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직원인 아버지는 악성 림프종(비호지킨 림프종·혈액암의 일종)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간 모은 자료만 600쪽에 이른다. 2007년 11월 대한민국 육군 일병 김재민의 죽음이 계기였다. 그의 아들이었다. 국가는 ‘나라의 아들’이라 일렀다.
김창겸(51)씨는 여전히 눈물이 맺힌다. “아들 생각만 하면 잠을 설칩니다. 미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2006년 1월24일 아들은 입대한다. 병적기록표가 말한다. 173cm, 65kg. 내과, 외과, 정신과… ‘정상’. 신체등위 3급. 306보충대 입영 통지 중.
6사단 수송병이 된 아들은 그해 5월에 100일 정기휴가를 나온다. 느리기만 하던 시간이 돌연 내달린다. 폐렴으로 6월16일 군 병원(경기 포천 일동병원)에 후송된다. 엑스레이에 이상 징후가 발견된다. 입원 사흘 만에 병원 쪽에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온다. “자녀가 병원에 입원해서 잘 치료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열흘이 지나서야(6월27일) 양주 국군병원으로 가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 7월11일 림프종을 확정받는다. 모든 휴가를 미리 당겨 고려대 안암병원으로 옮긴 날이다. 9월6일 “반강제로” 의병 전역한다. 입대 8개월 만의 일이다. 그리고 한 차례 치료 뒤 재발 끝에 갈대처럼 푸석해진 아들은 삶을 꺾고 만다. “직접 사인 폐렴, 선행 사인 림프종.”
군이 지원해준 건 민간병원 입원 치료비가 전부다. 50만원 정도다. 육군 중앙전공상심사위원회는 2006년 10월 아들의 전역과 죽음을 ‘비공상’으로 판정했다. 공무 상해가 아니란 얘기다. 아들은 유공자도 아니다. 그는 불명예 제대자, 의병 전역자일 뿐이다.
“제가 가장 억울한 건 아들이 병을 이미 갖고 입대했다는 정부의 설명입니다. 아니 어느 부모가 자식을 유공자 만들겠다고 병을 숨기고 군에 보냅니까.”
김씨는 미칠 수 없다. 아들을 아직 보내지 못한 탓이다. 지난해 9월 재심의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자, 다음달 육군본부에 ‘전공상 심의의결서’를 공개해달라고 청구했다.
“육군은 군 복무와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기 어려워 ‘비공상’으로 판정하였습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는 부모는 울며 다니며 군복무와 인과관계가 있다는 증명을 하기 위하여 각종 자료를 첨부하여 증명하였습니다. 이제는 강한 친구 대한민국 육군에서… 군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증명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군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보상 대상자에 포함되어 육군 중앙전공상심사위에 보고가 되었고 심의 결과 비전공상으로 판정되어 보상이 부결된 상태입니다.” “군 복무와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기 어려워 비공상으로 판정함.”
유가족은 분개한다. 김씨가 논문, 강의, 학술지 등에서 밤낮으로 추린 600쪽 자료엔 군의 ‘계산법’을 부정하는 연구결과가 차고 넘친다.
일동병원의 담당 군의관이 밝힌 소견서부터 명징하다. “김 일병이 신검 당시 실시한 흉부 엑스레이상 정상 소견이었습니다. 처음 내원 당시 실시한 흉부 엑스레이를 비교할 시 군 입대 이후 본 질환이 발병 또는 진행된 것으로 판단하는 게 타당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항암 치료를 맡았던 고려대 안암병원 쪽 또한 “군 입대 전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고, 흉부 사진 촬영 등에서 이상 소견이 없던 분으로 입대 후 기침·가래 등의 증상이 있어 본원으로 내원하여 시행한 조직 검사 결과… 입대 후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며… 치료 종료 후 재발이 매우 빨리 발생한 점도 이 환자의 호지킨병이 독성이 강하고 급성으로 진행되는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최초 폐렴에 대한 6사단의 발병 경위서를 보면 “2006년 6월14일 사단 창설 기념 대대 체육대회 행사 준비 시 우천 중 작업으로 인해 6월14일 취침 중 심한 기침을 하여 6월15일 사단 의무대 진료 후 폐렴으로 추정되어 일동병원에서 입실을 요한다”고 되어 있다.
