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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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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불금 고발한 소작농만 바보

지주에 땅 뺏기고 직불금은 못 돌려받아.
“농민 40%는 직불금 못 받고 있다”…
등록 2008-10-21 11:24 수정 2020-05-03 04:25

2007년 ‘쌀소득 등 보전 직불제’(직불금제)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고도 그 결과를 쉬쉬하던 감사원이 고위 공직자들의 쌀직불금 부당 수령 사실이 드러나면서 감사 결과에 대한 의혹이 일파만파 퍼져나가자 지난 10월14일 전격적으로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가 끝난 지 1년 반 만이다. 감사원은 부당하게 직불금을 수령한 사람이 28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3월 과 의 직불금 보도와 관련해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보도 내용에 대한 조사가 착수됐다”며 제보 농민 면담을 의뢰해왔다. 그 뒤 4~5월까지 전국적인 감사에 돌입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원들이 지난 10월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 앞에서 쌀직불금 불법수령 명단공개와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한승수 국무총리와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원들이 지난 10월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 앞에서 쌀직불금 불법수령 명단공개와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한승수 국무총리와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환수한 돈, 소작인에 주면 모든 게 해결

2001년 시작된 직불금제는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됐다. 내용은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 등 두 가지로 나뉜다. 고정직불금은 면적에 따라 일정 금액이 지급되는 것을 말하고, 변동직불금은 쌀값의 변동에 따른 목표가격과의 차액을 보전해준다. 정부의 쌀 수매제도가 없어지면서 대신 농민들의 수입을 보전해주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쌀직불금은 당연히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법도 법이지만 떨어진 쌀값에 대한 차액을 보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주들은 재배면적을 확보하려는 소작인들의 심리를 잘 알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직불금을 챙길 수 있게 된다. ‘당신 아니라도 농사지을 사람은 많다’는 것이다.

당시 에 게재되어 감사원에 포착된 기사는 이러한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도장을 찍어줄 수밖에 없는 어느 이장의 고백에 관한 내용이었다. 마을 이장들은 누가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훤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소작인과 지주가 함께 음료수를 사들고 와서 경작확인서에 도장을 찍어달라는데 이를 마다할 이장이 얼마나 있을까. 이렇게 부재지주가 실제 경작인으로 둔갑하는 일은 쉽다.

경기도에서 10ha의 벼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 유아무개(45)씨는 40% 정도는 직불금을 못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서울 등에 있는 부재지주들은 직불금제를 잘 몰라 문제가 없는데, 농촌에 살고 있는 재촌지주들은 이 제도를 다 알기 때문에 큰소리를 치면서 직불금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고민을 하던 조종대씨가 지주를 신고한 사실이 지난해 3월 보도됐던 것이다. 조씨의 지주는 재촌지주였으며 조씨는 그의 땅에서 7~8년 동안 소작을 해온 관계였다. 갈수록 생산비는 오르는데 직불금마저 지주에게 빼앗기자 조씨는 여러 해에 걸쳐 항의와 사정을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자존심만 상했다. 결국 조씨는 땅을 빼앗길 각오를 하고 지주를 행정기관에 신고했다. 당연히 땅을 빼앗겼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막힌 사실이 드러났다. 부당하게 직불금을 착복한 사실이 밝혀지면 그 지주는 지난 3년 동안 수령해간 직불금을 토해내야 하고 이후 3년 동안은 직불금을 수령할 수 없게 된다. 조씨도 이러한 사실까지는 알고 신고했다. 그러나 조씨는 지주가 내놓은 직불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적발된 지주가 토해놓은 직불금은 전액 국고로 환수됐기 때문이다. 회수된 고정직불금은 고정직불기금으로, 변동직불금은 변동직불기금으로 각각 적립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씨는 뒤늦게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땅은 빼앗기고 해코지까지 당했다. 지난해 추수를 하던 조씨의 논에 누군가 굵은 철근 토막을 다섯 군데나 박아놓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벼를 베던 조씨는 콤바인 두 대를 망가뜨렸다. 수리비만 100만원 넘게 지불했다.

