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번호 2008도○○○○. 피고 박○○. 주문.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
11월27일 오후 2시께 서울 서초동 대법원 1호 법정. 김지형 대법관이 한 여성 피고인의 무죄를 확정하는 판결문을 읽었다. 판결이 낭독되는 순간 박아무개(27) 대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다. 무죄가 확정된 당사자였다.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법정을 나서는 박 대위에게 몇몇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건넸다. “박 대위님, 축하해요. 너무너무 잘됐어요.”(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산 활동가) “무죄죠?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요. 축하해요.”(군인권센터설립 준비모임 임태훈 활동가)
상관에게 성적 스토킹을 당하고도 되레 항명죄 등으로 기소된 박아무개(27) 대위가 사건 발생 22개월 만에 공식 복권됐다. 11월27일 무죄 확정 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정 앞에서 박 대위(가운데)와 ‘군대 스토킹 피해자 지원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축하 인사를 주고받고 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게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환한 표정의 박 대위 또한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답인사를 건넸다.
지난 4월 의 단독 보도(705호 줌인 ‘여군 스토킹 사건의 진실’·707호 표지이야기 ‘여군 성폭력 백서’ 등)로 세상에 알려진 ‘여군 군악대장 스토킹 사건’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대법원 1부(재판장 김지형)가 이날 육군 ××사단 전 군악대장 박 대위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가 있고, 거기에 (군검찰의) 상고 이유의 주장과 같은 채증 법칙 위반, 심리 미진 등의 위법이 없다”고 밝혔다. 육군본부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법원으로부터 정식 판결문이 접수되면, 해당 부서에서 심사한 뒤 박 대위에게 적당한 보직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상관으로부터 지속적인 스토킹을 당하고도 되레 항명 등 혐의로 기소돼 강제전역될 처지에 놓였던 박 대위는 군 생활을 계속해나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박 대위는 제자리를 찾기까지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 가운데서도 오랜 시간 계속된 마음고생이 첫 번째였다. 박 대위의 직속 상관이던 송아무개(37) 소령은 2007년 2월께부터 △“남자친구와 자봤냐”는 등 사적인 질문 △“남자친구와 사귀지 않겠다”는 등의 글이 적힌 각서에 서명 강요 △한 달 200~300통에 이르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보내기 △부대 훈련 중 시내로 데리고 나와 커플링을 사주려 시도 등 박 대위를 상대로 성적인 스토킹을 지속해왔다.
여군 군악대장 스토킹 사건 일지(※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스토킹을 버텨온 박 대위는 2007년 9월 사단 헌병대에서 항명과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를 받아야 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송 소령이 남몰래 박 대위를 수사 의뢰한 결과였다. 이에 박 대위는 송 소령의 스토킹 사실을 담은 진정서를 냈지만, 군검찰은 2007년 12월 송 소령을 무혐의 처분했다. 각서에 서명을 강요하고, 반복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들은 인정하면서도 “범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송 소령에게는 사단장 명의의 경고장이 주어지고 사건이 마무리됐다.
송 소령에 대한 무혐의 처분 이틀 뒤, 박 대위는 상관에 대한 항명과 직권남용 등 혐의로 끝내 기소됐다. 그리고 1심 군사법원은 지난 4월 박 대위의 일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강제전역이 불가피한 중형이었다. 유죄를 선고한 1심 재판장은 중령 시절부터 송 소령과 함께 근무하는 등 인연을 맺어온 김아무개 대령이었고, 박 대위 쪽에 불리한 진술을 한 본부 근무대 행정장교는 송 소령과 대대 작전과장과 작전장교로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다.
1심 판결 직후 보도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여성단체와 일부 변호사 등을 중심으로 ‘군내 스토킹 피해자 지원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이들은 2심 공동 변호에 나섰고,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지난 7월 “항명에 대한 군검찰의 혐의 입증이 부족하다”며 박 대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번엔 군검찰이 “부당하다”며 상고하고 나섰다. 11월27일 대법원 판결은 이같은 군검찰의 주장에 대해 “이유 없다”는 최종 결론을 내려준 셈이다.
오랜 마음고생 끝에 다행히 무죄가 확정됐지만, 박 대위에게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도 보직 해임된 채 지내온 1년가량과 강제 휴직됐던 8개월이란 공백은 군 생활에 약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건·사고의 피해자이더라도 조직에 ‘물의’를 일으킨 여군은 장기복무 심사에서 거르는 군 당국의 ‘관례’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도 과제로 남는다.
항소심부터 박 대위 변호를 맡아온 차혜령 변호사(법무법인 공감)는 “박 대위 무죄가 확정된 만큼 곧 송 소령을 고소·고발할 예정이며, 박 대위와 상의해 송 소령과 송 소령의 지휘·감독 책임자인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지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킹으로 괴롭힘당한 지 22개월, 억울하게 헌병대 수사를 당한 지 14개월, 기소된 지 11개월 만에 ‘복권’된 박 대위는 무죄판결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상부 허락 없이 기자와 접촉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글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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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이 보도한 ‘여군 군악대장 스토킹 사건’ 기사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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