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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도 오는데 2011년 7월은 안 오겠소?

‘2년 기한’ 비정규직법 이제 와선 ‘4년 기한’ ‘2년 유예’ 논의 중…
‘철회’서 ‘사수’로 바뀐 민노당 “사용 사유 제한을”
등록 2009-06-19 19:11 수정 2020-05-03 04:25

2006년 12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3천 명은 집회를 끝낸 뒤, 국회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미 28개 중대 2800여 명을 동원해 경찰 버스로 차벽을 쌓은 상태였다. 이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경찰은 물대포와 소화기를 분사했고, 조합원들은 경찰 버스 위로 올라가 죽봉을 휘둘렀다. 조합원들이 국회에 가려는 이유는 사흘 전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법에 항의하는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민노당, 2년마다 실업대란 예견했건만

2006년 11월30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에서 발언대를 점거하며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 파견 근로자 보호법, 노동위원회법 등 비정규직 관련 3법의 표결 처리를 저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국회는 민주노동당의 반대를 뚫고 비정규직 관련 3법을 통과시켰다. 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2006년 11월30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에서 발언대를 점거하며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 파견 근로자 보호법, 노동위원회법 등 비정규직 관련 3법의 표결 처리를 저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국회는 민주노동당의 반대를 뚫고 비정규직 관련 3법을 통과시켰다. 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사흘 전인 11월30일 국회 본회의장. 권영길 의원 등 민주노동당 의원 9명은 발언대로 나가 서로 팔짱을 끼고 물러나지 않았다. 임채정 당시 국회의장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비정규직법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한 상태였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임채정 의장이 있는 단상 점거를 시도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의원들에 가로막혀 몸싸움만 하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의원들은 ‘비정규 악법 날치기 처리 규탄한다’는 펼침막을 들고 “열린우리당은 기득권에게만 열려 있다”고 소리쳤다. 이윽고 임채정 의장은 의사봉을 들어 ‘땅땅땅’ 내리쳤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주저앉았다. 2년 뒤 사회적 후폭풍을 몰고 온 비정규직법이 통과된 순간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날 비정규직법 통과 지지 성명을 냈다. “기업의 인력 운영을 심대하게 제약하는 등 비정규직 보호에만 치중했다”고 토를 달았지만 “수년간의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한 만큼 더 이상 이 문제로 노사 간 갈등과 대립이 지속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부도 이날 오후 3시에 환영 의견을 냈다. 노동부는 이 법안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첫 출발”로 “비정규직 근로자 차별 시정 등 양극화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고 과찬했다. 9명을 따돌리고 ‘날치기’ 처리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도 비슷한 취지로 법안 통과를 지지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아쉬운 대로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당시 비정규직법 통과에 결사 항전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이 법안이 2007년 7월 시행되면서부터 2년마다 대규모 실업사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안 무력화 투쟁까지도 선언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비정규직법 반대 논리를 정부와 경영계가 부르짖고 있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노동부의 말잔치 “고용 불안 최소화”

비정규직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그리고 ‘노동위원회법’을 말한다. 2007년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의 뼈대는 간단하다. 기간제와 파견 노동자 등 비정규직은 대부분 1~2년 단위로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맺고 일한다. 그런데 한 직장에서 일한 지 2년이 지난 기간제·파견 노동자는 ‘무기계약직’으로 본다는 것이다. 무기계약직은 계약 기간이 특정되지 않은 노동자로 기업에서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여러 노동조건에서 사실상 정규직과 비슷하다.

물론 사업주 처지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2년이 되기 전에 해당 노동자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여기서 2009년 7월 해고 대란설이 나오게 된다. 2009년 7월이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정규직법 제정을 주도했던 노동부가 태도를 바꾼 건, 지난해 새 정권이 들어서고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는 이명박 대통령 기조에 맞춰 보수 언론과 경제신문들이 비정규직법이 기업의 인건비를 상승시켜 국가경쟁력 약화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린다는 말이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의 입에서 나오더니, 급기야 11월 노동부도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연장한다고 공식화하기에 이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총도 잇달아 사용 기간 2년 제한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2년 전 민주노총의 논리를 빼닮았다. 올해 7월에 해고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상수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와 정종수 차관 등 노동부 관계자들이 지난 6월8일 당정회의를 열어 비정규직법 개정안 처리 방안 등을 협의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안상수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와 정종수 차관 등 노동부 관계자들이 지난 6월8일 당정회의를 열어 비정규직법 개정안 처리 방안 등을 협의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노동부는 지난 4월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 것이다. 현행 법률에서는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보지만, 노동부 개정안에서는 4년이 되어야 무기계약직으로 인정된다. 노동부는 법안 설명문에 “기간제 근로자가 2년을 넘지 못하고 고용관계가 종료되는 등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불안이 심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노동부 논리대로라면 해고 대란의 폭발 시점을 올해 7월에서 2011년 7월로 늦추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부가 제출한 개정안은 지난 4월 국회에서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도 되지 못했다. 제대로 시행하지도 않은 법을 고치려 한다는 반대 여론이 일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과 정책연대를 맺은 한나라당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7월 다가오자 다급해진 한나라당

그런데 한동안 잠잠하던 비정규직법을 두고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7월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6월11일 의원총회를 열어 비정규직법 사용 기간 2년 제한 조항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노동부 안처럼 사용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지는 안되, 7월 무기계약직 전환을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유예하자는 것이다. 어차피 최초 무기계약직 전환 시점이 2011년 7월로 늦춰진 점에서 같은 효과를 내지만, 적어도 한나라당으로선 일종의 ‘양보’ 카드를 던진 셈이다.

