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물대포에 묘약이라도 탔던 것일까


지난해 ‘촛불 현장’에서 시위대와 의경으로 만나 아슬아슬하게 사랑을 키워온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
등록 2009-06-12 10:29 수정 2020-05-03 04:25

세상에 감춰야 할 사랑은 많지 않다. 패륜이라 할지라도, 사랑인 이상 이글대고 애절하여 숨기기도 버겁다. 26살 여성이 23살 남성과 사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자에게 얼굴은 물론 이름도 감춰달라 한다. 여성은 인터뷰를 마친 이튿날 새벽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인터뷰 내용이) 시위대 쪽에는 ‘경찰 편 든다’가 돼버리는 것이고, 경찰 쪽에는 ‘시위대 편 든다’가 돼버리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네요. 이 이야기가 기사가 되어 공개됐을 때, 그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괜한 밤잠을 설칠 것 같습니다.”

‘물대포에 묘약이라도 탔던 것일까’  / 사진  류우종 기자

‘물대포에 묘약이라도 탔던 것일까’ / 사진 류우종 기자

우연한 기회에 참여했다 ‘맹렬 촛불’로

♀의 이야기: 지난해 5월 초, 정수연(26·가명)은 막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이었다. 여고생들이 촉발했다는 ‘촛불’보다 제 발등의 불이 컸다. 어느 날 친구가 “촛불집회 나갔다가 경찰이 강경 진압을 하면서, 하이힐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밤새 쫓겨다녔다”고 전해왔다. 관련 기사를 뒤져보고, 5월24일 처음 광화문을 찾는다. “정부에 정말 화가 나서, 매일이다시피 날을 새우고 아침에 집에 갔다”는 수연은 꼬박꼬박 촛불 군중의 맨 앞에 선다.

♂의 이야기: 지난해 5월, 유민우(23·가명)는 수경이었다. 2년 전 9월에 입대했다. 군인으로 치면 대장보다 높다는 병장이다. 하지만 거드름도 게으름도 피울 겨를이 없었다. 지치고 지쳐 그는 동이 트기만을 기다린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줄고 이른 아침 최종 해산 작전이 시작될 즈음, 소대별로 돌아가며 겨우 부대에 들어가 씻는다. 그리고 이내 다시 현장 투입이다. 따로 정해진 취침 시간이 없다. 하루에 2~3시간 겨우 잔다.

♀의 이야기: 6월이 되자마자, 경찰은 거리로 나온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거대한 시위대의 이물에 선 수연도 물로 매타작을 당한다. 밤을 새우고 들어온 날 오후 다시 종로로 나섰다. 분을 삭일 수가 없다. 밤이 깊어지며, 경찰의 진압 수위가 비등한다. 수연이 포함된 한 무리가, 전경들에게 둘러싸인다. 드디어 연행까지 되나 싶다. 그런데, 묘하다. 심장 반은 전경부대에 박혀 떨고, 심장 반은 그 사이 한 의경에 꽂혀 떤다. 물대포에 약을 쳤나, 그리고 말해버린다. 아저씨, 정말 잘생기신 것 같아요.

♂의 이야기: 민우는 중대장을 따라다니는 전령이었다. 모든 무전이 다 들린다. 진압도, 시위도 갈수록 격해진다. 6월1일 한밤 “광화문에서 시청광장까지 시위대를 밀어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1차 진압이 시작된다. 이튿날 새벽으로 넘어가며 대치를 거듭하다 2차 진압이 시작된다. 시위대가 흩어진다. 1m 앞 포위된 한 여성, 몰골이 말이 아니다. 물대포를 대비해서인지, 모자에 패딩 조끼까지 입었다. 이쪽으로 갑자기 박꽃 같은 웃음을 던진다. 이 여자 미쳤나. 그런데 이내 휴대전화 번호를 주고받고 있다. 시민들이 “전쟁 중에 피어난 사랑”이라며 박수 치고 환호한다. 이 사람들 정체는 또 뭔가.

진압작전 도중 전화번호 교환 ‘문자질’

♀의 이야기: 민우가 처음 보내온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수고하셨습니다. 저희도 같은 마음이라는 거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였다. 이후 틈만 나면 문자를 주고받았다. 시위 도중, 전경차로 가 만나가도 했다. 20여 일 지나 여자는 좋아한다 속삭이고, 또 일주일 뒤 남자는 사귀자 외친다. 운명이 제아무리 우연을 가장할지언정, 휴대전화 소지가 가능한 ‘전령’이 아니었다면 연인의 인연은 불가능했다.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도 없었을 것이다. “남자친구를 지켜보며, 이건 경찰의 문제가 아닌 지휘부, 정부의 문제라는 걸 점차 깨달아갔습니다. 싸워야 할 대상이 틀린 거죠.”

