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익의 굴곡 많은 인생과 학문 이야기
한겨레 책·지성팀이 뽑은 2008 상반기 인문교양서 7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지난해 말부터 2008년 5월까지 서평 담당 기자들이 엄선한 책들의 향연을 즐겨보라
장회익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1만2천원
녹색사상가 장회익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학문 이야기를 풍성하고도 섬세하게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그의 이론서에 비해 이 책은 어린 학생까지도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 중심으로 수려하게 쓰였다. 이 책에는 집안 내력과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어린 시절 학업을 중단했던 이야기, 청주공업고등학교 시절, 서울대학교 시절, 유학 시절 등과 같이 한평생 몸과 마음으로 공부한 장회익의 공부인생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자기 안에 있는 스승을 통해 배우는 법’ ‘학문의 길에도 야생이 있다’는 장회익의 깊은 깨달음이 담긴 공부길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전하는 인생과 학문의 이야기는 한창 공부하는 학생은 물론 학문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까지 ‘공부는 왜 하는가?’ ‘그 공부가 어떠한 공부여야 하는가’와 같은 중요한 문제의식을 던져주면서 ‘참공부’의 길을 일러준다.
자기주도형 학습 태도
장회익은 스스로를 ‘공부꾼’ ‘공부도둑’이라고 했다. 장회익이 말하는 공부도둑은 선대의 과학적 업적을 바탕으로 과학혁명의 시대를 연 근대과학자들이 스스로를 지칭한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난쟁이’와 흡사하다. 이는 그의 학문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 공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장회익이 말하는 공부도둑은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공부도둑이다. 자신의 자아실현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의 문제점과 맞서는 학문의 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의 학문이 문명에 대한 근심과 새로운 비전으로 이행한 것은 학문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그의 ‘공부도둑길’은 어떤 도덕의 외적 당위에서가 아니라 ‘공부의 기쁨’ ‘깨달음의 즐거움’이라는 스스로의 내적 필연에 기초한 것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회익의 공부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잦은 이사로 여러 차례 전학을 하고 할아버지의 반대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기도 했지만, 오로지 앎의 즐거움 하나에 이끌린, 공부를 향한 그의 힘들고도 성실한 (그리고 자못 유쾌하기까지 한) 노력은 오늘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그에게 닥쳤던 여러 시련들은 전화위복이 되어 자력으로 공부하는 힘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세칭 일류고인 청주고등학교를 마다하고 하류(?) 고등학교인 청주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문예반을 이끌고 교회 학생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미적분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공부꾼으로서의 장회익의 인생은 이러한 자기주도형 학습 태도와 방법에 기반한 것이다. 자력의 공부길로 인해,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학문의 업을 이룰 수 있었으며, 자칫 ‘학문의 오파상’으로 전락할 위험을 넘어서서 지속적인 학문적 문제의식의 필연에 터 잡은 자생적인 (그리고 야생적인) 이론을 수립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지은이는 겸손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장회익의 공부길은, 학문의 분과별 전문화가 학문의 분과이기주의로 치닫고 있을 때, 오늘날 흔히 말하는 ‘통섭’보다 훨씬 앞서서 이미 학제 간 통합적 연구를 수행했고 특히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그의 주요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최근에 그가 제기하는 ‘앎 중심 학문’에서 ‘삶 중심 학문’으로의 전환은 이러한 아우름 속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이다. 이러한 장회익의 공부길과 학문적 업적은 척박한 한국 사회의 학문 풍토에 풍성한 자양분을 제공했으며, 우리 학계가 나아갈 뚜렷한 방향의 하나를 제시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상할아버지’와의 가상 대화
이 책 곳곳에 나오는 ‘상할아버지’와의 가상 대화는 독서의 재미를 더해주고, 사색의 깊이를 던져준다. 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쉽고 명확하게 설명돼 자연현상에 대한 이론적 설명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아버지·할아버지와 함께 평생 장회익의 사상적 삶의 준거가 돼온 인물이다. 아울러 ‘온생명이론’을 비롯한 장회익 사상의 핵심이 태동한 배경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지성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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