지난 10월15일 농림수산식품부는 경작 사실을 본인이 직접 입증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쌀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농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농민들은 “지금까지는 말만 잘하면 됐는데, 앞으로는 지주의 경작 사실을 입증하는 서류까지 우리가 만들어줘야만 소작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울상이다.

경작 입증서류까지 만들어줘야 할 판

조종대씨는 “환수된 직불금을 소작인에게 주는 것만큼 확실한 대안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상호 계약 기간이 만료된 이후라도 소작인이 신고를 할 경우 밀린 직불금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된다면 지주들은 직불금을 챙길 생각을 처음부터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농촌공사(사장 홍문표)에서는 직불금 문제와 지주들의 양도소득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농지수탁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농지수탁제도란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부재지주와 고령을 이유로 농사를 그만두는 농민 등의 농지를 농촌공사가 위탁 관리하는 제도다. 농지를 공사에 위탁한 기간 동안은 자경을 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양도소득세를 면제받을 목적으로 직불금을 신청해야 하던 부재지주들에게는 솔깃한 제안이다. 현행법상 자경 기간이 8년을 넘으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소작농민 입장에서는 땅을 지주가 아닌 농촌공사를 통해 빌리기 때문에 직불금을 떼어먹힐 염려가 없다. 또 부재지주가 공사에 농지를 위탁하려면 최소한 5년 이상 위탁해야 하기 때문에 소작 농민으로서는 안정적인 농사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다만 투기를 목적으로 농지를 산 부재지주의 경우는 언제든 사고팔 수 없기 때문에 위탁을 꺼리게 된다.

김규태 기자



‘절망을 보았다’ 편 취재 현장 구교4리에 물었더니
“높은 놈들이 그렇게 털어먹어?”

“도둑놈들이지 뭐, 법을 만드는 놈들이 그렇게 착취하는 건 도둑놈들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
고구마를 캐다 휴대전화를 받은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구교4리 이춘식(61) 이장이 발끈했다. 이봉화 보건복지부 차관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논을 직접 경작하지도 않으면서 쌀직불금을 받아챙겼다는 소식은 농심을 분노케 했다.
지난 7월 말 721호 표지이야기 ‘3박4일 절망을 보았다’ 편을 취재하기 위해 찾았을 때는 비료·사료·기름값 등의 급상승에 타들어가던 그들의 심정은, 이번엔 벼룩의 간을 내먹는 나랏일꾼들의 졸렬한 행태에 펄펄 끓고 있었다. 이 이장은 “월급도 많이 받는 놈들이 나랏돈을 제 주머니에 털어먹는 행태라니…, 높은 놈들은 다 그렇게 해처먹는다고 다들 욕해”라며 정자나무 아래 민심을 전했다.
마을에서 가장 많은 논농사를 짓고 있는 김준성(55)씨는 이미 벼베기를 끝내고 창고에 벼가마니를 넣던 중 전화를 받았다. 거친 숨을 고르던 김씨는 “여기 시골에도 소문을 안 내서 그렇지 다들 그려”라며 상황을 설명했다. 땅을 빌려주면서 아예 직불금을 절반씩 나눠갖기로 하든지, 아니면 논을 조금 싸게 빌려주면서 직불금은 아예 엄두도 내지 말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논 임자가 못 주겠다 그러면 꼼짝 못하는 거지, 뭐”라며 “어떻게 될라나 모르겄슈”라고 말했다. 구교4리에도 직불금을 가로채는 지주들의 행태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다만 내년에 소작을 떼일까봐 저마다 큰 소리로 얘기하지 않을 뿐이다.
이 마을에서도 벼베기는 시작됐다. 진척률은 20% 정도. “요즘 기계 가진 이들이 욕보고 있다”고 이 이장이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검붉은 김씨의 얼굴에 흘러내릴 굵은 땀방울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농꾼에게는 한 해 노동의 대가를 창고에 그러모으는 풍요로운 수확의 시간. 비릿한 수도권 소식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에게 김씨가 “나 바뻐, 전화 끊어 잉” 하며 웃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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