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언론계 새판 짜기’ 프로젝트가 언론인 인신 구속이라는 폭압적 형태 속에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이는 지난해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언론사 간부 성향 조사를 지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씨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앉은 뒤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은 여의도에서 축출됐다. 그리고 이번엔 회사에 의해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된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을 구속한 데 이어,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이춘근 문화방송 〈PD수첩〉 PD가 체포됐다. 함께 체포영장이 발부된 송일준·조능희·김보슬 PD와 김은희 메인 작가 등은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에서 ‘사수대’의 보호를 받고 있다. 검찰은 “취재 원본 테이프가 필요하다”며 심지어 이들의 집까지 송두리째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이춘근 문화방송 〈PD수첩〉 PD를 체포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3월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에 모인 노조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보도 당시 프로그램을 진행한 송일준 PD는 3월27일 과의 전화 통화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한 프로그램에 대해 다른 반박 수단이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진실을 가리는 게 아니라 물리력으로 조사하겠다면, 끝까지 부당한 수사에 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PD수첩〉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신문이나 방송 할 것 없이 모든 언론의 존립 기반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언론계에는 정부가 체포·구속과 같은 폭력적 방식을 동원해 방송계를 향해 강경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을 올해 중반 이후 펼쳐질 미디어 관련 일정과 연동해 보는 시각이 강하다. 현재 여야 합의에 따라 구성된 미디어발전위원회가 100일 동안의 활동을 마치고 나면 6월께 미디어 관련 법안의 국회 처리가 기다리고 있다. 이어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과 한국방송·EBS 이사들의 임기가 8~9월 잇따라 끝난다. 정부가 방송계의 격변을 앞두고 YTN 노조와 문화방송 〈PD수첩〉에 대한 손보기 수사를 통해 ‘대들면 다친다’는 학습효과를 미리 심어놓으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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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주기 효과가 이미 효력을 발휘하는 듯한 모습도 일부 보인다. 이병순 사장 체제가 공고해지고 있는 한국방송의 보도·시사 프로그램에 이어 문화방송 보도 또한 권력 비판에 미온적이라는 의견이 노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3월6일에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고교 1년 선배이자 서울대 정치학과 동기인 전영배 문화방송 기획조정실 통일방송협력팀장이 보도국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논리정연한 클로징 멘트로 말미를 장식해온 신경민 앵커가 4월 개편 때 마이크를 내려놓을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문화방송의 한 기자는 “이른바 정권의 방송 장악 3인방이라는 최시중 위원장·이동관 대변인·신재민 문화부 차관의 눈에 신 앵커가 얼마나 밉게 보였겠나”라며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방송과 YTN 노조를 비롯해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등은 정부 방침에 적극 대응할 태세여서 오는 4월이 정부의 ‘언론계 새판 짜기’ 프로젝트에서 중대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 또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군 촛불 정국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정부가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한편,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와 연예비리 사건 등의 틈 속에서 미디어법 강행 처리를 하기 위해 촛불이 켜지기 전에 여러 걸림돌들을 처리한다는 목적을 갖고 속도전을 하고 있다”며 “문화방송 압수수색 등 정부가 강한 드라이브를 걸 경우를 대비해 단계적이고 효과적인 투쟁을 진행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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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6일 저녁 서울 남대문로 YTN 사옥 앞에 모인 언론노조 조합원과 시민들이 언론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신소영 기자
나이 들면 여성호르몬이 많아진다는 말이 맞긴 맞나 보다. 요즘 들어 부쩍 물먹은 병아리처럼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지난 3월24일 저녁, 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남대문경찰서로 돌아온 네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 것을 보면서도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잘라 말하지만 너는 죄가 없다. 도망친 적도, 감춘 것도 없고, 재범의 우려는 더더욱 없다. ‘공정성이 최고의 상품가치인 언론사의 사장에 대선특보 출신이 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양심의 문제이지 어찌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된단 말이냐.
