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영월은 무슨… 동네 사람들 절반을 폐병쟁이로 딱지를 붙여놓고는.”
지난 10월13일 강원 영월군 서면 쌍용양회 영월공장 들머리 게이트볼장에서 만난 노인들은 역정부터 냈다. 노인들은 지난 6월15일 국립환경과학원이 발표한 ‘영월 시멘트공장 주변 지역 주민 건강조사’에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유병률이 47.1%로 나온 데 대한 불신과 이를 여과 없이 보도한 언론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은 세계적으로 네 번째 사망 원인으로 꼽히는 질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45살 이상 유병률이 17.2%(2005년 기준)를 넘지만, 병의 진전이 늦고 노령화와 함께 진행돼 발견도 어렵고 완치도 어려운 질병이다. 주민 절반 정도가 유소견자라는 국립환경과학원의 발표는 벌써 수년째 ‘쓰레기 시멘트’ 논란으로 불안해하는 지역 주민들을 동요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2005년 현대시멘트 소성로가 정지되면서 발생한 분진으로 지역이 피해를 입으면서 시작된 ‘쓰레기 시멘트’ 논란은 지금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역의 동요가 심해지자 쌍용양회는 유소견자로 분류된 영월공장 주변 주민 219명 중 193명을 대상으로 재검진을 했다. 그런데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9월8~17일 실시한 재검진 결과는 국립환경과학원의 발표와는 딴판이었다. 만성폐쇄성폐질환 유소견자로 확인된 사람은 재검진에 참여한 193명 중 43명. 이 수치에 국립환경과학원의 추정 방법을 적용하면 유병률은 10% 수준으로, 국립환경과학원이 발표한 47.1%는 물론 전국 읍·면 단위 평균 유병률 21.9%(질병관리본부 2007년 국민건강영양조사)보다도 오히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쌍용양회가 서둘러 재검진을 하게 된 데는 노동조합의 요구도 한몫했다. “시멘트 산업의 특성상 만성폐쇄성폐질환은 노조에서도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들은 매년 정기검진을 받고 2년마다 정밀 종합진단을 받는데, 유소견자는 10%를 넘지 않습니다. 그것도 특별한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경증이고요.” 쌍용리에서 태어나 30년을 쌍용양회 현장에서 근무한 박종주(51) 한국노총 강원 영평정지부 의장은 회사에 직원들을 대상으로 재검진을 해보자고 요구했다. 대상은 유소견자 판정을 받은 직원과 그 가족 25명. 연세대 원주기독병원에서 실시한 재검진에서 20명의 직원이 정상 판정을 받았다. 국립환경과학원의 발표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기에 충분한 수치였다.
애초 검진 과정이 부실했다는 지적도 지역 주민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적어도 3회 이상 측정해 가장 좋은 결과를 기준으로 해야 하는데, 하루 100명이 넘는 인원을 측정하다 보니 1회로 끝낸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재검진을 담당한 강북삼성병원은 두 병원의 검진 결과가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만성폐쇄성폐질환 진단을 위해 실시하는 폐기능 검사는 처음 하는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고, 검사가 반복될수록 학습효과와 검진 환경의 차이 등으로 결과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2007년 1차 조사에 이은 두 번째 조사다. 2005년 ‘쓰레기 시멘트’ 논란으로 지역에서 중금속 오염 등 환경문제를 둘러싼 민원이 끊이지 않자 강원도가 2006년 국립환경과학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2007년 9~12월 실시한 1차 조사에서는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제기해온 의혹과 달리 “중금속으로 인한 주민들의 임상적 건강 피해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번 2차 조사는 1차 조사 때 설문조사에서 높게 나타난 ‘호흡기 및 알레르기 질환 호소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2차 조사에서 초등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한 알레르기 반응 및 혈액 검사에서는 “타 지역과 비교해 오히려 수치가 낮거나 특이한 건강상의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심쩍은 유병률 계산법그럼에도 유독 만성폐쇄성폐질환에 집착한 언론 보도가 나오게 된 것은 왜일까?
국립환경과학원 자료에서 유병률은 범위가 14.8~47.1%로 넓다. 인하대병원의 조사에서 유효조사자는 799명. 이 중 379명이 유소견자 판정을 받았다. 이 숫자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유병률이 달라지는 것이다. 유효조사에 참가하지 않은 주민, 조사에는 참가했으나 유효조사자 수에 포함되지 않은 주민 등이 모두 정상이라고 가정할 때 유병률은 14.8%로 전국 평균보다 낮다. 가장 높은 수치인 47.1%는 유효조사자 중 유소견자 비율을 지역 전체 인구에 똑같이 대입해 얻은 수치다. 유효조사는 ‘질환 호소자 및 조사 참여 희망자’를 대상으로 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병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질병 검사를 해놓고 그 결과를 건강하다고 생각해 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대입해 얻은 수치를 발표한 셈이다.
주무부서인 환경부는 두 병원의 결과가 크게 차이나는 점에 대해 원인 규명을 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주민 건강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1500여 명의 주민들에 대해서도 11월부터 검진을 해 종합적인 결과를 내놓고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한다.
만성폐쇄성폐질환 유병률 수치가 높게 나오면서 시멘트 공장 인근 지역 주민들의 건강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 주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지역민들의 동요는 분노를 향해 흐르고 있다. 건강 문제를 넘어선 생존의 문제가 다급하기 때문이다. 쌍용양회 영월공장의 근무자는 협력사를 포함해도 350명이 넘지 않는다. 전성기 때 2천여 명에 이르던 근무자에 맞춰 확대된 지역경제를 지탱하기란 불가능하다.
널리 알려진 청정 영월의 이미지를 배경 삼은 친환경농산물 재배, 관광객 유치 등의 자구책 조차도 이번 발표로 오염지역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돼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정부가 특별법 제정 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려고 유병률을 부풀린 게 아니냐”는 의혹으로 확산되고 있다.
“쌍용리 집 한 채 값이 200만~300만원 해요. 괜찮은 집도 1천만원대고. 누가 이사를 와야지. 여기는 사람이 살 수가 없어요.” 김원태(67) 서면·쌍용주민공동대책협의회 공동협의회장은 수년째 요구해온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특별법 제정 등과 같은 근원적 처방이 지역을 살리는 길이라 말한다. 인근 영월군 일부 지역, 정선군, 태백시 등이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으로 수혜를 받는 데 비해 똑같은 광산 지역인 서면은 소외되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지역경제 황폐화에 주민들 한숨만국립환경과학원의 유병률 발표 뒤 열린 주민궐기대회에서 주민들은 정부에 특별법 제정, 건강특구 지정, 치료 및 보상 대책, 주변 주민 이주 대책, 폐기물 소각 전면 중지, 피해 보상 등 6가지를 요구했다. 쓸 데 없는 논란보다는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1962년 문을 연 쌍용양회 공장의 석회석 광산은 2~3년간 사용할 수 있는 매장량만을 남겨두고 있다. 광산은 새로운 광구로 이전하게 될 테지만 석회석을 파낸 흔적은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이 자리에 지역경제에 보탬이 될 새로운 산업이 들어오기를 희망한다. 서면에도 동강 못지않은 서강이 흐른다.
영월=글·사진 윤승일 기획위원 nagne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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