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직으로 입사한 현대제철 인사팀의 유인출(43) 차장은 2년차 자원봉사자다. “봉사활동은 산에 갈 때랑 똑같다. 갈 땐 귀찮지만 갔다 오면 상쾌하고 기분 좋다”고 그는 말한다. 지난 12월18일 오후 유 차장은 14명의 회사 동료들과 함께 서울 서초구 내곡동 다니엘 복지원에 자원봉사 송년회를 다녀왔다. 임원인사, 조직개편, 직원평가 등 인사팀 업무량이 폭주하고 성과 부진 사원을 가려내는 고역도 피할 수 없는 연말. “업무는 바쁘지만, 자원봉사를 나오면 기왕 할 것 잘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유인출 현대제철 차장이 자원봉사 송년회 행사에서 케이크를 함께 만든 어린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적장애를 가진 다니엘 복지원 어린이들은 말투는 어눌하지만 어른들에게 살갑다. 케이크 만들기 짝꿍이 된 이지훈(10·가명)군은 제비뽑기를 하기 전부터 유 차장을 ‘아빠’라고 불렀다. 지훈이의 제안대로 케이크 윗부분 장식은 무덤을 본떴다. 가장자리는 유 차장이 하트 모양으로 꾸며놓었다. 중3인 딸과 중1인 아들에게 함께 케이크를 만들자고 하면 아마 바쁘다는 핑계를 댈 것이다. “애들과 놀아주기보다는 내가 막내아들과 놀러 왔다는 느낌”이라고 유 차장은 말했다.
‘생판’ 자원봉사 초보 시절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 봄 서울 태릉 근처 복지관에서 만난 다운증후군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대기업 자원봉사단들이 총출동한 지적장애인 농구대회 때는 경쟁심이 발동했지만, 그가 만드는 솜사탕은 예쁘게 부풀어오르지 않고 자꾸만 찌그러졌다. 그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인사부서 안 봉사팀원들과 지원기관들을 방문하다 보니 조금씩 요령이 생기는 중”이라고 말한다. 올 초 충남 태안 기름띠 제거 작업과 지난여름 경기 구리시 동구릉 청소 봉사활동에는 온 가족이 총출동했다.
광고
이틀 뒤 공장이 위치한 인천에서 자원봉사 릴레이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전기팀의 박계성(55)씨였다. 회원 187명을 거느린 봉사단체인 현대제철 ‘다물단’의 사무국장인 그는 30년 넘게 자원봉사를 이어온 ‘달인’이다. 인천 동구 송림동의 달동네를 누비며 독거노인들에게 쌀 포대를 건넸다. ‘신문지 방석’으로 바닥 한기를 견딜 만큼 어려운 살림이지만, 음료수와 감귤을 조끼 주머니에 찔러주는 어르신도 있었다.
현대제철에 입사한 1977년, 어린이 보육시설인 향진원의 전기 보수를 해준 게 인연이 돼 자원봉사를 이어왔다는 박 국장은 요즘 다물단 회원들과 함께 인천 동구의 장애인과 독거노인들을 위해 주거환경 서비스 지원사업을 벌인다. 회원들은 조별로 휴무일을 이용해 도배, 장판 교체, 수도·전기 수리, 방역, 이동목욕, 방충망 달기 등에 나선다. 설날과 한가위 때는 30가구씩 선정해 생필품을 지원하고, 매주 월·화·수요일에는 주부봉사대가 중심이 돼 도시락 배달을 한다. 첫 자원봉사 활동이 등산 모임에서 출발했다는 박 국장은 “3년 뒤 정년퇴직을 해도 자원봉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근력이 예전만은 못하지만 봉사든 등산이든 아직 자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회사에서 팀 단위로 비용 지원12월 첫쨋주부터 셋쨋주까지 현대제철 직원들은 자원봉사 송년회를 마련했다. 술 실력을 겨루는 ‘흥청망청’ 송년회 대신 한 해를 보람 있게 마무리하자는 취지였다. 서울사무소의 경우 임직원 120명이 본부·실 단위로 10~20명씩 조를 이뤄 새빛맹인재활원, 청원보육원 등 서울 서초구 내 복지시설 6곳을 방문했다. 성탄절 트리, 달력, 액자 등을 만들고 함께 송년파티를 벌였다. 현대제철 CSR추진팀의 고선정 대리(사회복지사)는 “회사 차원에서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해 일정한 비용을 팀 단위로 지원하고 있다”면서 “자원봉사 송년회는 올해 처음 시도했는데 직원들의 호응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글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체포영장 협조’ 경호처 직원 해임…김성훈 인사보복 이제 시작일까
탄핵심판 선고 20~21일 예상…윤석열은 왜 ‘승복’ 언급 않나 [뉴스뷰리핑]
[단독] 경호처, 윤석열 체포저지 반대한 간부 ‘해임’ 의결
민감국가 지정, 미국이 ‘북한과 동급’ 삼아도… [그림판]
건대입구 한복판서 20대 남녀 10여명 새벽 패싸움
의대교수들 “의사면허 하나로 전문가 대접 원해”…복귀 거부 전공의 질타 [전문]
“나인가 병 걸린 나경원, 이재명 비난해 극우에게 인정받을 착각”
조갑제 “탄핵 승복은 가해자 윤석열 몫…이재명이 계엄 선포했나”
내란이 깨운 ‘극우 880만명’…그들은 민주주의 자체를 싫어한다
김수현 여파 MBC 예능 ‘굿데이’ “촬영분, 최대한 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