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의 ‘원격 대화’가 점입가경이다. 서로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때로 받아가며, 비교적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낸다. 일견 위기가 깊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대화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위기는 불안감의 반영이다. 불안감은 불확실한 미래에서 비롯된다.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나면, 위기는 진정세로 돌아서기 마련이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둘러싸고 최고점을 향해 치닫던 위기 국면도 마찬가지다. ‘발사’는 정해진 사실로 굳어지는 모양새고, 시점도 얼추 정해졌다. ‘위기의 변주’에 화음을 넣던 북한 손에 쥐어진 ‘압박용 카드’도 대체로 소진된 듯싶다. ‘상황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북한은 일련의 조치를 통해 한반도 안팎의 긴장감을 높여왔다. 지난 1월30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대변인 성명을 내어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에 있는 서해 해상군사경계선에 관한 조항들을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해상군사분계선 노릇을 해온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한 달 뒤인 지난 2월28일엔 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북쪽 군사 실무책임자 명의의 대남 전통문에서 “최근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미군의 도발과 위반 행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며 “계속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우리 군대는 단호한 대응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의 몽니는 남쪽을 향한 설교?3월 들어서면서 북한의 움직임이 더욱 기민해졌다. 조평통은 3월5일 한-미 연합훈련 ‘키리졸브’와 관련해 “군사 연습 기간(9~20일) 우리 측 영공과 그 주변, 특히 우리의 동해상 영공 주변을 통과하는 남조선 민용 항공기들의 항공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선포한다”고 을 통해 발표했다. 바다(서해)와 땅(군사분계선)에 이어 하늘(동해 영공)에서도 위기의 풍선을 불어대기 시작한 게다.
조평통의 발표로 북한 영공을 통과하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 항공사들은 3월6일 새벽부터 항로를 바꿔야 했다. 먼 길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40분, 기름값은 편당 300만~400만원이 더 들게 된다. 하루 평균 14.4차례 우리 국적기가 북쪽 비행정보구역(FIR)을 통과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의 ‘몽니’가 불러온 ‘경제적 효과’는 쉽게 계량이 가능하다. 남쪽을 향한 ‘설교’로 읽힌다.
북의 ‘도발’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내놨다.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3월7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부터 북-미 대화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8일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치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권 3기 출범을 위한 준비를 사실상 마무리한 북한은 이튿날인 9일 새벽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동·서해지구 북남 관리구역의 안전 담보를 위한 더 엄격한 군사적 통제와 군통신을 차단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게다.
군통신선이 군 당국 간 연락뿐 아니라 개성공단 등 남북 간 인력이 왕래할 때도 필수적이다. 따라서 북쪽의 ‘노림수’는 두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 남과 북이 의도치 않은 군사적 충돌에 휘말릴 때 이를 조정할 수단을 없애버림으로써 위기감을 극대화했다. 둘째, 당장 개성공단을 오가는 남쪽 인력의 신변 안전 보장을 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사람의 왕래를 차단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실제 이날 방북하기로 한 남쪽 인원 726명과 남쪽으로 귀환하기로 한 80명의 발이 묶였다. 방한 중이던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통신선 차단에 ‘유감’을 표시하고, “남북 간 소통 증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은 바로 반응을 보였다. 이튿날인 10일 남쪽 인력의 왕래를 재개하도록 ‘화답’한 게다.
이어 데니스 블레어 미 국가정보국장(DNI)이 나섰다. 블레어 국장은 3월10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이 발사하려는 건 ‘탄도미사일’이 아니라 ‘우주발사체’라고 본다고 밝혔다. 둘 사이에 기술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긴 했지만, ‘인공위성’이란 북쪽 주장을 사실상 ‘용인’한 셈이다. 동맹국인 한국 정부가 ‘미사일’론을 고집하는 것과는 분명 상반되는 태도다.
이번에도 북한의 반응은 신속했다. 은 3월12일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가 얼마 전에 발표한 시험통신위성 ‘광명성 2호’를 운반 로켓 ‘은하 2호’로 발사하기 위한 준비 사업의 일환으로, 해당 규정들에 따라 국제민용항공기구(ICAO)와 국제해사기구(IMO) 등 국제기구들에 비행기와 선박들의 항행 안전에 필요한 자료들이 통보되었다”고 밝혔다. 시점도 ‘4월4일부터 8일, 11시부터 오후 4시 사이’로 명확히 했다. ‘예상 위험 지역’으로 동해상과 태평양상의 두 지역에 걸쳐 각각 4개씩 좌표까지 제시했다. 4월 초 기상 조건이 좋은 날을 택해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는 점을 기정사실로 굳히고 나선 게다.
치밀함도 엿보인다. 앞서 북한은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외기권의 탐색과 이용에서의 국가활동을 규율하는 규칙에 관한 조약’(외기권 조약) 가입서를 6일 러시아 외교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10일엔 ‘우주공간으로 쏘아올린 물체들의 등록에 관한 협약’(우주물체등록협약) 가입서를 유엔 쪽에 제출했단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지난 2006년 10월14일 향후 핵실험은 물론 탄도미사일 관련 활동까지 포괄적으로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통과시킨 결의안 제1718호를 의식한 게다. ‘탄도미사일’이 아닌 ‘인공위성’임을 강조해, 발사 이후 쓸데없는 논쟁을 피하겠다는 계산이다.
주어진 ‘정세’가 나쁘진 않다. 제재 성격이 강한 결의안 제1718호가 통과될 때 유엔 안보리 의장국은 당시 ‘대북 강경론’을 주도하던 일본이었다. 올 3월 안보리 의장국은 리비아다. 4월엔 멕시코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도 이미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클린턴 국무장관도 12일 워싱턴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할 경우 유엔 안보리를 포함해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할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도 “미사일 문제는 6자회담 사안이 아니지만 북한과 대화의 일부로 삼고 싶다”고 강조했다. 방점은 ‘제재’가 아니라 ‘대화’에 찍혔다. 애써 막으려 했던 ‘인공위성’ 발사가 되레 북-미 대화 재개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남은 ‘불확실성’은 꼭 한 가지, 서해다. 북 인민군 총참모장을 지낸 김격식 대장이 최근 이 일대를 관할하는 4군단장에 임명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김격식 군단장은 개성공단 사업과 문산~봉동 간 경의선 열차 연결 사업 당시 그 일대를 관할하는 2군단장으로 재직하며, 군부의 반발을 무마한 인물이다. 최근 남북 관계가 어려워지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야전으로 밀려난 것이란 분석이 대세지만, 조금 다른 해석도 있다. 김 군단장은 상황에 따라 서해상에서 군사적 충돌을 부추길 수도, 반대로 강경파의 돌출 행동을 무지를 수도 있는 인물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선 카드판의 ‘조커’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로선 서해상 무력 충돌이 북에 이로운 게 없는 상황이다. 섬세한 ‘상황 관리’가 절실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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