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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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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대학생 놀리는 근로장학금

매달 받는 근로장학금을 가계소득으로 잡겠다는 정부, 기초생활보장수급권 박탈 위기 대학생들 ‘눈물’
등록 2009-11-13 16:22 수정 2020-05-03 04:25

‘근로장학금’이 가난한 대학생들을 ‘놀리고’ 있다. 근로장학금은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이하 수급권자) 자녀 등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을 위한 국가보조 장학금이다. 교내외에서 일한 대가로 월급처럼 다달이 받는다. 2005년부터 전문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시행되다가 올해부터 4년제 대학으로 확대됐다. 그런데 이 장학금이 지난 10월부터 수급권자 대학생들에게 ‘불편한 장학금’이 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근로장학금도 근로소득”이라며 가계소득에 합산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금도 막막한데 앞으로가 더 막막해요.”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인 김서영(가명)씨가 두 손을 꼭 쥔채 눈물을 떨구었다. 근로장학금을 받지 못한 11월, 살길이 막막하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지금도 막막한데 앞으로가 더 막막해요.”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인 김서영(가명)씨가 두 손을 꼭 쥔채 눈물을 떨구었다. 근로장학금을 받지 못한 11월, 살길이 막막하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엄마 소득 100만원에 딸 장학금 더하면…

김서영(19·가명)씨는 지난 3월 서울의 한 사립대에 합격했지만 그의 부모는 합격 소식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가 합격한 사립대는 입학금만 450만원이다. 여기에 기숙사비 120만원이 더해진다. 김씨의 가족은 수급권자다. 대구 성서공단에서 부품 조립 일을 하는 어머니가 매달 벌어오는 돈은 100만원 가량. 뇌병변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고등학생 동생까지 4식구의 생계비 전부다. 한숨을 쉬는 어머니를 보며 김씨는 입학금을 달라 하지 못했다.

학자금 대출을 통해 간신히 입학금과 기숙사비를 냈다. ‘마이너스 570만원’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다행히 5월 수급권자에게 주는 국가장학금인 ‘미래로 장학금’ 220만원을 받았다. 학자금 대출부터 일부 상환했다. 이제 ‘마이너스 350만원’이다. 평균 학점이 ‘B+’ 이상이면 다음 학기에도 이 정도 학비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학점이 짜다’고 소문난 학교에 다니기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한데 생활비가 없다. 몇만원씩 회비를 내야 하는 모꼬지나 뒤풀이 행사는 안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책도 사야 하고 밥도 먹어야 했다. 그러다가 매달 월급처럼 나오는 근로장학금을 발견했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학교 안팎의 지정된 장소에서 주당 최대 20시간까지 일하고 매달 장학금을 받는 제도로, 1순위가 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이다. 수급권자인 김씨는 1순위로 근로장학금을 받게 됐다.

그는 학교와 산학협력 관계에 있는 회사에서 주당 15시간을 일한다. 문서 작성 등 단순 업무가 주다. 교내에서 일하면 시급 5천원, 교외는 9천원이다. 힘들어도 교외 근로를 선택하는 까닭이다. 한 달을 일하면 50여만원이 입금된다. 수업 시간표도 근로시간에 맞춰 짰다. 동아리 가입도,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미뤘다. ‘여대생’이 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자신을 위해 구매한 것은 1만원짜리 티셔츠 하나가 전부다. 그래도 근로장학금을 아껴 대구에 있는 남동생에게는 3만원짜리 청바지 하나를 사줬다.

하지만 중간고사가 끝난 10월23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학교 홈페이지에 ‘국가근로(기초생활보장수급자 필독)’란 공지사항이 떴다. “근로장학금을 받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의 경우, 국가근로를 통해 발생한 월 근로비가 소득으로 간주되어 수급권자 자격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교육과학기술부 및 한국장학재단에서 해결 방안을 내놓았으니 학생들의 의사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니가 버는 돈 100만원에 김씨가 받는 근로장학금 54만원을 더하면 4인 가족 최저생계비인 132만6609원을 초과하는 154만원이 된다. 이렇게 되면 김씨의 가족은 기초생활보장수급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근로장학금은 근로소득”이라 판명한 국세청의 공문.

“근로장학금은 근로소득”이라 판명한 국세청의 공문.

“월급 대신 학기당 한 번 지급” 교과부의 미봉책

근로장학금은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예산으로 운영된다. 올해는 전문대에 270억원, 4년제 대학에 930억원(추경예산 105억원 포함)을 편성했다. 여기에 각 대학이 교과부 배정 예산의 25%를 대응 투입한다. 그런데 지난해 말 기초생활보장수급제도 담당 부서인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보건복지부)가 교과부에 공문을 보냈다. “근로장학금이 가계소득으로 잡혀 수급권을 박탈당하는 사례가 있다는 민원이 있으니 근로장학금이 근로소득인지 여부를 국세청에 확인해보라”는 내용이었다.

