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태평로에 ‘명박산성’을 쌓아 사람과 교통수단의 통행을 전면 차단할 때도, 촛불집회 참가를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는 노동자와 농민을 현지에서 막아세우며 사실상 강제 구금을 하던 때도 경찰이 전가의 보도로 내세운 법조항이 있다. 바로 경찰관직무집행법 6조다.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目全)에 행해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로 인해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
무정차 통과·상경투쟁 차단 더 쉽게
경찰은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 때도 이 조항을 근거로 서울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키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소·돼지 트럭도 막아세웠다.
그런데 권경석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8월 말 이 조항에서 ‘목전에’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것 등을 뼈대로 하는 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현실적으로 범죄행위가 일어날 것이라는 급박함이 없어도 일찌감치 각종 제재 조처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경찰에게 모래주머니 떼어내고 한번 뛰어보라는 부추김이다. 권 의원실 관계자는 “국가 공권력을 확립해야 하는데, 그 부분을 삭제하면 경찰 공권력이 살지 않을까 싶어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은 ‘목전에’라는 조건을 이유로 들어 경찰의 무리한 상경 차단에 제동을 걸고 있는 법원의 새로운 판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기도 하다. 창원지법은 지난 8월 “집회가… 적법하게 불허됐더라도 집회 예정 시간보다 무려 9시간30분 전에 400여km나 떨어진 곳에서 (집회 참가를 위해) 상경하려 했다는 행위만으론 범죄행위가 목전에서 행해졌다고 보기 어렵다” 등의 취지로 경찰의 상경 차단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판결을 앞뒤로 서울지법과 광주지법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려 경찰의 마구잡이 행정에 제동을 걸었다. 기본권 제한에 신중하라는 뜻이다.
진보 진영 쪽은 개정안의 위헌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어야 하나, ‘목전에’를 삭제할 경우 가이드라인이 사라지면서 광범위한 기본권 침해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변협 법제이사 출신의 김갑배 변호사도 “경찰의 범죄행위 예방 활동에 시간적·장소적 제한을 두지 않게 되면 신체·이전의 자유를 과다하게 구속하게 되는 등 위헌의 소지가 크다”며 “법률의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에 그 해석을 둘러싸고 법적 분쟁이 잦아져 경찰의 직무집행 자체도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눈으로 보기에도 ‘목전에’ 표현을 삭제하면 ‘경찰 맘대로법’이 될 공산이 커 보이는 듯하다.
과다한 신체구속에 기본권 침해 우려서울 시내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공권력을 행사하려면 당장은 아니지만 조만간이라도 범죄행위가 빚어질 것이라는 전제를 해야 한다. 먼 미래의 일을 무엇으로 예측할 수 있겠나. 이 법이 통과되면 공권력 행사가 자의적이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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