♂의 이야기: 6월25일, 민우는 잊을 수 없다. 서울 복판은 남한 사람들끼리 치른 전쟁터였다. 진압 작전이 실패한다. 선두 중대를 받쳐주던 2개 중대와 분리되며 고립된다. 무장해제당하고, 진압복이 벗겨지고, 헬멧이 발에 밟혀 깨진다. 한 동료는 방패로 입이 찍혀 이빨 셋을 잃는다. 민우도 무전기를 빼앗기고 두들겨맞는다. 입대 뒤 처음으로 운다. “살려주세요.” 본대로 돌아와, 맨 먼저 수연에게 문자를 보낸다. 이튿날 새벽 2시45분, “내가 죽어라 소리 들어야 할 만큼 잘못한 거니?” 사흘 뒤, 동기는 진압중에 시위대와 인터넷 방송진에 소화기통을 던진다. 그곳에 수연이 있었다. 진심으로 사과했다. 폭력의 자장은 넓고 넓어 파고들면, 피해자도 가해자도 결국 다 내 아는 이다.

그들의 이야기: 민우가 다친 날 수연은 “하필 집에 있었다”. 구직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야 했다. 이튿날 달려가 운다. 버스 안에 있는 그를 찾아갔는데, 시민들이 몰려와 버스를 흔든다. 민우는 제대 뒤에도 한동안 신경안정제를 먹었다. 하지만 더 좋은 안정제는 따로 있다. 이달 말 둘은 사귄 지 1년이 된다.

민우는 정치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몇 대 대통령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수연과 처음 얘기할 때 ‘같은 마음’이었을지언정, 반감이 컸다. 바로 앞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물병을 던지고 부모님까지 욕하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고, 처한 상황따라 판단이 춤을 췄다. 그는 “살면서 욕을 제일 많은 먹은 게 지난해”라고 말한다.

그런 이들을 버스에 태워 결집시키는 지휘부가 있는 줄로만 알았다. 여자친구가 아니었다면, 그의 악몽은 길고 저주는 더 독했을 것이다. 뭇매를 당한 다음달 초, 특박을 나와 수연 손을 잡고 난생처음 ‘촛불’을 든다. 막상 제 손 위에 불을 켜보니, 시민들 모두 제 발로 걸어 나온다는 미지의 사실이 밝혀진다. 그는 “신기했다”고 말한다. “지휘관한테 걸렸으면 영창 갔겠죠”라면서.

지난 5월25일,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도 수연과 민우는 있었다. “연애 초라 서로의 의견과 처지를 제 것으로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랐다”는 이들. 민우는 이제 시민 쪽을, 수연은 전·의경을 챙긴다. 경찰은 이날 9개 중대를 대한문 일대에 배치했다. 시청으로 가는 길목은 애당초 차단됐다. 이날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차벽이 병풍처럼 아늑하다는 분들도 있다”고 발언한다. 민우는 “조문객뿐인데 무장 전경에 물대포차까지 대기시켜놓은 걸 보고 기겁했다”. 둘은 대한문에 배치된 부대 후임들도 만난다. “우리도 충격이 큰데, 의지와 무관하게 시민들을 막으면서 원망사는 게 혼란스럽고 속상하다”는 말들이 박힌다.

“시민들 자발적 참여였다니 신기해”

지난해 8월6일, 부시 전 미 대통령이 방한한 날 대학생 5명가량이 종로의 한 식당에 들어가자 식당 출입구를 1개 중대가 원천봉쇄한 일이 떠오른다. 그들 손엔 조그만 “부시 반대” 카드가 있었을 뿐이다. 그때도 지금도 막무가내다.

시민분향소를 철거한 게 논란이 되자,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일부 의경들이 작전 지역을 벗어나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대 후임이 민우에게 전화를 해왔다. “시킨 대로 한 거지, 청장이란 자가, 이제 와서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 있어요?” 민우가 의경 복무를 한 2년 동안, 두들겨맞은 것도, “살려달라” 울어본 것도, 점점 치졸해지는 진압 방식에 지휘관을 욕해본 것도 모두 이 정부 들어서다. 수연은 “민우가 사회인이 되어보니 정부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게 보이면서도, 막상 거리로 나가면 자기랑 처지가 같던 이들과 맞서야 하니까 아직까진 혼란스러워 하는 게 있다”고 말한다.

민우와 수연, 둘은 회사에 다닌다. ‘결혼’이란 단어가 둘 사이 고개를 내민다. 둘은 인터뷰 뒤 손을 잡고, 전경차가 가로막은 청계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