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판 카자흐스탄 회사 인수해 대박 신화 만든 인물… 유령회사 통한 투자 정황 확인, ‘삼성 돈’ 의혹 일어
▣ 알마티(카자흐스탄)=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지난 5월16일 오전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사말2 지역에 있는 4층 크기의 카작무스 카자흐스탄 법인 건물. 카자흐스탄의 다른 건물과 달리 경비가 삼엄했다. 경비실에 “한국에서 온 기자다. 카작무스 전 대표이사인 차용규씨와 삼성물산의 카작무스 지분 매각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문 앞을 지키는 사설 경비원들은 초청장과 같은 서류가 없으면 들여보내줄 수 없다며 강하게 막아섰다. “홍보팀이라도 만나고 싶다”고 거듭 요구하자, 결국 경비원은 본사 관계자에게 전화를 했고 경비원들을 따라 본관 현관 앞까지 들어갔다.
△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사말2 지역에 있는 4층 크기의 카작무스 카자흐스탄 법인 건물. (왼쪽 한겨레21 정혁준 기자) 세계 10위의 구리 채광·제련 업체인 카작무스와 이 회사의 전 대표인 차용규(오른쪽)씨. 카작무스가 런던 증시에 상장되기 직전 지분을 매각해버린 삼성물산의 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에서 여덟 번째 부자인 차용규씨는 국내 부동산에 수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카작무스 지분 팔아치우고 행적 묘연
올렉 노바추크 카작무스 최고경영자(CEO)의 비서가 나왔다. 차용규씨는 카작무스 CEO인 노바추크와 현 회장인 블라디미르 김과 함께 ‘카작무스 3인방’으로 불렸다. 비서는 “한국에서 이곳을 찾은 기자는 없었다. 지금은 홍보팀과 만날 수 없다. 전자우편으로 질의를 보내면 홍보실을 통해 답변을 주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본사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경비원이 카메라를 낚아챘다. 그는 “건물 밖으로 나가면 되돌려주겠다”며 기자를 밖으로 떠밀어냈다. 은 5월19일 카작무스 쪽에 전자우편 질의서를 보냈다.
카작무스의 카자흐스탄 법인을 찾은 것은, 5월13일 알마티 현지 금융 전문가한테서 “차씨가 한국의 부동산에 수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다”라는 증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돈의 출처와 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카작무스에 간 것이다.
삼성물산 알마티 지점장을 지낸 차씨는 카작무스가 런던 증시에 상장되는 과정에서 무일푼 샐러리맨에서 억만장자로 거듭나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지난 3월 미국 경제전문지 가 발표한 ‘세계의 부자 1천 명’에 이름을 올렸다. 14억달러(약 1조4천억원) 재산으로 한국에서 여덟 번째, 세계적으로는 843번째 부자였다. 그런 차씨가 2006년 9월 카작무스 대표이사직을 돌연 사퇴하고 1조원이 넘는 카작무스 지분을 모두 팔아치운 뒤 잠적해 현재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일부에선 그가 카작무스를 상장했던 영국 런던에 머물고 있다고 추정했지만, 이를 실제로 확인한 보도는 없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를 봤다는 사람도 없다. 수천억원대 현금을 손에 쥔 차씨는 거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차씨의 한국 내 부동산 투자설은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다.
현지 금융 전문가는 “차씨가 1천억~2천억원 정도를 종자돈으로 서울 강남과 부산, 제주의 빌딩에 투자하고 있다. 차씨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역외투자 형식으로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역외투자(또는 펀드)는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라부안, 버뮤다 등 조세 회피지역(Tax Haven)에 법인을 설립해 투자를 진행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에 기자가 “한국을 왔다갔다 하면 언론에 노출될 텐데, 그렇지 않았다”고 하자, 그 전문가는 “언론들이 차씨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또 다른 현지 금융계 인사는 “차씨가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거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 전 회장이 한때 만든 상가를 차씨가 사들였다”고 주장했다. 카자흐스탄 현지 한인들은 정 전 회장이 카자흐스탄 전통 모자를 쓰고 자주 한인식당을 찾았다고 기억했다.
