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애·김홍진 커플은 결혼식이 끝난 뒤 ‘이명박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에 동참하는 의미로 서울 시내를 자전거 꽃마차를 타고 달리는 ‘떼잔차질’을 했다. 돕 사진제공
7월18일 금요일 저녁 8시. 서울 청계광장에 자전거 꽃마차가 나타났다. 2인용 자전거에 꽃으로 장식된 수레가 매달린 꽃마차에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한경애(32)씨와 턱시도를 입은 김홍진(28)씨가 타고 있었다. 이들은 “촛불은 계속된다. 사랑도 계속…” “MB도 미쳤어”라는 피켓을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 친구가 한마디씩이들은 1시간 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 호텔에서 갓 결혼식을 마친 ‘따끈따끈한’ 신혼부부였다. 식을 마친 뒤 꽃마차를 타고 ‘촛불을 지지하는 떼잔차질(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을 부르는 말)’을 했다. 식장이 있던 시청 근처에서 종로, 인사동을 에둘러 밤 10시부터 열 결혼축하 잔치 장소인 홍익대 입구 카페까지 꽃마차를 달린 한씨와 김씨는 “신혼부부도 반대한다. 이명박 물러가라.” “FTA 반대한다. 미친 소 물러가라”를 열심히 외쳤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함께 구호를 외쳤다. 잠시 꽃마차가 멈추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진짜 신혼부부예요?”라고 묻기도 했고, “와 축하한다”며 인사말을 건넸다.
짝꿍(김홍진씨는 한경애씨를 ‘짝꿍’이라 부른다)의 ‘식장 풍경’도 달랐다. ‘그 흔한 주례사’는 한씨와 김씨 커플의 친구 및 가족의 인사말로 대체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오늘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 뒤 ‘난 행복합니다~’라는 노래 한 소절을 부르고 자리에 앉았다. 평범하지 않은 남다른 결혼식에 불만이셨던 김씨의 아버지는 “촛불집회 등으로 시국이 어려운데 결혼식에 참석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짤막하고 진지한 축하 인사를 했다. 번역일을 하는 일본인 친구 하지메는 “결혼도 번역 작업과 같다. 가끔 못 알아들어 서로 번역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일이 있겠지만 꿋꿋하게 버티라”고 말했다. 두 짝꿍도 한 문장씩 번갈아가며 “누군가와 함께 살기로 결정하는 것이 내 자유로운 영혼을 무겁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지만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는 관계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함께 있는 것이 우리의 세계를 제한하지 않도록 늘 긴장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읽어내려갔다. 김씨는 “평소에 조용히 침묵하는 신랑과 신부, 그리고 양쪽 부모님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결혼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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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떼잔차질대’가 도착한 홍익대 근처의 한 클럽에서 있었다. ‘망령의 웨딩드레스’라는 제목을 단 축하파티였다. 어두운 화장을 한 신랑·신부가 음산한 음악에 맞춰 탱고를 추다가, 신부에게 물린 신랑이 가짜 피를 흘리는 퍼포먼스가 있은 뒤 밴드의 공연이 뒤따랐다. 이를 시작으로 친구들이 밤새워 춤추고 즐겼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삶과 관계가 얽매이도록 하지 않겠다’는 그간의 의지를 담았다. 한씨는 “어찌 보면 이게 진짜예요. 부모님이 그토록 ‘식’을 원하셨으니까 낮에는 예식장에서 흔히들 하는 형식을 따랐죠. 약간의 변화를 주긴 했지만요. 그러나 밤에는 친구들과 우리 방식으로 우리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파티를 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부모님이 느끼는 불편함과, 당사자가 느끼는 불편함을 조율한 것이다. 한씨는 “부모님께 ‘효도잔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식을 하는 대신 예단, 혼수 등은 없앴다”며 “억지로 하는 것이 없어서 준비하는 내내 너무 즐겁고 재밌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결혼’이라는 출발의 순간을 말 그대로 ‘잔치’로 만들었다.
오이정환·최혜경 커플은 뻔한 결혼식이 싫어 ‘식’ 대신 ‘전시회’를 열었다. 서울의 한 대안 문화 공간에서 열린 ‘결혼’을 주제로 한 의상전시회(왼쪽). 박세라씨는 결혼식에서 주례 대신 ‘부모님이 편지를 읽어주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지글은 부모님과 의논해서 함께 작성했다(오른쪽).
지난해 10월에 결혼한 오이정환·최혜경씨 커플은 아예 ‘식’을 없애고 ‘결혼’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열었다. 의상예술을 전공했지만 전공과 무관한 다른 직장에 다니던 최씨가 ‘작품을 만들고 전시회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둘이 만나는 중에 계속 말했다. 오이정환씨는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비슷비슷하고 똑같은 결혼식 대신 전시회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아내 최씨는 ‘결혼’을 주제로 떠오르는 다양한 옷과 작품들을 만들었다. 길고 짧은 웨딩드레스, 들꽃처럼 꿋꿋이 살겠다는 의미를 담은 들꽃 작품 등. 그렇게 만들어진 20여 점을 서울 압구정동 한 대안 문화 공간에서 열흘간 전시했다. 대관료는 없었다. 이어 부산 시내 한 서점의 문화 공간에서도 전시했다. 최씨의 고향인 마산에는 마땅한 전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시회 초대장에 최혜경씨는 이렇게 썼다. “저희를 축하해주기 위해 오시는 분들을 예식장이 아닌 갤러리로 모시려 합니다. 저에게 있어 웨딩드레스란 앞으로 펼쳐질 결혼 생활 안에서 공주가 될 것이라는 환상을 주는, 또는 앞으로 겪어야 하는 힘든 현실에 대해 미리 잠깐의 보상을 주기 위한 우울한 옷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전 거동이 불편한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되어 좋습니다. 많은 시간 고민하며 힘들게 작업한 저의 진솔한 작품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절 행복하게 합니다. 이제 저희 두 사람은 가부장제에 편입되지 않는 결혼을 하려 합니다. 며느리 없는 결혼, 사위 없는 결혼을 하려 합니다. 지금보다 백배 더 예쁘게 사랑하며 지금처럼 소신껏 진실되게 평생을 함께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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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커플은 아예 ‘식’을 없애고 ‘전시’만 했던 터라 부모님들의 반대가 거셌다. 결국 오이정환씨 부모님은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야지 무조건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친구들의 충고도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에 타협하면 앞으로도 가족제도 안에서 특정 역할이 여성에게만 과도하게 부여될 것 같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탐탁지 않아 하던 사람들도 “나도 해야지”지난 1월19일 결혼한 박세라씨는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주례 선정 등 천편일률적인 절차로 이어지는 ‘찍어내기 결혼’이 싫어 큰 중식당을 빌리고 한복을 맞추고 주례 없이 결혼식을 진행했다. 박씨는 “부모님이 또는 친척분들이 ‘남들처럼 하라’고 해서 ‘다른’ 결혼식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분들도 많은데, 상황에 따라 설득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자신의 비결을 말했다. 그는 “부모님이 직접 저희에게 주는 편지를 부모님과 함께 고민해서 쓰고 읽었다”며 “처음엔 탐탁지 않아 하시던 친척분들도 ‘나도 나중에 아이들 결혼식에서 편지를 꼭 읽어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천편일률적인 결혼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박세라씨는 “어렵지 않다. 상상력을 조금만 펼치면 삶의 여러 국면에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선택의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내면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즐기고 축하하는 잔치를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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