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코드 맞추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잇단 강경책…언제까지 정권 입맛따라 오락가락하나
▣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표지이야기 2부-요동치는 정치권]
한국 경찰의 비극은 정치권 예속성에 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각종 대책이 오락가락하는 게 그 특징이다. 촛불집회 정국에서 어청수 경찰청장이 보인 행태는 그 전형이다.
총선 두 달 앞두고 이재오와 회동
어 청장은 지난 5월 초 촛불집회가 시작되던 무렵부터 이미 대국민 선전포고에 나섰다. 5월13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문화제가 아닌 미신고 불법 집회”라고 규정하면서 “주최자들을 사법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당시는 집회 뒤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기도 전이었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는 다른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는 행위가 일어나지 않은 상황인데도, 단순히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형식 논리에 맞춰 미리 불법 집회로 성격 규정을 한 것이다. 어 청장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악의적인 ‘인터넷 괴담’을 인터넷에 유포시킨 네티즌을 수사하겠다”고도 밝혀 이에 항의하는 누리꾼들 때문에 경찰청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경찰청장의 이와 같은 행위는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 행위로,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인다. 서울 시내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경찰 총수가 미리부터 집회 성격을 예단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어 청장은 5월26일에도 “촛불문화제가 어제처럼 불법 시위로 번진다면 가능한 한 현장에서 연행하고 여의치 않으면 채증 자료를 수집해 반드시 처벌할 것”이라고 또다시 엄포를 놓았다. 시위대가 차량 운행이 많지 않은 한밤중에 도로를 일시 점거한 정도의 행위를 마치 강력 범죄자 다루듯 한 것이다.
어 청장의 이런 행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법질서 확립”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부터다. 어 청장은 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취임하자마자 잇단 강경책들을 쏟아냈다. 과거 백골단을 연상시키는 ‘체포 전담조’를 만들기로 했고, 기존엔 훈방 조처하던 가벼운 불법 시위자를 즉결심판에 넘길 수 있는지 검토하라고 전국의 경찰 지휘관들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이창무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권이 바뀌니까 경찰이 최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경찰이 법과 원칙에 따른 집회·시위 관리를 하면 되는데 위의 눈치만 보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경찰에 대한 신뢰는 일관성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어 청장 본인이 부적절한 처신을 해 입길에 오르는 일도 멈추지 않고 있다. 어 청장은 서울경찰청장이던 지난 1월에도 정동영 민주당 대통령 후보 캠프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 전 본인이 직접 캠프 상황본부장인 최규식 의원에게 미리 전화로 알려줘 “정치적 처신”이라는 비난을 산 바 있다.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같은 달 말에는 총선을 두 달가량 앞둔 상황임에도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은평구청장, 전·현직 은평경찰서장 등과 ‘갈빗집 회동’을 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동생 호텔 성매매 은폐 의혹
최근에는 부산문화방송이 어 청장의 동생이 지분을 투자한 부산의 한 호텔에서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어 청장은 이런 사실은 덮고, 오히려 기사를 보도한 부산문화방송 기자의 뒷조사를 하고 이를 보고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마저 사고 있는 상황이다.
어 청장은 시위 강경 대처와 본인 처신 문제로 시민사회 단체의 사퇴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촛불집회·시위 참가자에 대한 마구잡이 연행 등 경찰의 시대착오적 대응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도 높아지고 있다. 경찰은 전임 이택순 청장에 와서야 가까스로 2년 임기를 마친 첫 경찰청장을 배출했다. 정치권에 휘둘린 경찰의 비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