비호지킨 림프종은 빠른 조처로 완치가 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김 일병은 군 병원 후송 뒤 폐렴약만 복용했다. 일동병원엔 CT도 없었다. 더 큰 병원으로 가 CT 촬영을 하기까지 열흘을 기다렸다. 가족은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으나 군의관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병원을 옮겨야 할지조차 아버지 김씨 혼자 정했다. 이후에 “치료가 불충분했고 불친절했다며 병원장이 사과했다”고 김씨는 말한다. 고려대 병원에 입원하고서야 항암 치료가 시작된다. 한국혈액암협회는 “(림프종의) 공격형 타입은 매우 빠르게 진행하며 일부 환자에게서는 질환이 급속히 진행되어 신속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투병 가이드북)고 말한다.
2년 모은 600쪽 자료 vs “복무 1년 미만”
김씨는 지난해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에 글을 올렸다. 국가보훈처에 보훈 심사도 신청했다. 보상금 지급을 결정하는 군의 전공상심의와 별개로,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한 것이다.
하지만 보훈처도 “입대 전 지병으로 판단하여 비해당 의결한 ‘기 심의사항’을 번복할 사유를 찾을 수 없고, 군 복무 중 적절한 진단 치료를 받지 못해 비호지킨 림프종을 현저히 악화시켰다는 자료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비해당 처분한다”고 지난 8월 말 최종 통보한다.
특이한 건, ‘기 심의사항’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 가족이 처음 신청한 보훈 심사가 이미 재심이었다는 점이다. 보훈처는 앞서 2006년 11월 1차 보훈심사위를 열어 ‘공상군경 비해당’을 결정했던 것이다. 보훈처 담당자는 “(유가족의 신청이 없어도) 군 병원에서 통보가 온 뒤 규정에 따라 심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규정도 매끄럽지 않다. 국가유공자 예우법은 “소속기관장은 (보훈 지원이 가능한) 대상자에 해당된다고 인정되는 사실이 발생할 경우” 보훈처에 알리도록 한다. 군이 보훈처에 통보했다는 것은 김 일병을 공상으로 해석할 여지가 높다는 말이기도 한데, 군은 이미 비공상 처리를 한 상태였다. 군은 비공상으로 처리하면서도, 보훈처는 따로 공상군경에 해당되는지를 판단하라는 얘기다. 부처가 제각각의 기준으로 ‘보훈 행정’을 집행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훈처는 1차 심사결과를 통보해주지도 않았다. 김씨가 따지자 보훈처는 “행정 실수라며 사과했다”. 취재진에겐 “비해당 내용을 통보할 경우 민원인에게 불편만 초래할 수 있어 안내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불편이 유가족의 ‘충격’을 이르는진 알 수 없다.
김씨는 “전공상심사에서 군 복무 1년 미만이란 기준으로 비해당 처리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강하게 따진다. 가장 억울해하는 대목이다. 군에서 보상금 지급 여부나 규모를 결정할 때 군인연금법 등에 의거하는데, 이 법에선 “복무 1년 미만인 자로서 공무 외의 원인으로 질병에 걸리거나 또는 부상한 자”를 심신장애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
보훈처도 암 사망 군인의 경우, 아예 복무 1년 이상 경과 뒤 암이 발생해야만 공무 관련성을 인정(암 관련 보훈심사 기준)해왔다. 실제 김재민 일병의 1차 보훈심사 의결 내용은 “입대 후 4개월 만에 증상 발현된 점을 감안할 때… 입대 전 지병으로 판단되어 공상 요건 비해당 의결”이었다.
보훈처는 심사 기준을 올 6월 “복무 기간 제한 없이 인정”하는 것으로 개정했다. 보훈처 담당자는 “비의학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해당 전문의의 견해에 따라 보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개정 이후 이뤄진 김 일병의 보훈심사 재심의에서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군인연금법도 그대로다.
의병 전역 현황·보상 내역 등 ‘쉬쉬’1년 미만 군 복무자는 상해를 당하거나 숨져도 보상을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 말만 떠돌 뿐이다. 김씨는 “국방부의 한 인사가 매년 암 같은 질병으로 사병 50여 명이 숨진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공식 확인은 되지 않았다.
은 국방부에 의병 전역 현황, 복무 기간, 전공상 부결 사유, 보상 내역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군 인력사항에 대한 정보로서 보안성 검토를 한 뒤 결정하겠다”고 알려왔다. 육군본부 또한 의병 전역 규모와 공상 판정 유무에 대한 자료 요청에 “확인해줄 수 없다”거나 “시간이 걸린다”고 답해왔다.
김씨는 말한다. “돈 받으려고 하는 거 아닙니다. 아들의 명예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었다면 안 데려갔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기간 가족과 있었어도 억울할 텐데…. 명예를 찾고, 국립묘지에라도 눕히는 게 제 바람입니다.” 그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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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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