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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연재, 새롭고 두려워라

YES24 문학캠프에 온 작가 공지영·박현욱·김선우·백영옥에게 ‘인터넷 소설 연재 경험’을 묻다
등록 2009-09-17 10:58 수정 2020-05-03 04:25

황석영씨의 , 김선우씨의 , 김훈씨의 , 신경숙씨의 , 정도상씨의 …. 인터넷을 통해 독자를 만나고 있는 소설들이다.

문학캠프에서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작가들. 왼쪽부터 소설가 백영옥·김선우·박현욱씨, 문학평론가 박진씨.

문학캠프에서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작가들. 왼쪽부터 소설가 백영옥·김선우·박현욱씨, 문학평론가 박진씨.

, 조회수·베스트셀러를 동시에 잡다

인터넷서점 YES24가 주최한 2009년 문학캠프에서 시인으로서 소설 쓰기를 병행하는 김선우씨는 문학의 위기를 묻는 질문에 오히려 “문학이 부흥기를 맞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최근처럼 중견작가들이 앞다퉈 동시에 작품을 연재하는 현상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소설과 디지털의 만남은 PC통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른바 순수소설의 인터넷 연재는 2007년 박범신씨의 가 시작이다. 는 102회 연재를 통해 100만 명 이상의 누적 방문객을 기록하면서 본격문학이 인터넷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후 황석영씨는 을 포털에 연재해 200만 명 이상의 독자를 확보하면서 인터넷 연재소설의 가능성을 문단에 확신시켰고, 최근 공지영씨의 는 조회 수 110만 이상이라는 기록과 종이책의 베스트셀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소설의 인터넷 연재를 트렌드화하는 데 기여했다.

무엇이 인터넷 연재소설의 성공을 가능케 하는 힘이고 그 영향은 어떤 것일까? 인터넷 연재를 경험했거나 진행 중인, 혹은 소설과 다른 매체의 융합을 경험한 공지영·박현욱·김선우·백영옥 4명의 작가가 문학캠프에서 200여 명의 독자들 앞에서 나눈 이야기는 그 궁금증을 풀어가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인터넷 연재를 경험한 작가들은 독자와의 소통이 새로우면서도 두렵다고 말한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은 연재 중인 작품에도 독자의 개입을 용이하게 한다. “나는 댓글과 코멘트를 통해 독자들과 직접 소통을 했다. 일종의 피드백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의 키와 체중에 대해 명시했을 때 한 누리꾼이 이러한 경우 개그맨 이영자씨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판단하면 된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백영옥씨의 경험이다.

작품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의 소통은 작가의 의도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주게 마련이지만, 아직은 댓글이 격려 수준에 머물러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라는 게 대부분의 평가다. 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초고를 미리 완성하고 글쓰기를 이어가거나 댓글을 보지 않는 등 장치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러나 댓글이나 작가의 답글은 다른 독자들에게 동시에 읽히면서 앞으로 전개될 스토리를 노출시켜 작품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등 우연찮은 피해를 낳기도 한다.

인터넷 연재를 경험한 작가들은 대부분 독자와의 소통이 새로웠다고 말한다. 소통은 서로에게 다가가서 교감을 나누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고유한 문학적 창작력이 훼손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은 인터넷 연재가 대중성이라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장치다.

2009년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로 선정된 공지영씨는 <도가니> 연재를 통해 인터넷 소설 연재를 트렌드화했다.

2009년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로 선정된 공지영씨는 <도가니> 연재를 통해 인터넷 소설 연재를 트렌드화했다.

두 번째 변화는 인터넷 연재가 단행본 출간의 중요한 전 단계로 자리잡아간다는 것이다. 1980년대 소설은 신문 연재를 통해 독자와 먼저 만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인터넷 공간은 신문 연재를 대체하는 새 연재 공간으로 등장하고 있다. 30만 부 가까이 팔린 를 비롯해 연재 뒤 출간된 여러 작품이 베스트셀러로 성공했다.

인터넷 연재는 계약하고도 미적거리며 작품을 진행하지 못하는 작가들에게 채찍이 된다. 계약금을 받고는 독촉 전화만 피하면 되던 시절은 이제 갔다.

인터넷 연재는 ‘매일 전면 광고’ 효과

한편에선 출판사가 작품 홍보만을 목적으로 인터넷 연재를 진행한다는 비판도 있다. 인터넷 연재가 네티즌을 상대로 ‘매일매일 전면 광고 때리는 효과’를 지니기 때문이다. 한 문학평론가는 인터넷 연재와 연결된 ‘상업주의’를 경계하기도 한다. “포털·인터넷서점에 연재를 하면서 출판사가 연재료를 부담한다. 출판이 상업적인 된다. 본전을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인터넷 연재는 문학과 인터넷의 동행을 알리는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2001년 시도됐던 하이퍼텍스트 소설 은 그야말로 실험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잊혀졌다. 문학캠프 자리에서 김선우씨가 던진 “댓글에서 일종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성의를 갖고 개입하는 독자들과 작가의 작업이 함께 나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새로운 문학의 형식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말에서 소통을 앞세운 인터넷 연재가 가져올 소설의 변화 지점을 점쳐볼 수 있다.

‘한국의 대표작가’ 행사의 하나로 열린 이번 문학캠프도 ‘하이퍼 문학 시대’를 진단해보는 시험틀이 되었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인터넷서점 YES24 주최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 투표에 4만5984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추첨을 통해 뽑힌 네티즌들은 8월27~29일 2박3일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 평창 이효석 문학관, 동해안 일대와 춘천 김유정 문학관을 도는 문학캠프에 참여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포털 사이트에는 현장 소식을 담은 포스트가 수십 차례 올라왔다. 200여 명의 독자와 만난 자리가 수만, 수십만 명의 독자와 만나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2009년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로 선정된 공지영씨는 “대중과 호흡하는 것을 인터넷이 가능케 했다”며 “인터넷 공간은 또 다른 천국”이라는 말로 인터넷 연재의 가능성을 표현했다. 이제 인터넷과 네티즌을 빼놓고 소설을 이야기하기는 어렵게 됐다.

글·사진 윤승일 기획위원 nagne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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