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나무꾼의 잘못은 선녀의 옷을 몰래 훔치는 방법으로 결혼한 데 있다. 그 나무꾼은 나중에 아이들과 함께 선녀를 따라 하늘나라에 간다. 그러나 지상에 있는 홀어머니가 보고 싶어 선녀의 만류에도 지상으로 내려온다. 선녀는 말 한 필을 내어주며 “절대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일러준다. 나무꾼은 결국 홀어머니가 내어준 펄펄 끓는 팥죽을 먹다 흘리고, 깜짝 놀라 펄쩍 뛰는 말에서 떨어져 땅을 밟는다. 그러곤 다시 하늘나라에 올라가지 못하고 하늘만 보며 울다 수탉이 된다.
전통적 가족관계에서 갈등의 정점을 이루는 ‘고부갈등’은 심지어 전래동화인 ‘선녀와 나무꾼’에서도 확인된다. 고부갈등이 한국 사회에서 오래된 문제임을 보여준다. 선녀가 굳이 천상에 올라가려 했고 홀어머니가 아들에게 뜨거운 팥죽을 끓여 먹이려 했다는 이야기들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을 암시한다. 국문학자 서은아 박사는 2005년에 내놓은 학위논문 ‘나무꾼과 선녀의 인물갈등 연구’에서 “나무꾼과 선녀의 행복한 부부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나무꾼이 시댁 식구들보다 아내를 우선시해야 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어 나무꾼이 팥죽을 먹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을 홀어머니에게 확실히 했다면 승천이 좌절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남편 혹은 아들의 당당한 의사표현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홀어머니의 팥죽 먹지 말았어야”그러나 말이 고부갈등이지 사실 전통사회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갈등’조차 하지 않았다. 권력의 극심한 비대칭적 속성 때문이다. 해당 집안에서 시어머니는 권력자였고 며느리는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고부갈등’이라는 말이 온전한 의미를 갖추기 시작한 때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인정되고 장자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조선시대 중기 이후 재산 많은 양반집이 아닌 평민 집안에서 며느리는 ‘아들 낳는 노예’였다. 시부모와 집안의 아들들 밥상을 따로 차려준 뒤 부엌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죽도록 일만 하면서도 아들을 하나 낳기 전까지는 온전한 사람 대접 받기도 힘들었다. 며느리는 아들을 낳고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집안 열쇠를 이어받으며 자신을 그토록 괴롭힌 시어머니로 다시 탄생했다.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국문학)는 “경남 의령에 병든 시아버지의 설사똥을 찍어 맛을 본 며느리를 위해 세운 열녀비가 있다”며 “며느리가 원했을 것도 아니고 제도가 시켜서 한 일인데, 그런 제도를 만든 사회는 저주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불균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차별받은 며느리의 이야기는 ‘며느리밥풀꽃’ 설화에서 정점을 이룬다. 얘기는 이렇다. 없는 집안에 시집간 며느리가 머슴살이 간 남편이 보내오는 곡식으로 시어머니에게는 죽을 쒀주고 자신은 ‘초근목피’로 목숨을 이어간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지는 밥해먹고, 나한테는 죽을 준다”며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린다. 어느 제삿날 저녁 며느리는 부엌에서 젯밥이 다 익었는지 몇 알 떼어먹다 들키고 시어머니에게 부지깽이로 맞아 죽는다. 그 며느리의 입술에는 흰 밥풀 두 개가 붙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며느리의 피처럼 붉은 꽃이 피어났는데, 밥풀처럼 흰 암술 두 개가 달려 있다 해서 며느리밥풀꽃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 권력관계의 불균등이 심한 탓에 며느리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고부갈등을 며느리의 시각에서 다룬 글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전해오는 속담들도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시어머니 눈에 그토록 미운 며느리는 하필 일 많은 제삿날만 되면 병이 난다. 그래서 무언가 타박을 하려다 보니 “발뒤꿈치가 달걀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욕을 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굿하고 싶어도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다”고 했을까.
