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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체포, 한국사회 영장


경방고수들 “말길 가두면 재앙 올 것”… 글을 보지 않고 학력을 보는 조·중·동 개탄
등록 2009-01-13 11:11 수정 2020-05-03 04:25

새해 초부터 검찰이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로 박아무개(30)씨를 지목해 사법처리에 나섰다. 인터넷의 가장 대표적인 논객에 대한 국가의 처벌 시도는 앞으로 자유로운 여론 형성을 왜곡하고 일방적인 정보 유통을 강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파괴다. 은 다음 아고라와 토론방 한토마 등을 중심으로 경제 관련 글을 써 명성을 얻은 제2의 미네르바들, 이른바 ‘경방고수’들(738호 표지이야기 ‘독하게 독학한 제2의 미네르바들’ 참조)에게 이번 사태와 관련한 의견을 물었다. 그들은 미네르바에 대한 사법처리 시도가 자유로운 정보의 유통을 가로막으며 결국 한국 경제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달러 협조 요청 요지 문제 안 돼”

민생민주국민회의가 1월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를 긴급체포한 것은 정부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며 검찰을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747’과 같은 허위 공약을 내놓은 이명박 대통령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민생민주국민회의가 1월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를 긴급체포한 것은 정부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며 검찰을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747’과 같은 허위 공약을 내놓은 이명박 대통령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검찰이 박씨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써넣은 죄목은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이다. 그가 지난 12월29일 다음 아고라에 올린 ‘대정부 긴급 업무명령 1호-주요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 공문 전송’이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유포된 허위 사실이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인터넷상에서 농반진반으로 미네르바의 뒤를 이어 당국의 표적이 될 것으로 지목당하고 있는 경방고수 ‘SDE’는 미네르바가 무죄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네르바가 (해당 표현을) 정부의 금융권에 대한 협조 요청 정도로 이야기했다면 법률적으로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헌법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 조항에 의거해 불법이며 미네르바는 무죄”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추측하던 것과 검찰의 발표 내용을 보았을 때 (박씨가 미네르바인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경방고수들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정부 정책에 반하는 내용의 정보 소통을 막으려는 ‘겁주기’에 있다고 본다. 이미 다음 아고라에서는 박씨 체포 소식이 알려진 직후 ‘필립피셔’를 비롯한 일부 논객들이 자신의 글들을 지웠다. ‘2009년판 분서갱유’가 본격 시작된 셈이다. 경방고수들은 미네르바에 대한 형사처벌이 중·단기적으로 논객들의 입을 가로막을 것으로 예상했다. ‘명사십리’는 “천생 시대가 이러면, 은유적이고 암시적으로 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경방고수는 아예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정부가 형사처벌을 들고 나오자 자신이 쓴 글이 ‘트집 잡히지 않을까’ 다시 한번 보게 된다고 했다. 제도권 언론은 각종 경제 관련 지표 등을 해석해 의견을 발표하지만 일반 개인은 같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로 다가오기 때문에 앞으로는 아고라에서 자신의 지식을 얘기하는 논객이 점점 줄고, 사회 여론은 정부가 원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문제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미네르바 체포의 의미로 “(논객들로 하여금) 겁먹고 조용히 있으라는 것”이라며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비판의 소통 구조 있어 위기 극복

이처럼 ‘공포정치’ 체제에서 제도권 언론과 금융권에서 내놓는 정보만 유통되고 그 밖의 스피커를 꺼버리면 어떤 결과가 올까? 경방고수들은 전혀 뜻밖의 ‘재앙’이 닥쳐올 수 있음을 경고했다. ‘SDE’는 이명박 정부 이전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우리 사회 비판의 소통 구조가 불러온 긍정적 효과에 주목한다.

“이런 식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잦아들게 하려는 게 정부 의지라면,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반드시 그 부메랑이 현 정부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한국 경제는 1998년부터 10년 동안 완전히 파탄이 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위기를 세 차례나 지나왔다. 그것을 전부 이겨온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경제 부문의 비판적 의견을 힘으로 억누르지 않으면서 한국 경제주체들이 스스로 알게 모르게 어느 정도 위험관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비판적 시각을 억누르면 위험관리는 느슨해질 수밖에 없게 되고, 예상할 수 있는 위기도 많은 경제주체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하게 돼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다른 경방고수들도 비슷한 경고를 했다. ‘헝그리울프’는 앞으로 금융위기가 실물 부문으로 본격적으로 옮아올 3∼4월에 주목한다. 기업 구조조정에 뒤이은 실업과 고용 불안정 상황이 왔을 때 분노한 민심이 막힌 언로와 만나면 의외의 방향으로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압력을 계속 눌러놨다가 나중에 터지면 더 크게 터진다”고 비유했다. 필명 ‘양원석’은 미네르바에 대한 처벌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음모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우려했다. 다양한 정보의 유통이 사회의 신뢰도와 비례함을 들어, 정부의 정보 통제가 시민의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그는 최근 국내 외화예금이 느는 것을 든다. 원활하지 못한 국내 정보보다 국외 정보에 대한 접근이 늘면서 동반되는 현상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그는 현 정권이 인터넷을 상대로 ‘러다이트운동’을 펴는 게 아니냐는 우스개도 내놨다. 명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기계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기계를 파괴했던 산업화 초기의 현상이 연상된다는 시각이다.

보수 신문 등 우리 사회 일부에서 검찰이 미네르바로 지목한 박씨가 공고와 전문대를 졸업하고 경제학을 제도권에서 공부하지 않고 독학했다는 것을 빌미로 ‘가짜에 놀아난 대한민국’이란 식으로 사태를 호도하는 데 대해서도 경방고수들은 일침을 놨다. ‘양원석’은 “아고라에서 미네르바를 본 사람들은 그의 글을 본 것이지 학력을 본 게 아닌데도, 학력과 같은 예전 프레임으로 그를 절하하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누리꾼 전체를 생각 없이 가짜에 놀아나는 사람들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개입돼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고 학부 나온 관료·교수들 뭘 했나

외신을 실시간으로 소개하는 ‘헝그리울프’는 “미네르바가 누구건 간에 그 정도까지 시각을 길러냈다면 대단한 것 아니냐”며 “서울대 법대 나온 강만수 장관과 유학 갔다 온 재경부 관료들은 도대체 무얼 한 거냐”고 비판했다. 몇 해 전부터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경고해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도 미국의 주류라 일컫는 백인·앵글로색슨 계열의 청교도가 아닌 이민자 출신이라는 사실이 미국 사회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시각이다.

‘SDE’는 실력보다 간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의 허위의식을 이렇게 꼬집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연구능력을 상실한 교수들에게 놀아나는 것이 가장 큰 폐해다.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학교와 학부를 나와 외국의 좋은 대학을 나온 분들도 한국에 돌아와 몇 년 지난 뒤에는 연구능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생각 외로 많다. 이런 분들이 결국 아카데미를 벗어나 오히려 대중을 호도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인터넷이 워낙 발달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외국 유학이 거의 불필요할 정도로, 독학으로도 얼마든지 엄청난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대다.”

미네르바 체포로 상징되는 정보 통제가 한국 경제의 위기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제2의 미네르바들’의 경고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여전히 정부의 몫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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