차씨의 행방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단지 그가 백만장자가 된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주식을 판 뒤 얻은 매각차익이 과연 그의 돈일까라는 의문에서다. 주식 처분으로 확보한 현금은 어디에 있는지, 누구한테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차씨는 언론 접촉을 꺼리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가 실종됐다거나 마피아에 납치됐다는 등의 ‘괴담’도 떠돈다. 심지어 국가정보원이 차씨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카작무스와 차씨의 일대기를 다룬 책 를 쓴 칼럼니스트 이동엽씨. 이씨는 과 한 인터뷰에서 “차씨는 영국 거주인이다. 자녀들도 영국에서 대학을 다닌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는 듯하다. 두 곳을 중심으로 왕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은 왜 서둘러 매각했는가
은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들은 증언과 국내의 추가 취재를 통해 퍼즐 맞추기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카자흐스탄 현지 증언과 국내에서 차씨의 재산으로 추정되는 부동산 실체는 딱딱 들어맞았다.
차씨는 조세 회피지역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본사를 두고 있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고, 기업 활동을 하지 않는 휴면법인도 인수해 부동산을 대거 구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씨의 회사로 추정되는 6개 법인의 등기부를 확인해본 결과, 몇몇 법인에는 차씨의 이종사촌으로 알려진 최아무개씨와 차씨의 동생인 차아무개씨가 이사로 등재돼 있었다.
이들 법인은 전국 곳곳에서 빌딩을 중심으로 부동산을 구입하고 있었다. 제주도의 ㅅ호텔, 서울 여의도의 ㅇ호텔, 서울 도곡동의 ㅇ빌딩, 대치동의 ㅇ상가와 ㅎ빌딩, 서울 하계동의 ㄱ백화점, 경기 안산시 ㅎ빌딩 등 10여 곳에 이르렀다. 현재 이 건물들의 시세만 6천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든 부동산을 차씨 소유의 회사가 구입했다면, 구입 자금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다시 카작무스의 런던 상장 때로 돌아가보자. 의혹의 핵심은 차씨가 카작무스의 지분을 사들여 막대한 상장차익을 얻었는데, 이게 차씨 돈이냐 아니면 원래 ‘전주’가 따로 있느냐는 것이다.
삼성물산이 시가총액 100억달러(약 10조원)가 넘는 알짜 회사 지분을 회사 직원인 차씨에게 헐값에 판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삼성물산이 2001년 1차 매각 뒤 남은 카작무스 지분 24.8%를 2005년 런던 증시 상장 뒤 매각했다면 최대 30억달러에 이르는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카작무스를 서둘러 매각한 뒤 대한광업진흥공사에서 빌린 융자금 5900만달러도 갚았다. 결국 1억달러 정도를 투자한 삼성물산은 투자금을 회수하는 선에서 카작무스에서 철수한 셈이다.
이승희 경제개혁연대 사무국장은 “삼성물산의 지분 매각 과정에서 삼성이 차씨한테 물을 먹은 것이냐 아니면 차씨와 다른 뒷거래가 있었느냐가 관건이다. 만약 삼성이 카작무스의 상장 사실을 알고도 지분을 넘겼다면 차씨와 다른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고, 몰랐다면 삼성이 차씨(또는 배후세력)에게 당한 것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차씨에 대한 미스터리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카자흐스탄의 집권층이 차씨를 별도로 접촉해 삼성을 따돌리고 상장 직전 삼성 지분을 매입해 차익을 챙겼다는 의혹이다. 또 삼성이 차씨에게 지분을 넘겼지만 실제로는 삼성 돈이고 시세차익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다. 마지막으로 삼성이 카작무스 지분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반대급부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다.
