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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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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바뀌어도 엄마는 농성장으로

비정규직 해고 철회 투쟁 150일 맞는 서수경 대학노조 명지대 지부장
“근본 대책 외면하는 언론과 정치인에 화나”
등록 2009-07-16 16:35 수정 2020-05-03 04:25

‘명지대 부당해고 철회 파업투쟁 142일째’.
7월8일 오후 5시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 인문캠퍼스 정문 앞엔 피켓 하나가 놓여 있었다. 비정규직 조교들이 일터에서 내몰린 지 100일을 넘어 어느새 150일이 훌쩍 다가섰다.

명지대에서 해고된 서수경 대학노조 명지대 지부장이 3월25일 경기 용인 자연캠퍼스에서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그의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7월8일 오후 명지대 캠퍼스에서 서수경 대학노조 지부장이 비정규직 부당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쓰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한겨레21> 김정효·정용일 기자

명지대에서 해고된 서수경 대학노조 명지대 지부장이 3월25일 경기 용인 자연캠퍼스에서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그의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7월8일 오후 명지대 캠퍼스에서 서수경 대학노조 지부장이 비정규직 부당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쓰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한겨레21> 김정효·정용일 기자

지난 3월24일 찾았던 명지대 캠퍼스엔 진달래가 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꽃샘바람도 불었다. 명지대는 지난해 7월 행정(일반)조교 40명을 해고한 데 이어, 올 3월1일에는 일반조교 95명도 해고했다. 명지대 행정조교들은 월 100만원을 받고 대학교 정규직 직원들과 똑같은 행정 업무를 했다. 하지만 학교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행정조교들을 해고한 것이다. 해고된 행정조교 가운데 19명은 2월24일부터 학생회관 앞에서 ‘천막농성’으로 학교와 맞서 싸우고 있다. 2월17일부터는 파업 투쟁도 벌였다.

부당해고 결정 받았지만 대학 쪽 항소

은 이들을 비롯한 ‘30대 여성’이 비정규직 해고의 칼바람에 가장 연약하게 노출돼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754호 표지이야기 ‘골라서 잘린다, 30대 여성 비정규직’)

비정규직법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7월 다시 찾은 캠퍼스는 푸름으로 가득 찼다. 계절은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학생회관 앞 천막농성장은 그대로였다. 더위 때문에 바람이 통할 수 있게 천막의 천 일부가 올라가 있는 게 달라진 점이었다.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지만, 여름 땡볕 아래 천막 안은 후끈했다. 한 노조원이 “더위와의 투쟁”이라고 할 만큼 그들은 더위와도 맞서 싸우고 있었다.

4개월 만에 만난 서수경(38) 대학노조 명지대 지부장의 옷차림도 털잠바와 투쟁 조끼에서 반팔로 바뀌어 있었다. “투쟁에 들어갈 때 우리가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일 싼 것으로 해서 2천원짜리 투쟁 조끼를 맞춰 입었는데, 겨울엔 따뜻했는데 여름에 입고 있으면 너무 더워요.”

에 기사가 난 지 얼마 안 된 4월22일 조교들은 수원지방노동위원회 민원실에서 저녁 8시까지 부당해고 구제신청 결과를 노심초사 기다렸다. 처음에는 신청을 낸 조교 19명 모두 부당해고 결정을 받을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나돌았다. 모두들 얼싸안고 기뻐했다. 다 이긴 거나 다름없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15명에 대해서만 부당해고라고 결정했다. 4명은 자격 조건 미비로 부당해고 결정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중앙노동위원회에 항소하면 이들 4명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항소는 명지대가 더 빨랐다. 명지대는 곧바로 중앙노동위원회에 항소했다. 조교들의 지난한 복직 투쟁이 연장된 것이다.

