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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특별법의 치명적 빈틈

등록 2008-05-23 00:00 수정 2020-05-03 04:25

포주 처벌받아도 업소 영업 정지는 지자체장이 따로 내려야… 검찰은 감금 혐의 처벌에 미온적

▣ 대전=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경찰: 위 업소는 성매매 업소가 아닌가요?

업주: 1종 유흥주점인데, 아가씨들이 손님과 성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경찰: 위 업소에서는 손님이 오면 술방에서 여종업원들이 손님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면서 놀다가, 술을 다 마신 다음에 타임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손님과 여종업원이 성매매를 하는 업소가 맞지요?

업주: 예, 맞습니다.

경찰: 위 업소의 술값은 얼마인가요?

업주: 1인당 10만원입니다.

경찰: 술값에는 화대비가 포함돼 있나요?

업주: 예.

경찰이 고발된 성매매업소 업주를 조사한 내용이다. 업소를 탈출한 강현주(33·가명)씨가 지난해 1월 업주 윤아무개(53)씨를 감금·횡령·성매매 알선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서다. 이 진술과 업소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9일치 신용카드 전표를 증거로 윤씨는 성매매알선 혐의가 인정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999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0월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 업소는 어떻게 됐을까.

스스로 성매매 인정했음에도 영업 계속

5월14일 밤 10시. 이 업소가 있는 대전 중구 유천동 거리는 60여 개의 ‘방석집’들이 간판불을 환히 밝히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마다 많게는 10여 명, 적게는 2~3명의 여성들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골목이 꺾어지는 지점에 자리한 해당 업소는 간판도 바꾸지 않은 채 영업에 한창이었다. 마침 가게에서 5명의 남성들이 나왔다. 엔지니어링 회사에 다니는 이들은 “거래처 손님들이 왔다. 접대는 해야겠고, 어쩌겠냐”라고 말을 흐리며 얼른 자리를 떴다.

이렇듯 업주가 일상적인 성매매를 스스로 인정하고 유죄 선고까지 받았는데도 업소는 버젓이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의 허점 때문이다. 성매매특별법의 하나인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성을 파는 행위를 하게 한 자’ 등에 대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단순히 성매매 알선을 한 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형량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업주에 대한 처벌일 뿐이고 영업정지 등을 정하는 행정처분은 따로 규정돼 있지 않다. 행정처분은 식품위생법에 따라 해당 지자체장이 내릴 수 있는데, 강제 조항이 아니어서 실제로 성매매특별법 위반업소에 대한 행정처분은 거의 내려지지 않고 있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대표는 “지금 성매매특별법은 알선행위자 처벌만 규정할 뿐, 업소를 문 닫게 하는 행정처분 조항은 미비해서 성매매 방지의 실효성이 없다”며 “성매매특별법 통과 4년 뒤인 지금까지도 피해 여성이 속출하고 있는 것은 법이 갖고 있는 구멍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매매특별법 위반 업소에 대해 폐쇄 명령, 허가 취소,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통 사건보다 엄격한 ‘감금’ 해석

‘감금’ 혐의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다. 강씨는 “감금 당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 없음’ 결정을 내리고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당시 담당 검사였던 안영림 대구지검 검사는 “기소하지 않은 이유는 불기소 이유 고지서에 나와 았다. 그 외에는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불기소 이유 고지서에는 이렇게 설명돼 있다. “피의자(업주)는 고소인(성매매여성)들이 위 주점 3층을 숙소로 사용하였던 것은 사실이나, 숙소 생활을 하면서 고소인들이 등산이나 운동을 하거나 시내로 쇼핑을 다니는 등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며 범죄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고소인들은 피의자와 동행이 전제되기는 했으나 일주일에 한 번꼴로 등산을 하거나 유등천변으로 운동을 다니거나 가끔씩 시내로 쇼핑을 다녔던 것은 사실이라며 피의자의 변소 내용에 일부 부합하는 진술을 하고 있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강씨는 “운동은 일주일에 두 번씩 삼촌들이 붙어서 지키는 가운데 억지로 한 것이고, 쇼핑도 7년 있는 동안 3번 갔는데 이 또한 삼촌·사장과 함께 간 것이었다”며 “바깥바람을 쐴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을 뿐 쇼핑을 즐긴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손정아 대전 성매매여성인권지원상담소장은 “그러면 등 뒤에 총을 갖다대고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게 하는 경우도 자유롭게 쇼핑한 것이냐”며 “자유롭게 나갈 수 있었다면 왜 여성들이 운동복 차림에 지갑도 없이 목숨 걸고 도망치겠냐”고 반문했다. 결국 수사기관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했다”는 업주의 주장에 더 무게를 싣고 무혐의 처분을 한 셈이다.

지난해 11월 대전 유천동에서 일하던 또 다른 여성이 11개월 만에 도망을 쳤다. 이 여성도 업주를 성매매알선·감금 등의 혐의로 고발했지만, 역시 감금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았다. 담당 검사인 송형수 대전지검 검사는 “감금이라고 주장하는 기간이 너무 길어 그 기간 동안 각 날짜마다 시간마다 감금이 특정돼야 하는데, 중간에 목욕탕·슈퍼 등에 갔다왔기 때문에 물리적 감금이라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차혜령 법무법인 공감 변호사는 “감금죄가 보호하고자 하는 핵심 보호법익은 개인의 장소 이동의 자유”라며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는 감금된 특정 구역에서 일정한 생활의 자유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개인이 자유롭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자유가 없으면 감금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즉,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업소와 삼촌·업주 등의 영향력이 미치는 근처 목욕탕 등만 왔다갔다 할 수 있게 했던 업주에 대해 감금죄가 성립한다는 얘기다. 원민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유천동에서 탈출한 성매매 피해 여성들은 한결같이 ‘길목마다 삼촌들이 서 있었고 마음대로 나다닐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모든 여성들이 입을 맞췄을 리도 없다”며 “검찰이 이 부분을 혐의 없다고 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변명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의 사건에서 ‘감금’이 다뤄지는 것에 비해 성매매 여성 관련 사건에서 감금은 훨씬 엄격하게 해석되고 있다”며 “검·경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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