 경찰조사·파업 후유증으로 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권씨가 본격적으로 구직에 나선 때다. 9월 남편의 체불임금 480여만원을 받았지만, 마이너스 통장을 다 메우지 못했다.
1년 가계부가 간명하다. 3천만원이던 채무가 이달 4200만원으로 늘었다. 친정·시댁 식구들이 틈틈이 건네준 50만~100만원은 ‘기입’도 하지 않았다. 권씨는 지역자활센터에서 138만원 남짓을 번다. 한 달 가계 총수입이다.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이달 내거나 낼 아파트 관리비, 보험료, 마이너스 통장 이자, 교통비, 난방비, 기타 생활비 등을 따져보니 못 잡아도 203만원이 넘는다. 그는 아직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권씨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권씨는 “저희는 좀 특수한 편”이라며 “일자리를 쉽게 못 찾아 아르바이트라도 우선 하는 구속자 가족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올해 쌍용차 실직·휴직자의 평균 부채 규모가 4378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80명(41%)이 연체 중이었다. 평균 연체 금액은 5283만원이었다.
이는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실과 쌍용자동차정리해고특별위원회(이하 쌍용차정특위) 등에서 공동 조사한 것으로 정리해고·희망퇴직·무급휴직자 195명을 표본으로 삼았다. 이들은 부채의 주 원인으로 집 구입(49.3%), 생활비(38.4%), 임금체불(34.8%) 등을 우선(복수응답)으로 꼽았다. 실제 권희영씨는 “이전에 큰 평수의 아파트를 분양받고 융자금을 갚아야 해 경제 상황이 곤란해진 가족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저마다의 삶을 장기적으로 전망하며 택한 선택이 해고라는 ‘돌발’에 가로막힌 셈이다.
10명 가운데 3명이 부채 청산 계획으로 ‘집 처분’을 첫째로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후 삶을 전망조차 할 수 없다. 당장 31%는 청산 계획 자체부터 “잘 모르겠다”고 답하고 있다.
쌍용차는 여전히 ‘산 자’와 ‘죽은 자’를 정리하는 중이다. 지난 11월18일 회사는 ‘산 자’ 가운데 옥쇄파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34명에게 해고 결정을 내렸다. ‘새로 죽은 자’다.
최경민(35·가명)씨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이들의 삶도 1년째 흔들리긴 마찬가지다. 최씨는 지난해 말부터 아르바이트로 야간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월급이 줄면서 불안했다.” 휴업수당 100여만원에 겨우 40만원을 보탰다.
쌍용차 가족들이 겪는 고통 가운데 하나는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자녀들의 교육비부터 최우선적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최씨 또한 큰딸(8)이 다니던 피아노·영어학원은 올해 초 관뒀고, 작은딸(4)이 다니던 유치원마저 파업을 시작한 5월께 끊었다.
그럼에도 비해고자였던 최씨는 옥쇄파업에 끝까지 남았다. 친한 동료들은 “상황이 안 좋으니까 같이 나가자”고 종용했다. 하지만 또 친한 동료들은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갈등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저 처음 파업에 동참한 이유만 최씨는 곱씹었다. “정리해고는 부당했고, 동료들이 해고되는 것도 인정할 수 없다.”
11월19일 파업에 동참했던 비해고 동료들은 서로 다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주변 동료 2명이 경징계, 2명이 중징계였다. 최씨가 받은 문자는 “징계 결과: 해고(해고일자 12/12부)”였다. 물론 징계 정도는 옥쇄파업 참여일에 정확히 비례했다.
최씨는 파업 이후 참고인 자격의 경찰 조사만 받고 나온 뒤 박스공장 등을 전전했다. 지난 9월15일부터는 충남 당진의 한 패널 조립공장에서 일한다. 평택에서 출퇴근에만 2시간이 걸린다.
그는 “동료 한 명이 해고된 뒤 평택에서 공장에 취직하려고 면접을 봤는데, 쌍용차에 다닌 게 알려져 퇴짜를 맞았다”며 “(우리에 대한) 인식이 워낙 안 좋다”고 말한다. 정부는 쌍용차 사태 이후 평택을 ‘고용특구’로 정했다.
공장에선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저녁 8시까지 때때로 야근을 한다. 밤엔 대리운전을 한다. 하루 3~4시간을 자고 버는 돈이 한 달에 180만원이다.