하지만 삼성은 이러한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정원조 삼성물산 전무는 “카작무스가 런던 증시 상장 발표 뒤 상장 계획을 번복해 상장이 여의치 않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구리 시장 전망이 좋지 않았고 카자흐스탄의 국가적인 리스크도 있어 매각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 전무는 “저가 매각은 아니다. 현재 기준으로 과거의 경영전략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1차 매각분까지 합치면 전체적으로 이익을 냈다”고 밝혔다.
번 돈을 재투자 안하는 이유?
카자흐스탄 현지 기업인들과 주재원들은 차씨에 관해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용기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얘기했다. 한 현지 사업가는 “이쪽 사람들은 처음엔 삼성이 차씨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차씨가 속인 것이 아니라, 그 돈이 삼성의 비자금이라는 쪽에 더욱 힘이 실린다”라고 말했다. 현지의 카자흐스탄 사람들과 한국 기업가들은 삼성의 비자금이라는 근거로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차씨가 카자흐스탄에 재투자하지 않는 점을 든다. 카자흐스탄은 정·관계에 인맥만 있으면 쉽게 사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차씨는 최대 국영기업 중 하나였던 카작무스의 대표를 지내 최고위급 관료들, 공산당 고위 당원들과 인맥을 쌓아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 전혀 재투자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자기 돈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한 삼성의 얘기는 이렇다. “차씨가 한국에서 부동산 투자를 하는 것과 카자흐스탄에서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다. 이를 가지고 차씨의 돈이 삼성의 비자금이라고 여기지는 말아 달라.”
5월23일 현재 카작무스는 의 전자우편 질문에 어떤 답변도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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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보다 부자인 차용규(51)씨. 세계 10위의 구리 채광·제련 업체인 카작무스. 그리고 카작무스가 런던 증시에 상장되기 직전 지분을 매각해버린 삼성물산. 이들은 어떤 관계인가?
1995년 삼성물산 독일 프랑크푸르트 지사에서 과장으로 일하던 차씨는 카작무스(당시 제즈카스간 동 콤비나트)를 위탁 경영하라는 임무를 회사에서 받게 된다. 당시 카작무스는 파산 직전의 골칫덩어리 국영기업이었다. 이후 차씨는 2000년 6월까지 5년 동안 카작무스의 경영을 주도했다.
삼성의 위탁경영으로 카작무스 경영이 정상화되면서 실적도 점차 나아졌다. 그러자 삼성물산은 자회사인 삼성홍콩과 함께 카작무스 지분을 사들여 2000년 7월 42.55%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가 됐다. 지분 매입에 들어간 자금 약 1억6300만달러 가운데는 대한광업진흥공사에서 융자받은 5900만달러도 포함돼 있었다.
이후 삼성물산은 카작무스 지분을 두 차례에 걸쳐 매각했다. 1차 매각은 2001년 10월. 15% 지분 매각가액은 주당 16만8900원. 삼성물산은 이 거래로 784억원의 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2차 매각 과정은 의혹투성이다. 2004년 6월1일 카작무스가 런던 증시 상장계획을 발표했다. 두 달 뒤인 8월16일 삼성물산과 삼성홍콩은 돌연 나머지 지분 24.77%를 팔아치웠다. 매각금액은 모두 1억달러로, 주당 매각가격은 1만9051원이었다. 당시 카작무스 주식의 평균 거래가격이 주당 3만원 정도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헐값 매각이다. 삼성물산과 삼성홍콩은 이 거래로 각각 212억원, 1191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공시했다.
그런데 삼성으로부터 헐값에 지분을 산 사람이 바로 차씨다. 차씨는 자신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페리 파트너스라는 회사를 통해 삼성이 매각한 지분을 사들였다.
삼성물산이 지분을 완전 매각한 뒤 1년이 지난 2005년 10월 카작무스는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카작무스는 시가총액 100억달러가 넘는 거대 회사로 성장했고, 차씨는 지분을 매각해 1조원의 매각차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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