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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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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금감원장 두 마리 토끼 다 놓치네

가계부채 8월까지 가파르게 올라 … 수습 안 되는 이복현의 ‘입’ 에 은행권 우왕좌왕, 실수요자 피해 커져
등록 2024-09-27 22:18 수정 2024-10-01 08:23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024년 9월2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중소기업 기후위기 대응 등의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최근 석 달 동안 이 원장의 가계부채 관련 오락가락 말들에 정책 혼선 논란이 이어졌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024년 9월2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중소기업 기후위기 대응 등의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최근 석 달 동안 이 원장의 가계부채 관련 오락가락 말들에 정책 혼선 논란이 이어졌다. 연합뉴스


2024년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동안 금융권은 ‘가계부채와의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섣부른 말 몇 마디에 은행권 대출 정책이 요동치면서 실수요자들의 혼란은 여전한 상태다.

금융당국이 은행권 가계대출을 압박하고 나선 건 2024년 7월 초다. 이준수 당시 금감원 부원장은 17개 국내은행 부행장을 불러 모아 “무리하게 대출을 확대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달라”고 말했다. 각 은행이 설정한 연간 목표치에 맞게 돈을 빌려주라며 가계대출 억제를 주문한 것이다. 금융권 가계부채 증가폭은 △3월 4조9천억원 △5월 5조3천억원 △6월 4조2천억원으로 급등세가 이어졌다. 금감원은 은행권 가계대출 관리 실태를 살펴보는 현장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예대금리차 확대, 은행만 배부르고

금융당국이 압박해오자, 5대 은행(케이비(KB)국민·신한·하나·우리·엔에이치(NH)농협)은 7~8월 사이 대출금리를 20차례 이상 높였다. 인위적으로 가산금리를 올려 금융당국의 주문에 맞춘 것이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시장금리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은행권이 가계대출 금리를 올리게 된 배경이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18일(현지시각) 단행한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이전부터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시장금리가 하락하고 있었다. 은행이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이 적어진다는 의미다. 예금금리도 이에 따라 하락했다. 환경이 이런데 대출금리를 인위적으로 올려야 하니, 결과적으로 예대금리차가 확대됐다. 예대금리차는 대출금리에서 저축성 수신금리(예금 등)를 뺀 값으로, 확대될수록 은행의 이자수익이 늘어난다. 그러자 그간 은행권 ‘이자 장사’를 비판하던 정부와 금융당국이 오히려 은행 배를 불려준다는 비판이 나왔다.

은행권이 대출금리를 줄지어 인상했음에도 가계부채 증가세는 오히려 가팔라졌다.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폭은 7월 5조2천억원, 8월 9조8천억원으로 나타났다.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급증을 자초했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정부는 당초 7월1일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대출 한도를 줄이는 2단계 스트레스 디에스알(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시행할 예정이었다. 디에스알은 대출자가 가진 전체 대출의 연간 원리금상환액을 소득으로 나눠 산출하는 지표로, 대출자의 상환능력 대비 원리금 상환부담을 나타낸다. 스트레스 디에스알 제도는 디에스알 산정시 스트레스 금리(잠재적 금리 인상폭)를 적용해 대출한도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시행을 일주일 앞둔 6월25일 금융위원회는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2단계 스트레스 디에스알 적용을 두 달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 조처로 대출 막차 수요가 몰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자 장사’에다 ‘오락가락 정책’ 비판까지 나오자 이복현 원장이 다시 나섰다. 이 원장은 8월25일 한국방송(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은행권의 금리 인상은 잘못”이라며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 원장은 “금리를 올리면 쉬우니까, 은행 입장에서는 돈을 많이 벌고 (대출) 수요를 누르는 측면이 있다”며 “최근 예대금리차가 늘어나면서 국민이 보기에 은행은 돈을 많이 벌고 국민은 대출받기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은행이 자율적으로 가계부채 관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은행에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주택 실수요자 피해에 다시 말 바꾸기