하지만 이는 해고자들끼리만 견주면 상당한 수입이다. 위 조사를 보면, 응답한 이 가운데 62명(31%)이 “소득이 전혀 없다”고 한다. 100만원 이하가 58명(29.7%), 100만~150만원이 41명(21%)이다. 조사단은 “소득이 전혀 없는 62명은 실업급여, 퇴직금 및 체불임금, 은행 대출 등으로 임시방편 생계를 영위하고 있어, 곧 악성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한다.
11월19일의 징계 결정으로 132명의 비해고 노동자들 가운데 126명을 징계를 당했다. 23명이 정직 3개월, 22명이 정직 2개월, 17명이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감봉 7명, 견책 11명, 경고 12명 등의 징계도 내려졌다.
최씨는 “(파업 전력 때문에 해고 결정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막상 통보를 받으니…”라며 말을 끝맺지 않았다. 아내는 최씨에게 되레 사과를 했다고 한다. 파업 당시 가족대책위에서 활동한 게 이유가 됐나 싶어서다. 아이들은 여전히 “아빠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줄 안다”.
쌍용차정특위는 징계 재심을 요청할 예정이다. 하지만 절차 전개상 재심 결정·통보 기간을 쳐도 12월 중순이다. 당초 통보된 해고일자 ‘12월12일’이 재심까지 감안했다는 분석이다. 번복 가능성이 적다는 말이다.
‘죽은 자’들이 경제적 고통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한상균 전 쌍용차 노조지부장을 포함한 핵심 간부 22명에 관한 첫 공판이 12월4일 예정된 상태다. 그간 파업에 참여한 83명이 구속되어 70명이 기소됐다. 이 가운데 평조합원 2명, 간부 2명, 금속노조 등 외부 동참자 3명이 실형을 받았다.
구속된 남편 면회 때도 돈 걱정부터실형을 받은 이들 가족의 경제적 고충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배우자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며, 그 기간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설경애(37)씨의 남편 최아무개(39)씨는 평노조원이었다. 일반 노조원들에 대한 선고가 대체로 났으나, 최씨는 아직 한 차례도 재판을 받지 못했다. 최씨는 옥쇄파업을 풀기 전날, 옥상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현장검거됐다. 그는 “경찰에게 진압되는 동안 두 차례 기절했다”고 말한다. 병원으로 옮겨져 과호흡증, 공황장애, 목·허리 디스크를 진단받았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 10월19일 병원에 입원 중인 최씨를 끌고 갔다. 구속 수감이었다.
설씨는 9월 직접 일자리를 구했다. 한 시민단체에 마련된 사회적 일자리로, 아이들의 ‘역사기행’을 담당하는 강사직이다. 77만원가량 받는다. 그마저도 이달 말로 끝난다. 1년 전 150만원 정도에 머물렀던 마이너스 통장은 이달이 지나면 한도액인 1500만원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설씨는 11월24·25일 연달아 남편을 면회했다. 따지듯 물었다. “이젠 정말 쓸 돈이 없다.” 남편은 “어제 면회 온 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내가 나가서 열심히 뛰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은 여전히 걸을 수 없다. 면회 때마다 동료 수감자의 등에 업혀 나온다. 어이없는 ‘반농 반진’에 둘은 그냥 웃고 말았다. 설씨는 “면회 가서 돈 얘기만 해서 걱정을 외려 주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위 조사를 보면, 설씨나 권희영씨처럼 배우자가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24%다. 최경민씨처럼 노동자 본인이 떠맡는 경우가 26%다. 하지만 23.6%는 “소득원이 없다”고 밝혔다.
이들 10명 가운데 8명은 금융기관에서 우편·전화·문자로 빚 독촉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에게서 “상당한 정신적 압박을 받는다” “도망가고 싶다” “창피하다”는 진술이 이어진다.
명징해지는 절규 “해고는 살인이다”
지난 1년의 가계 사정을 캐묻는 기자에게 권희영씨는 “너무 개인적인 것들이라 망설이게 된다”며 “지난 1년의 기억을 되짚는 게 유쾌할 리 없잖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지는데, 들춰줘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정부 차원의 채무 해결 지원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며 “개인회생·파산 신청을 집단적으로 받아 법률적 지원을 통한 채무 탕감 방식을 추진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고는 살인이다.” 지난여름 내내 울려퍼졌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절규. 권씨의 말마따나 빠르게 잊혀진다. 그런데 말뜻은 정작 이제 명징해진다. 얄궂다. 다음달, 내년엔 더 분명해질 것 같다. 설경애씨의 마이너스 통장 채무 일시 상환일은 내년 2월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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