조교들은 그동안 매주 화·목요일 밤 서울 동부이촌동 온누리교회 바로 앞 신동아아파트에서 촛불시위를 벌였다. 명지대 총장 집 앞이었다. 처음에는 경찰이 집회 현장에 나와 피케팅도 안 되고 촛불문화제도 안 된다며 계속 지켜봤다. 하지만 조교들이 정말 말 한마디 안 하고 촛불만 들고 침묵시위를 하자, 요즘엔 나와 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서수경 지부장은 “조교들이 어렵사리 총장을 만나면 총장은 ‘(비정규직법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행정조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학교도 있고 무기계약직으로 한 학교도 있어요.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을 계속 쓰기 위한 핑곗거리예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학교 쪽은 비정규직을 뽑으면서 ‘꼼수’도 쓰고 있다. 행정조교를 ‘행정보조원’으로 이름을 바꿔 2년짜리 비정규직으로 뽑았는데, 막상 채용이 잘 안 됐다. 결국 학교 쪽은 ‘계약직원’으로 이름을 바꿔 비정규직 조교를 채용하고 있다. 서 지부장은 “계약직원으로 이름을 바꾼 이유가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정규직이 될 수 있겠다’는 허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 같다”고 말했다.

4월29일 보궐선거와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정치권은 소용돌이쳤다. 아무도 비정규직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엄마랑 자고 싶다는 10살 꼬맹이…”

서 지부장이 학교에 갈 때마다 “엄마 단결하러 가?”라고 말하며 천막농성장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1박2일’처럼 자고 싶다고 했던 10살짜리 꼬맹이 아들은 어떻게 됐을까? “100일쯤 됐나? 아들내미가 ‘이젠 학교 안 다니면 안 돼?’라고 말하데요. 내가 매일 이거(복직투쟁) 하느라 늦게 들어오고 아들하고 못 놀아주니, 어린 게 엄마랑 있고 싶어 그런 것 같았어요. ‘엄마가 학교 가야, 수현이가 좋아하는 자장면 사주지’ 했더니 씽긋 웃데요.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서 지부장의 눈에 눈물이 살짝 비쳤다.

그래도 아들은 서 지부장의 든든한 후원자다. “최근에 사춘기 중학생인 조카가 ‘고모는 투쟁 조끼 입고 다니는 거 창피하지 않냐’고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아들이 ‘엄마는 자랑스러워해’ 하고 말하데요.”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서 지부장의 인터넷 카페에 열심히 댓글을 달아주며 응원을 해주고 있다.

왜 이렇게 장기간 투쟁을 하는지 물었다. 서 지부장은 “학교가 너무 거지같이 잘해주니까”라고 운을 뗐다. “학교가 ‘처음에 그런 식으로 해고를 한 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고, 서로의 오해가 있었다’ 이런 말까지는 해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교섭해보니 학교는 비정규직 직원을 사람 취급조차 안 해요. 내가 나온 학교지만 왜 계속 이런 식으로 사람 취급을 안 하는 건지. 투쟁을 그만두지 말라고 학교에서 계속 채찍질을 해주시는 걸 어떡해요.”

시간은 흘러만 갔다. 노동부와 보수 언론들은 7월 이후 약 2년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기간제 근로자가 70만~100만 명에 이르는 해고대란이 닥쳐올 것이라며 비정규직법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 고치겠다던 국회의원들에게 배신감

서 지부장은 언론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신문과 방송에서 우리를 취재하러 오겠대요. 그러면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인터뷰하고 싶잖아요. 그런데 막상 기자들은 ‘비정규직들이 이렇게 잘렸습니다. 비정규직의 슬픔, 비극입니다. 국회를 열어 비정규직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쓰거든요.” 국회를 열어봐야 근본적 대책은 도외시되고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정치인들을 보면 성질나요. 지난해 3월인가 국회의원들(환경노동위원회)이 장장 2시간 동안 우리 얘기를 듣고 갔어요. ‘비정규직 투쟁하는 분들을 위해 법을 제대로 고치겠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랬는데 우리 얘기는 하나도 안 하고 비정규직 고용 기간 제한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내던데요. 우리는 기간 연장을 말한 게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한 신분을 고쳐달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질기게 비폭력 준법 투쟁을 할 거예요. 총장 집 앞에서도 촛불시위 하면서 말 한마디도 안 했어요.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빨간 띠 묶고 꼭 뭔가를 부수는 게 투쟁은 아닐 거예요. 우리 학교에 피해 안 주면서 복직 투쟁은 계속할 거예요.”