“고부갈등 상담 증가, 돈 문제 많아”며느리들은 조용한 반항을 하기도 했다. 자신들끼리 모여앉아 시댁 욕을 담은 노래를 부르며 한을 달랬다. 경북 지방에 전해오는 는 시집살이를 ‘개집살이’라고 꼬집는다.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시아버니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시아지비 뾰증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시댁 식구들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다 보니 “열매 무명 반물 치마”는 눈물 씻다 다 젖어버리고, “두 폭 붙이 행주치마”는 콧물 받다 다 젖어버린다고 노래했다. 하지만 이 노래는 담장을 넘으면 안 됐다.
17세기 중반 성리학이 중국에서 건너온 뒤 유교적 질서가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며느리들의 처지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 이전만 해도 여성은 재산을 균등하게 배분받았고 재혼도 했다. 박부진 명지대 교수(인류학)는 “유교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17세기 중반 이전만 해도 시집과 처가의 구분이 별로 없었으나 그 뒤 며느리가 아무 능력 없는 형편없는 노동자 취급을 받으며 지위가 급락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6세기 후반을 산 허난설헌(1563∼89)만 해도 재산을 나눠받은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장자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권력자인 남성의 주변부 인생으로 사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궁궐 담벼락 안쪽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왕대비, 대비, 중전 사이에서는 더욱 치밀한 권력투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희대의 폭군이라는 평가를 받는 연산군이 이런 궁중 고부갈등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 알려졌듯 연산군이 폭압정치로 치닫게 된 데는 어머니 윤씨의 폐위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할머니인 인수대비가 며느리 윤씨와의 갈등 속에서 돌이 된 연산군을 윤씨에게서 떼어내 궐밖으로 내보냈다. 2년 뒤에는 성종의 얼굴을 할퀴는 ‘칠거지악’을 저지른 죄로 윤씨를 폐위시켰다. 따라서 연산군은 어려서부터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윤씨는 귀엽기도 할뿐더러 자신의 권력 밑천인 아들 연산군을 떼어놓은 인수대비를 용서하기 힘들었다. 인수대비로서는 윤씨가 후궁들을 몰아내려 한 거짓 투서 사건에서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자신의 둘째아들 성종을 독차지하려는 시도로 여겼을 것이다. 동시에 인수대비 자신의 권력 안정을 위해 필요한 더 많은 세손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심리학자 강현식씨는 에서 “(성종이) 확실하게 윤씨의 편을 든 것도 아니고 어머니의 의견에 따른 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어머니(인수대비)와 아내(윤씨) 둘 다 상처를 심하게 받고 고부갈등은 더욱 증폭된다”고 밝혔다.
핵가족화가 상당히 진행된 현대사회에서 고부갈등은 많이 줄었을까? 강용 한국심리상담센터 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강 원장은 “10년 전에는 부부 상담의 20∼30%가 고부갈등과 관련된 것이었으나 지금은 30∼40% 정도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고부갈등의 내용도 변하고 있다. 예전엔 아들에 대한 편애나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잔소리 등이 주요 갈등 요소였으나, 요즘엔 경제권, 자녀양육, 가사노동 문제 등이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으르렁거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게 강 원장의 설명이다. 경제권의 경우, 시부모가 과거에 비해 일찍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다보니 이후 자녀에 대한 의존이 늘고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용돈을 주는 과정에서 고부갈등이 더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맞벌이하는 며느리의 경우 시부모가 일시적인 양육을 맡아주길 원하는 탓에 갈등이 터져나오는가 하면, 회사일 때문에 집안의 대소사에 참여하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시부모의 이해가 따라오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 충돌도 잦다고 한다.
가부장 질서에 금 가면 끝날까이처럼 며느리들은 나름의 경제권을 갖게 됐고 이에 따른 발언권 확대는 필수적이다. 장자 중심의 가부장 질서에도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며느리들은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시어머니와 갈등할 수 있는 힘을 갖춰가고 있는지 모른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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