2년여 전 비정규직법 제정을 반대하며 국회 진격 투쟁을 벌였던 민주노총은 지금은 정부와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해 7월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비정규직법 ‘철회’에서 ‘사수’로 의견이 바뀐 것이다. 민주노총에는 비정규직법 사용 기간 유예는 그나마 있던 최소한의 비정규직 보호 조처마저도 없애는 시도로 비친다. 이승철 민주노총 대변인은 “현행 2년이든 4년으로 늘리든 언 발에 오줌 누기”라며 “해당 기간이 도래할 때마다 해고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비정규직법 개악에 반대하고 있지만, 원천적으로는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민주노총이 원하는 것은 비정규직의 기간 제한이 아닌 사용 사유 제한이다. 프랑스에서 쓰이는 이 방식은 비정규직을 쓸 수 있는 업종과 사유를 규정해 고용 단계에서부터 비정규직을 철저히 막는 것이다. 프랑스는 여기에 덧붙여 사용 기간을 9~24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그동안 기간제법과 파견제법을 폐지하고 근로기준법에서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안을 마련했다. 출산·육아 또는 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발생한 경우나 계절적 사업 또는 한시적인 사업인 경우에 고용되는 노동자의 근로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업무 특성상 필요한 직군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계약 기간에 목매인 노동자가 없어진다. 기업은 해고를 맘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민주노총으로선 이마저도 말을 꺼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워낙 수세적 국면인 탓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준비한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실 관계자는 “자칫 한나라당에 대화의 빌미를 줄까봐 감히 법안 발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만약 이 법안을 발의하면, ‘함께 논의하자’는 한나라당 전략에 휘말리게 될 우려에서다.

‘함께 논의하자’ 하면 어쩌나

6월 열리는 임시국회에서는 비정규직법을 두고 여야 간에 한판 격돌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년 만에 공수가 교대된 싸움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




70만 해고 대란의 진실
“법에 의한 실직 효과는 미미할 것”



비정규직법 개정론은 지난해 11월 정부에서 공식화됐다. 그리고 이른바 ‘7월 100만 명 해고 대란설’로 이어졌다. 비정규직법 시행 만 2년이 지난 2009년 7월부터 100만 명이 무기계약직(정규직) 의무 전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을 꺼리는 고용주에 의해 이들 대부분이 재계약 이전에 해고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지난 5월 예상 인원은 100만 명에서 70만 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2009년 3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에서 ‘2년 초과 한시적 근로자’가 70만 명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럼 7월이 되면 70만 명이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걸까? 기업은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려 해고를 감행하고 노동자들은 실직의 나락에 빠질까? 여기에는 눈속임이 존재한다. 현행 비정규직법은 2007년 7월 이후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에 대해서만 2년 뒤에 정규직 전환 의무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근로계약을 체결하면 전환 대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김아무개씨는 2005년 6월30일부터 한 회사에서 기간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김씨는 매년 6월30일에 계약을 갱신해 올해 7월1일이면 근속연수가 4년이 넘게 된다. 통계에 잡히는 ‘2년 초과 한시적 근로자’ 70만 명 중 한 사람이다. 그럼 김씨는 올해 7월 정규직 전환 대상일까? 그렇지 않다.
매년 계약을 반복했으므로 김씨의 3차 계약 시점은 2007년 6월30일이다. 하지만 이때는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비정규직법 시행일인 2007년 7월1일 이전에 근로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법 적용을 받는 건 이듬해 2008년 6월30일 4차 계약을 할 때부터다. 따라서 김씨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건 2년 뒤인 2010년 7월1일이다. 김씨는 해고 대란이 일어난다는 7월에 근속연수가 4년이 되지만, 정규직 전환도 해고의 위협도 없다.
또 한 가지 통계의 허점이 있다. 기간·파견제 노동자 직군에서는 이직이 잦다. 2009년 3월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기간제 노동자 92%의 근로계약 기간이 2년 이하다. 그만큼 이들은 사업장을 자주 옮겨다닌다. 김유선 노동사회연구소장은 “현행 비정규직법을 그대로 시행해도 총고용량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정부·여당이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 통계에는 매년 3월과 8월 통계청이 시행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가 쓰인다. 하지만 이 조사는 기간·파견제 노동자의 근로계약 체결시점이나 계약 기간, 실직률 등을 잡지 못한다. 각종 부가자료를 재분석해 추정할 뿐이다.
물론 오는 7월부터 사용 기간 2년이 만료됨에 따라 실직되는 사람은 일부 흐름으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의 규모인지는 따져볼 문제다. 김유선 소장은 경제활동인구조사 통계를 이용해 매달 실직 위기에 처하는 사람이 4만1천 명이라고 추산했다. 김 소장은 “원래 실직과 취직을 반복하는 흐름을 빼고 나면 비정규직법에 따른 실직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한겨레 사회정책팀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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