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할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어릴 적 동네 어귀에서 들을 수 있었던 아이들의 친숙한 외침을 대신하는 것은 이제 거대도시의 재개발 공사장 소음뿐일까. 아니다. 서울 한구석에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을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놀이를 즐기는 공간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국내 최초, 세계 최초일지 모르는 마을 공동체의 공연장 ‘성미산마을극장’을 만든 서울 마포구 성산1동 일대 주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도회 생활의 기본은 정을 붙이지 않고 사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성미산마을에서 12년째 지내고 있어요. 이웃들의 속사정을 알고, 아이들을 같이 키우고, 돌봄의 관계가 있는 마을이어서 정주할 수 있었죠. 이번엔 아예 노는 것도 함께 놀자는 취지로 마을극장을 만들게 된 것이고요.”
지난 2월6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극장’에서는 개관 전야제 행사가 열렸다. 동네 골목길에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고 운영하는 극장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자리다. 극장의 대표 일꾼이자 감정평가사라는 직업을 가진 유창복(48)씨는 “극장 개관을 연기해야 하나 고민도 했는데 막상 문을 열게 되니 신기하기도 하고, 이젠 극장이 자기 힘으로 굴러갈 테니 홀가분하기도 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성미산마을의 출발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어 아이들을 함께 돌보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자라남에 따라 방과후 교실과 대안학교 ‘성미산학교’도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은 카페 ‘작은 나무’를 만들어 함께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카센터인 ‘차병원’을 만들어 자동차 정비도 한다. 특히 2001년부터 2년간 마을 한복판의 동산을 헐고 개발하려는 것을 막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결속력이 강해진 이후엔, 동네에서 활동하는 연극반, 아빠엄마밴드, 풍물패 등 동아리들이 한바탕 모여서 노는 마을축제가 매년 이어지고 있다. 유 대표는 “이번에 마련한 마을극장은 마을축제를 상설화하고, 그동안 활성화된 동아리들과 문화예술인들에게 표현 공간을 마련해주자는 생각에서 추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1년 전부터 마을극장 개관의 꿈을 구체화시켰다. 마침 함께하는 시민행동, 한국여성민우회, 녹색교통운동, 환경정의 등 4곳의 시민단체가 이사를 오면서 공간 일부를 주민들에게 내주었다. 60여 평 공간은 발코니 객석까지 100명 정도가 관람할 수 있는 터전이 됐다. 음향·조명·실내장식은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예산을 짰다. “3억~4억원의 관련 비용을 모금으로 다 채우지 못한 터라, 일단 장비 등을 외상으로 갖춰놨다”고 유 대표는 귀띔했다.
장필순·윤미진의 전야제 콘서트, 홍세화·조한혜정·우석훈 등 사회 명사의 토크쇼와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개관 행사로 출발하는 개관 기념 페스티벌에서는 마을극단 무말랭이, 성미산학교 청소년밴드, 극단 드림플레이, 꽃다지 등 다양한 문화예술인과 주민들이 꾸미는 공연이 3월29일까지 이어진다. 유 대표는 “우리는 극장의 콘셉트는 경계와 소통이고 오브제 이미지는 담벼락이라는 조건만 제시했을 뿐인데, 공연 출연자끼리 회의해서 두 달치 프로그램을 뚝딱뚝딱 짜내고 일정을 조율했다”면서 “참여 예술가들은 마을이나 극장의 취지에 공감하며 기부하는 마음가짐으로 참여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성미산마을극장은 성미산 주민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다른 동네 사람들이 참여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유되는 공간입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일종의 ‘호스트’인 셈인데, 예전 한옥에서는 사랑채가 이런 극장의 역할을 했죠. 많은 분들이 극장을 찾아와 어울리고 소통했으면 합니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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