은행권은 이 원장의 발언 다음날부터 곧바로 반응했다. 5대 은행은 가계빚을 조이기 위한 갖가지 대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기간을 4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해 대출 한도를 줄였다. 주담대에서 모기지신용보험(MCI)·모기지신용보증(MCG) 적용을 제한하는 방법도 썼다. 대출자의 대출 한도 산정시 서울보증보험 등 보증기관이 소액임차보증금을 담보해 대출 한도를 확대해주는 상품인데, 이를 중단하면 서울시 기준 5500만원가량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주담대 거치기간을 폐지해 대출 문턱을 더 높이고, 마이너스 통장 한도도 줄였다.

갑작스러운 대출 규제에 이번에는 소비자들이 피해를 봤다. 몇 달 뒤 주담대를 받을 생각으로 미리 은행에서 상담하고 자금 조달 계획을 세웠는데, 며칠 새 대출 한도가 감소하는 것뿐 아니라 대출 가능 여부마저 달라지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출 규제로 한도가 2천만원 줄어든 ㄱ씨는 “퇴직금을 미리 정산받아 마이너스 통장을 정리하고 자동차 대출을 갚아 한도를 늘렸다”고 했다. 30~40년 분할 상환이 되는 주담대와 달리 나머지 대출들은 장기 분할 상환이 되지 않아 디에스알 계산시 불리하기 때문이다. ㄱ씨는 “잔금을 치르려면 다른 곳에서 추가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주택 실수요자마저 피해를 보게 되자 “관치 금융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이복현 원장은 실수요자들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나섰다. 이 원장은 9월4일 “대출 정책이 갑작스럽게, 예측 못하게 바뀌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투기 목적이 아닌 경우가 있을 텐데 기계적이고 일률적으로 대출을 금지해선 안 된다. 가계대출 관리 추세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 주지 않는 쪽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틀 뒤 교통정리에 나선 건 김병환 금융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고객을 가장 잘 아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대출을 관리해야 한다”며 ‘강력한 개입’을 시사해온 이 원장의 발언을 뒤집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김 위원장과 같은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되면서 은행권은 ‘가계대출 억제’에다 ‘실수요자 보호’라는 과제까지 안게 됐다. 은행장들은 “선의의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히며 기존에 발표했던 대출 규제에다가 각종 예외 규정을 만들었다. 애초 수도권 주담대·전세대출 대상을 무주택자로 한정하기로 했다가 일부 1주택자에 한해 예외를 두는 식이다. 수도권에 주택을 구입하는 1주택 결혼예정자에게는 주담대를 내주거나, △직장 변경 △자녀 교육 △질병 치료 △부모 봉양 △이혼 등에 해당하는 1주택자에게는 전세대출을 해주는 방식 등으로 문턱을 일부 낮췄다. 그러자 같은 조건이어도 은행마다 대출 여부가 다른 상황이 생겨, 소비자들의 혼란은 여전한 상태다.

미국 ‘빅컷’에도 인하 불투명한 한국 기준금리

은행권의 각종 가계대출 규제 정책과 2024년 9월1일부터 시행된 2단계 스트레스 디에스알, 추석 연휴 등의 영향으로 이달 들어 주담대 증가세는 둔화하고 있다. 추세가 지속되면 2024년 9월 주담대 증가폭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8월의 절반 수준인 약 4조4천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빅컷’을 단행한 이후 글로벌 금리 인하 흐름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지만, 가계부채 문제를 잡지 못한 상태라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시기는 불투명하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권이 최대한 정교하게 가계대출 관리방안을 낸다 하더라도 한도 부족, 월 부담 증가, 제각각 규제 등으로 대출이 필요한 서민들이 피해를 보는 건 막을 수 없어 보인다. 집값 급등으로 가계대출 문제가 불거졌는데 애초에 실수요자 보호와 가계대출 관리가 함께 갈 수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주빈 한겨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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