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의 인원 축소는 이미 결정이 난 상태다. 인원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을 잘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3월3일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
촛불집회 관련 결정 사흘 뒤 ‘조직 정비’
인권위의 조직과 인원 축소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지난해 말부터 인권위 축소에 팔을 걷어붙였던 행정안전부는 아예 ‘3월 말’로 기한을 못박았다. 인권위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대통령령인 ‘인권위 직제’를 바꿔서라도 강행하겠다는 태도다. 지난해 말 내놨던 ‘인권위 반토막’ 계획은 거둬들였지만, ‘30% 축소안’은 유지되고 있다.
행안부는 법무부 인권국 등 다른 조직과 기능이 겹치는 부분, 불필요한 교육 기능 등을 잘라내면 현재 208명인 인권위 조직을 146명까지 줄일 수 있다고 본다. 5국 22과 조직을 3국 10과로 줄이고, 광주·대구·부산에 설치된 지역 사무소 3곳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벼랑에 몰린 인권위는 “올 것이 왔다”는 태도다. 지난해 초 대통령 인수위가 독립기구인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바꾸는 데 실패하면서부터 ‘인권위 무력화’ 절차는 예정돼 있었다는 것이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는 시작부터 인권을 ‘걸림돌’로 봤다”며 “북한 인권 정도가 예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와 인권·시민단체들은 현 정부의 인권위 축소 시도에 ‘현실적 필요’보다는 ‘정치적 의도’가 더 많이 담겼다고 보고 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지난해 10월 ‘경찰의 촛불시위 진압 과정에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인권위 결정 이후 정부의 인권위 탄압은 본격화됐다”며 “인권위를 못마땅해하는 마음이 이때를 기점으로 분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인권위의 촛불집회 관련 결정이 발표된 사흘 뒤 감사원은 “인권위의 조직 정비가 필요하다”는 감사 결과를 내놨고, 행안부는 기다렸다는 듯 이를 빌미 삼아 인권위 조직 정비에 나섰다. 이보다 석 달 앞선 지난해 7월 행안부가 감사원에 보낸 답변서에 “기존 본부의 업무뿐 아니라 신규 업무량의 증가 등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18명 순증을 통한 지역 사무소 설치는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것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이에 맞서 인권위는 명분과 여론을 무기로 싸운다. 인권위가 2001년 입법·사법·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 국가기구로 설립됐고, 여기엔 조직적 독립까지 포함됐다고 주장한다. 권력에 쓴소리를 해야 하는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직제 및 인력 운영의 자율성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인권기구는 국제인권법이 보장하는 인권 내용을 국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 조직인 만큼 그 특수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권위 업무량이 2002~2008년에 2.08배 늘었고 상담도 4.8배 늘어난 반면, 인원은 1.15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것도 인권위 축소론에 대한 주요한 반박 논리다.
법학 교수 248명·인권단체 212곳 반대국내외 인권단체들과 법학 교수 등은 최근 잇따른 정부의 인권위 축소 강행 방침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법학교수 248명이 성명을 발표했고, 인권단체 212곳도 공동투쟁단을 꾸려 발족식을 열었다. 유엔도 나섰다. 나바네템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2월 말 우리 정부에 서한을 보내 “한국 인권위는 국제사회의 모델”이라며 축소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시대를 거스르는 조처로 비난받고 있는 인권위 축소 계획을 정부가 어디까지 밀어붙일지 주목된다.
최현준 기자 한겨레 24시팀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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