지난해 7월 주주총회 날치기 사태로 YTN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때 네가 노조위원장에 출마하겠다고 나섰지. 그때 물었다. “너 학생 때 운동했니?” “아니요. 운동권으로 앞장서진 않았지만 비겁하게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물었다. “구속될 각오는 돼 있니?” “예.” 평소의 너다운 대답이었다. 자기 잇속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앞세우고 원칙을 중시하는 성품이 드러나 있었다. 꾀바른 것 같으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그 무언가가 네겐 있었지.
을 만들 때도 그랬지. 어느 날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3분짜리 작품을 만들어내고 혼자 수십 개의 녹화 테이프를 샅샅이 뒤져가며 말이다. “가공하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는 네 아이디어로 출발한 이 후배에게 물려줄 때는 기자 세 명과 작가 세 명이 투입되는 YTN의 대표 콘텐츠가 됐지.
넌 유난히도 ‘보통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후배였다. 노태우씨 버전의 ‘특별한 보통 사람’이 아니라, 노종면 버전의 ‘소탈한 보통 사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제 잘난 맛에 사는 기자 집단 내에서도 유난히 친구가 많았다. 너의 참사랑 현정씨와의 결혼만 해도 그렇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10년 연애를 결혼으로 골인시켰지. 부모님이 오시지 않은 결혼식에서 네 마음도 아팠을 게다. 하지만 지금 현정씨는 세 아이의 엄마로, 너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굳건히 서 있더구나. 게다가 부모님의 가장 사랑하는 며느리가 됐으니, 또 한 번 노종면의 마술이 통한 것이냐.
8개월 이상, 구본홍씨의 내정 단계부터 본다면 1년 넘게 지속돼온 YTN 노조의 투쟁을 돌이켜본다. 너는 처음부터 ‘상식’을 외쳤다.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이뤄낸 암묵적 합의를 지키자고 했다. 지난 정권이 대통령의 특보를 한국방송 사장으로 보내는 데 실패했으니 이번 정권도 같은 시도를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거기서 더 나가지 않았다. 그 사이 김인규씨의 자진 사퇴로 한국방송 사태가 봉합됐다. “한국방송 공채 1기인 김인규씨는 용퇴하는데, YTN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구본홍씨는 왜 후배들의 목을 쳐가면서 버티고 있나.” 괴로웠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우리가 정파적 이해관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기억하겠지. 찾아오는 야당 인사들을 말리기까지 했다. 지금도 회사 앞에서 열리는 각종 집회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YTN이 정부 소유여서가 아니다. 우리가 객관성과 중립, 불편부당을 추구하는 언론인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외국 대사관의 고위인사 한 분을 만났다. 지난해 촛불사태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내놓더구나. “광우병 자체보다 국민을 납득하지 못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가 문제였다”는 게다. 그는 “대통령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고 이끌고 정책을 팔아야(sale) 한다”고 충고하더라.
나는 이명박 정부가 결국 언론과의 소통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한다. 언론을 통하지 않으면 국민과도 소통할 수 없으니까. 언론은 정부와 국민 사이에 서서 정부를 감시하도록 국민이 위임한 ‘미디어’이니까.
40줄에 들어선 세 아이의 아버지요, 싸움꾼도 아닌 네가 ‘공정방송 쟁취 투쟁’의 선봉에 선 이유를 너는 이렇게 설명했다. 바로 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내 아이들이 살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언론의 공정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일제강점기에서,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애국지사와 민주투사들이 살해당하고, 구속되고, 핍박받으면서 이뤄낸 결과다. 우린 그런 질곡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지. 민주주의 시대에 바른말을 하는 언론인이 구속될 일은 없다고 믿었다. 그런 우리가 바보가 아니었길 바란다.
네 말처럼 분노는 하되 흥분하진 않으려 한다. 우리에겐 아직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동료를 차가운 감옥에 버리고 가는 조직에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노종면 위원장, 당신을 반드시 YTN의 이름으로 구해낼 것이다. 그대는 이미 명예를 얻었다. 이제 쫄면처럼 질기게, 바위처럼 단단히 버티기만 해다오.
송태엽 YTN 보도제작팀 차장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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