연초에 교과부와 보건복지부의 담당자가 모두 바뀌면서 근로장학금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그 사이 대학 신입생들이 입학했고 4년제 대학에 근로장학금제도가 확대 시행됐다. 각 학교에서 선발된 근로장학생들은 5월부터 교내외 근로를 시작했다. 교과부가 국세청에 정식 질의를 넣은 것은 8월 말이다. 9월8일 국세청이 “근로장학금은 근로소득”이라고 판명한 공문을 교과부로 보냈다. 국세청의 결론에 보건복지부는 “근로장학금이 근로소득이라면 가계소득에 합산하겠다”고 나섰다.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최신광 사무관은 “근로소득에서 대학생에게만 특혜를 줄 순 없다”며 “근로장학금 이외에도 수급권자에게 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이 24가지나 된다”고 말했다.

수급권자 대학생들이 받는 근로장학금은 한 달 기준 최대 70여만원이다. 교과부는 지난 1학기에 학생 1인당 한 달 평균 29만7천원씩 지급됐다고 밝혔다. 이 액수를 부모 등 다른 가족의 소득과 합하면 기초생활보장수급 자격 기준인 최저생계비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수급 자격의 경계에 선 학생들은 근로장학금과 수급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가난한 학생을 위해 도입했다는 근로장학금이 결국 가장 가난한 학생인 수급권자를 피해가게 된 모양새다.

이에 10월20일 교과부가 각 대학에 공문을 내려보냈다. ‘해결 방안’이었다. 교과부는 공문에서 “근로장학금이 ‘소득’ 개념이 아니라 ‘장학금’ 개념으로 지급되려면 학기 단위로 지급되어야 한다”며 “근로장학금을 월 지급에서 학기 단위 지급으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학기 단위 지급 동의서’를 제출하면 올 10월부터 내년 2월까지의 근로장학금을 내년 3월에 받게 된다. 교과부 공문은 “근로장학금을 학기 단위로 지급받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종전대로 매월 지급받을 경우에는 수급권자 자격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명토 박았다.

2009년 1학기에 전국 199개 4년제 대학을 대상으로 총 2만6121명이 근로장학금을 받았다. 이 중 수급권자는 전체 지원 학생의 19%에 해당하는 5천 명이다. 한 사립대 학생지원과 근로장학금 담당자는 “수급권자 학생들에게 매달 이 돈이 얼마나 절실한지 잘 알기에 마음이 착잡하다”며 “정부는 수급권자에게 최악의 선택을 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영씨는 지난 10월26일 ‘동의서 제출 마감은 10월29일’이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김씨는 마감일에 맞춰 동의서를 제출했다. 매달 1일이 ‘월급날’이지만 11월이 되어도 근로장학금은 들어오지 않았다. 살길이 막막했다. 갑작스럽게 ‘월급’을 못 받게 된 학생들에겐 당장 11월의 생활비가 없다.

더욱 황당한 것은 학기 단위 지급이란 대책조차 설익은 것이란 점이다. 교과부 학생학부모지원과 윤경숙 사무관은 “학기 단위로 지급된다고 해도 근로소득으로 잡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며 “당장 수급권자들이 입게 될 불이익은 막아보고자 내놓은 방안이었다”고 말했다.

갈팡질팡 대책에 학생들 “살길 막막”

이 이 문제를 취재하자 교과부와 보건복지부는 “다시 논의를 해보겠다”고 밝혔다. 교과부 윤경숙 사무관은 “(‘학교 단위 지급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해) 일단 이번 학기가 끝나는 12월까지만이라도 각 지자체가 근로장학금을 이유로 기초생활보장수급권을 박탈하는 일이 없도록 공문을 내려보내기로 보건복지부와 협의했다”고 알려왔다. 이미 ‘학기 단위 지급 동의서’를 제출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다시 ‘월 단위 지급’을 해주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근본적인 대책은 없다.

보건복지부는 ‘2010년 예산 요구안’에서 내년에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자를 올해보다 7천 명 줄일 계획을 밝혔다. 올해 163만2천 명이던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자가 내년에 162만5천 명으로 줄게 된다. 수급권자 대학생에게 연 450만원씩 무상 지급되던 ‘미래로 장학금’도 내년 신입생부터는 적용되지 않는다.

김씨는 “지금도 막막한데 앞으로가 더 막막하다”고 말했다. 근로장학금 수령 방식에서조차 갈팡질팡하며 수급권자를 ‘놀리는’ 세상에서 가난한 대학생들은 설 자리가 없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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