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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랄 후세인] “미군은 빌랄 후세인을 석방하라”

등록 2008-04-17 00:00 수정 2020-05-02 04:25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차로 40여 분을 달리면 ‘모스크의 도시’로 불리는 팔루자에 닿을 수 있다. 이슬람 성전만 수백 개인 그곳에 신심 깊은 수니파 무슬림들이 대대로 살아왔다. 빌랄 후세인(36)도 그곳 출신이다.
2003년 3월 미국의 침공으로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고, 팔루자 외곽의 ‘공화국 수비대’ 기지는 미 해병기지로 바뀌었다. 전쟁과 함께 외신기자들도 찾아왔고, 가전제품 대리점에서 일하던 후세인은 〈AP통신〉의 ‘현지 가이드’로 직업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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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공 이듬해인 2004년, 팔루자의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여느 도시에 비해 ‘저항의 전통’이 강하던 팔루자에선 미군에 대한 호감이 반감으로 바뀌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해 3월31일 미국계 용병업체 블랙워터 소속 용병 4명이 팔루자에서 무참히 살해됐다. 미군은 즉각 ‘단호한 결의’란 작전명으로 제1차 팔루자 공세에 나섰다.

이 무렵 〈AP통신〉은 후세인에게 카메라 사용법 등을 가르친 뒤 2004년 9월 그를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고용했다. 그해 11월 초 미군은 제2차 팔루자 공세(작전명 ‘유령의 분노)에 나섰고, 후세인은 잿더미로 변해버린 고향 땅의 모습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그가 취재한 저항세력이 미군을 겨냥해 박격포를 쏘는 장면은 2005년 속보사진 부문에서 〈AP통신〉 사진팀이 퓰리처상을 받은 20장의 사진 중 하나였다.

어느새 경력이 쌓인 후세인은 2005년 초부터 서부 안바르주 주도인 라마디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이듬해 4월12일 후세인은 미군 당국에 ‘테러 연루 혐의’로 전격 체포됐다. 후세인의 집에서 폭발물 부품과 저항세력의 전단지 등이 발견됐다는 게 이유였다. 〈AP통신〉은 물론 각종 언론단체가 그의 석방을 촉구했지만, 미군 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후세인에 대한 기소 절차는 체포된 지 약 20개월 만인 지난해 12월에야 시작됐다. 미군 당국의 ‘증거자료’를 건네받은 이라크 법원은 곧 자료 검토에 들어갔다. 그러던 지난 2월 이라크 의회가 테러 혐의로 수감된 이들에 대한 포괄적 사면령을 뼈대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연방항소법원에 사면심사위원회가 설치됐고, 후세인 사건도 위원회로 이관됐다. 그리고 지난 4월7일 사면위는 마침내 후세인을 즉각 석방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 이라크에는 약 2만3천 명이 테러 연루 혐의로 기한 없이 구금돼 있다. 이들 중 미군 당국이 붙들고 있는 이들은 사면위도 석방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후세인은 석방될 수 있을까? 〈AP통신〉의 질의에 브라이언 위트먼 미 국방부 대변인은 “후세인이 지금도 위험한 인물인지에 대한 현지 군 당국의 판단에 따라 그의 석방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빌랄 후세인은 바그다드 공항 인근의 미군 구금시설인 캠프 크로퍼에 갇혀 있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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