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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아파트도 분양으로 돈 벌이?

등록 2008-03-07 00:00 수정 2020-05-03 04:25

원래 약속한 가격 무시하고 주변 시세만큼 올려 분양, 충주지원에선 “분양원가 공개하라”는 판결 내려져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김근영(45)씨는 충주 토박이다. 충주에서 태어나 학교를 마쳤고, 결혼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키운다. 그가 내 집 마련의 꿈을 갖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몰아치기 직전인 1996년이었다. “공공임대아파트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10년 동안 임대로 살다가 저렴한 가격에 분양으로 전환된다는 점에 끌렸던 것 같아요.” 그가 택한 것은 충주 중심가 칠금동에 지어진 24평짜리 부영2차 아파트였다. 복도식이 아닌 계단식이라 평수가 크지 않은데도 방이 세 개나 있다. 그는 3300만원의 보증금에다 매달 5만원 안팎의 임대료를 낸다.

정부 지원 받아 싼값에 짓는데…

기다리던 분양 전환은 2006년 7월로 예정돼 있었다. 문제는 분양 가격이었다. 처음에는 ‘임대’였다가 ‘분양’으로 전환되는 5·10년짜리 공공임대아파트들의 분양가는 아파트를 짓는 데 들어간 ‘건설원가’에 감정평가기관이 아파트의 가치를 매기는 ‘감정평가 가격’의 평균을 내 정하게 된다. 10년 전 김씨가 아파트에 입주할 때 산출된 기준 분양 가격은 5099만2천원. 김씨의 집은 제일·태평양 두 개 감정평가 법인의 감정을 받았고, 이를 토대로 그해 11월 확정된 분양 가격은 10년 전보다 12% 정도 오른 5720만5천원으로 정해졌다.

아파트 가격은 비싼 것인가.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아파트를 분양하는 부영 쪽에서는 “충주 칠금동의 경우 주변 시세에 견준다면 싼 가격”이라고 말했다. 분양 전환 가격이 확정된 2006년 11월께 충주 탄금중학교를 사이에 두고 찻길 건너편에 있는 금릉 현대아파트 25평짜리의 시가는 8500만원 선이었다. 주민들의 의견은 다르다. 이의환 임대아파트 전국회의 사무국장은 “공공임대아파트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위해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임대아파트를 짓는 건설사 쪽에 싼값에 택지를 제공하기도 하고, 저리의 국민주택기금을 빌려주기도 한다. 이 사무국장은 “그렇게 지은 아파트를 주변 시세와 비교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주민들이 부영이 제시한 분양 전환 가격을 납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씨는 “우리 아파트 값이 왜 그렇게 결정됐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아파트 값은 크게 두 가지 항목으로 나뉜다. 하나는 아파트가 들어서는 땅값이고, 다른 하나는 그 위에 건물을 올릴 때 드는 건축비다. “우리 생각은 애초부터 부영 쪽이 아파트 가격을 부풀리지 않았나 생각하는 거죠.” 10년 전 25평짜리 현대 금릉아파트의 분양 가격은 4200여만원이었고, 부영아파트는 5천만원 선이었다. 주민 1200여 가구는 지난해 7월10일 부영을 상대로 택지비·건축비 등의 산출 내역이 담긴 ‘분양원가를 공개하라’며 소송을 내기에 이른다.

임대아파트의 분양 전환을 둘러싼 갈등은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6년 말 현재 우리나라에 지어진 임대아파트는 모두 133만204가구로 이 가운데 절반 정도인 65만1071가구(48.9%)가 5년 동안 살다가 분양 전환되는 5년짜리 공공임대아파트다. 이영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실의 장봉화 보좌관은 “그 5년 공공임대아파트 가운데 절반 정도를 부영이 공급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보증금 노리고 고의로 부도 내기도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부영 등 민간 임대아파트 사업자들이 대거 물량을 쏟아낸 것은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다. 1996년에는 민간 건설사들이 공급한 임대아파트가 8만6254가구나 됐지만, 2006년 현재 그 수는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4949가구로 떨어졌다(그래프 참조).

그뿐이었다면 별 다른 문제가 터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아 집을 지은 건설업자들이 망하거나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노리고 고의로 부도를 내는 일이 잦아지면서 국회는 2006년 12월21일 ‘부도공공건설임대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세입자 보호에 나섰다. 또 하나의 변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전국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되도록 싼값에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임차인들과 폭등한 주변 시세만큼 분양가를 높이려는 부영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겨났다.

가장 큰 충돌 지점은 분양 전환가에 큰 영향을 주는 감정평가이다. 보통 건설사와 세입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감정평가 법인을 한 곳씩 정해 그들이 내놓은 감정가의 평균으로 평가 가격을 정하게 된다. 부영은 대구에서는 임차인 쪽의 감정평가 가격이 1억500만원으로 부영 쪽이 제시한 가격 1억5천만원에 견줘 훨씬 못 미치자 평가 결과를 알려주지도 않고 분양을 중단했고, 김해에서는 김해시장이 한국감정원과 우수 감정평가 법인을 선정하자 특별한 이유 없이 분양을 계속 미루고 있다. 광주에서는 분양을 계속 미루면서 매년 5%씩 임대보증금을 올려 세입자들을 애먹이는 중이다. 참다 못한 부영 임대아파트에 모여살고 있는 세입자들은 지난 2월17일 대구에서 모여 ‘임대아파트 전국회의 부영연대’(이하 부영연대)를 결성하고 전의를 불태우는 중이다. 부영연대가 2월27일에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분양 전환을 미루면서, 임대료를 올리고, 직원들의 월급 인상분을 임차인들에게 전가하는 부영의 모습이 주민들의 울분 섞인 필치로 묘사돼 있다.

“분양 업무 투명성 확보 필요성이 크다”

주민들은 조금씩 싸워 이겨나가는 중이다. 전광식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판사는 지난 2월15일 “부영은 임차인들에게 건설원가인 택지비와 건축비 산출 내역을 공개하라”며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산출 내역이 공개되기 전까지 분양은 중단되고, 부영은 주민들을 따돌리고 3자에게 집을 팔 수 없다. 판결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주민들은 부영이 제시한 분양 전환 가격이 적법하게 산정된 것인지 알 권리가 있고, 국민임대주택기금을 받아 만든 집은 분양원가 산출 과정과 분양 업무의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근영씨는 “이제 한발 앞으로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아파트의 공공성을 둘러싸고 부영과 주민들이 벌이는 싸움은 이제 막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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