“사회 분위기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 돈이 사는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사장이 언론에 나와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리해고밖에 없다고 말하잖아요. 그래놓고 사람 자르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잖아요. 하지만 아무도 그 사람을 비판하지 않잖아요. 대신에 ‘단결 못하는 노동자들이 병신이지’라고 손가락질 받잖아요. 이렇게 사회가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6월30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민주당)을 찾아 “비정규직법을 상정 안 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실업대란 책임져라”며 소리쳤고, 추 위원장은 “날치기 명분 축적하러 왔냐. 청와대에나 그렇게 보고해라”며 가시 돋친 설전을 벌였다.

지난봄, 그들도 서 지부장처럼 비정규직이었다. 그들은 꽃샘바람 부는 서울 세종로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앞거리에서 과 같은 오페라를 불렀다. 이 공연은 신문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서 다뤄졌다.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이었다. 단원들은 지난 1월8일 이소영 국립오페라단장한테서 구두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지금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단원들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불안한 성공이다.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 22명은 지난 6월 창단한 나라오페라합창단에 입단하기로 했다. 총 45명으로 꾸려진 나라오페라합창단은 노동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 일단 1년 동안 운영되지만 성과에 따라 최대 3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국립오페라합창단은 끝내 부활하지 못했다. 조남은 지부장은 “국립오페라합창단을 부활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점은 있지만,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투쟁은 접었다”고 말했다.

7월9일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 서울 도화동 서울서부종합고용지원센터. 정규직 디자이너로 일하다 지난 5월 해고된 최아무개(32)씨도 그곳에 있었다. 해고된 뒤 최씨가 지금까지 본 면접은 세 번이다. 모두 비정규직 자리였다. 최씨는 “인맥이나 연줄이 없으면 정규직 자리로 들어가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30대 여자가 일자리 구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인터넷에서 구인광고를 찾았다.

7월6일 서울서부종합고용지원센터엔 비정규직 실직자 상담 전용 창구가 개설됐다. 하지만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센터의 한 직원은 “고용지원센터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관계없이 일자리를 찾아주는데, 따로 창구를 만들어놓아 일손이 많이 달려요. 언론들이 비정규직 창구가 만들어졌다고 크게 보도해 더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해고된 사람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얻게 될 것 같은 기대감을 갖고 창구로 찾아왔다가 막상 일자리가 그리 많지 않아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담 창구 자체가 정부의 생색내기식 홍보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100만, 75만 비정규직 대란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 듯했다. 비정규직 실직자 상담 전용 창구를 찾는 사람들은 하루에 채 10명도 안 됐다.

7월1~3일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1222명으로 집계됐다. 노동부가 ‘7월 해고대란설’을 제기하며 한 달에 6만~8만명이 계약 만료돼 해고될 수 있다고 거듭 주장해 온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계약 해지 움직임엔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앞장섰다. 6월 말과 7월 초 한국토지공사가 145명을 계약 해지했다. 경기 지역 한 농협 유통센터도 비정규직 10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한국방송도 비정규직 6명을 계약 해지했고 대한주택공사도 31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한산한 비정규직 실직자 전용 상담 창구

다시 명지대 서수경 지부장. 그는 여름을 넘어 가을을 얘기했다. “해고되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요즘은 자연이 보여요. 지금 여름이잖아요. 너무 파릇파릇해 가을의 결실이 보이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미 은행나무엔 은행이 작게 맺혀 있어요. 비정규직 투쟁도 눈에 보이진 않지만 자연이 결실을 맺는 것처럼 영글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비정규직 직원들의 투쟁으로 뿌린 결실을 추수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끝까지 믿을 거예요.”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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